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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폭발이 사람을 가리지 않았듯 의료 지원도 또한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2020.09.11

8월 4일 레바논 베이루트 항구의 한 창고에서 화학물질에 의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나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등 도시 전역에 광범위한 피해를 남겼다. 국경없는의사회(MSF)는 베이루트에서 긴급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베이루트 대폭발 한 달 후, 전 국경없는의사회 베이루트 긴급구호 코디네이터이자 현 운영센터 분석국 디렉터 조나단 휘탈(Jonathan Whittall)이 인터뷰를 통해 국경없는의사회가 현장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세 살 사마르는 상처 치료를 받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에 왔다. 사마르는 폭발 당시 아버지와 함께 건물을 나서다 철로 된 대문에 얼굴 부상과 화상을 입었고 성형재건술을 받았다. ⓒ Mohamad Cheblak/MSF

 

폭발 이후 베이루트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나? 

레바논은 연속된 위기로 초토화되었다. 베이루트에서 일어난 폭발로 지금까지 수면 아래 있던 필요와 취약성이 드러났다. 이제 거리에는 도시의 인프라가 파괴된 것을 눈으로 볼 수 있고, 이미 수차례 충격을 받은 주민들의 필요가 최근 극명히 드러났다. 

최근 폭발로 집을 잃은 주민들은 폭발이 있기 불과 몇 개월 전 경제 붕괴를 겪고 빈곤에 빠졌다. 일부는 최근 몇 년 사이 전쟁을 피해 레바논으로 피신한 이들이며, 대부분은 작년 한 해 동안 일어난 시위로 정치적 불확실성 속에 살아야 했다. 그리고 전 세계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레바논 또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국가 전체에 큰 부담이 가해졌다.    

이번 폭발은 그 누구도 강제로 받아들일 수 없는 위기다. 레바논의 주민들에게는 기존의 위기에 이어 찾아온 또 다른 위기로, 주민들을 분노하고 지치게 만들었다. 

 

현재까지의 인도적 대응은 어땠나?  

폭발 이후 처음 몇 주 동안 레바논의 시민단체와 사회운동, 지역사회 및 자원봉사자가 주로 주민들의 긴급한 필요에 대응했다. 

폭발 직후 주민들은 다친 사람들을 자신의 차에 태워 병원으로 이송했고 집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집을 열어주었다. 폭발 피해를 입은 지역에서는 음식과 깨끗한 식수, 생필품과 긴급 의료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자원봉사자는 거리를 치우고 부상자들을 치료했다. 

폭발이 일어난 지 몇 시간 만에 베이루트의 병원에는 부상자 수천 명이 유입됐다. 병원들은 이미 과부하 되어있는 상황이었다.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서 민간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레바논 주민들이 공공 의료시스템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공립병원이 코로나19로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레바논의 의료 시스템이 직면한 여러 심각한 어려움에도, 의료진은 놀라운 헌신으로 응급 처치를 시행하고 부상자를 치료했다. 이들 중 폭발로 인해 일하던 병원이 파괴되거나 손상된 경우도 있다.  

피해를 입은 베이루트의 지역사회와 여러 위기에 대응하고 있는 이들은 “회복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레바논에서 발생한 일련의 인재는 사람들의 회복력에만 기댈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끝없이 회복력을 발휘하도록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재난 이후 복구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생존 모드’로 살아야 하는 비극에 박수를 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상황을 정상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것은 누군가 나에게 설명한 것처럼 “국가가 허가한 학대”의 한 형태이다. 최근 위기에 대응하고 있는 많은 이들이 “빠르게 회복하고 있는 것에 대해 칭찬받고 싶지 않고, 또다시 복구를 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이번 대응에 국경없는의사회는 어떻게 참여하고 있는가?

국경없는의사회의 긴급 대응은 지역사회의 계획과 발맞추며, 기존의 대응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우리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는 부상자뿐만 아니라 만성 질환으로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이 의약품을 잃어버렸거나 소진했는데도 다시 구하지 못하고, 병원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어 더 이상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이번 폭발은 주민들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트라우마와 정신건강 필요를 가중시켰다. 

활동을 시작한 이후 우리는 737명의 환자에게 부상 치료를 제공했다. 고정 진료소를 찾거나 가정기반 치료 팀의 방문으로 치료를 받은 만성질환 환자는 2,360명이다. 1,645명이 일시적인 조치로 만성 질환에 대한 치료제를 제공받았다. 진료소마다 심리 상담가가 있어 가정 방문을 시행하고 있으며, 사회복지사는 환자의 다른 필요에 대응할 수 있는 구호 단체와 연결해 주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대응에 있어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은 지역사회의 대응 활동에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다. 한 예로 우리는 에그나 레그나(Egna Legna)라는 단체에 지속적으로 필수 구호 물품을 제공하고 있다. 에그나 레그나는 이주 노동자가 운영하는 단체로, 경제 위기와 최근 폭발로 인해 타격을 받은 이주 노동자를 지원한다. 

또한 맡바크 알-발라드(Matbakh Al-Balad)라는 ‘공동 주방’을 지원하기도 했다. 자원 봉사자들이 이 공동 주방에서 주민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배급하는데, 국경없는의사회는 이때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한 가정을 파악했다. 우리는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가정에 제공하는 조리 용품을 이곳에 지원했다. 

우리가 지역사회와 협력하는 또 다른 방법은 최전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원 봉사자에게 감염 예방 및 통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도적 대응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지원을 받는 동안 코로나19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할 추가적인 의무가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의사가 베이루트 칸다크 엘-가믹(Khandak el-Ghamik) 지역주민 파티마(Fatima)를 진료하고 있다. 폭발 당시 파티마는 발코니에 있었으며 문이 떨어져 나가고 유리가 깨져 흩어지는 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 Mohamad Cheblak/MSF

 

현재 지역에 어떤 공백이 있나?

이번 대응을 위해 기존의 구호 시스템을 온전히 가동하는 데는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 여러 차례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만, 항상 즉각적인 현장 활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주민들에 의하면 조사팀이 필요를 파악하기 위해 방문하고 그냥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만성질환 의약품이 추가로 필요한 환자를 파악하는 동시에 주민들에게 위생 키트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아무런 조치 없이 조사만 하는 경우를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 활동은 전반적으로 필요한 구호 및 재건 활동의 일부일 뿐이며, 현재 지역사회 차원의 초기 대응에 큰 부담이 있기 때문에 다른 단체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레바논에서의 인도적 지원은 수혜자의 국적 또는 법적 지위에 따라 제공되는 경우가 많았다. 즉 일부는 시리아 및 팔레스타인 난민에게 제공되었고, 취약한 레바논 지역사회에 초점을 맞춘 경우도 있었다. 구호 전달에 있어서 이러한 접근은 여러 위기 상황이 동시에 발생했을 때 실질적인 필요에 기반한 지원을 제공하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현재 상황에서는 주민들의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한 가지로 정의하기가 어렵다. 경제 위기, 코로나19, 인근 국가의 전쟁, 최근 항구 폭발 등 여러 위기 상황이 겹쳤기 때문이다. 또한 난민인지, 이주민인지, 레바논 주민인지에 따라 지원이 필요한 사람을 구분할 수도 없다. 

우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신분이 이주민이거나 난민이라서 지원을 받거나, 반대로 신분  때문에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사례를 목격했다. 폭발은 피해자를 구분하지 않았다. 구호 활동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지난 10년간 구호 단체들이 지역사회에 따라 인도적 대응을 구분해서 제공했던 방식으로 수혜자를 나누어서는 안 된다. 

인도적 대응은 지원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제공될 수 있도록 동시다발적인 위기로 인한 전반적인 필요를 고려해야 하며 특정 취약계층에 민감해야 한다.  

세 살 사마르는 이 사진을 찍기 전날 아버지와 상처 치료를 받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를 찾았다. 이들은 폭발 당시 함께 건물을 나서다가 철로 된 대문에 얼굴에 부상과 화상을 입고 성형재건술을 받았다. ⓒ Mohamad Cheblak/MSF 

 

이런 긴급 상황에서 국경없는의사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국경없는의사회는 인도적 의료 구호 단체로서 즉각적인 필요에 대응하기 위해 이러한 위기의 초기 단계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이 있다. 베이루트에서는 지역사회와 협력하고, 위기가 발생한 시점과 다른 구호 단체가 도착하는 시점 사이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국경없는의사회는1976년부터 레바논에서 활동했다. 국경없는의사회 설립 이래 최초의 분쟁 대응 활동이었다. 이러한 긴급 대응을 주도하기 위해 다양한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에서 모인 열정 있고 헌신적이며, 고도로 숙련된 팀들이 활동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전체 긴급 대응 프로젝트를 구축하는 동안, 레바논 전역의 여러 단체 직원들이 폭발 이후 거리에서 잔해를 치우기 위해 모이기도 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대응은 지역사회 차원에서 이루어진 협업의 극히 일부이며, 우리는 접근 방식을 공백을 메우기 위한 방향으로 변경했다. 이것은 독립적인 자금(민간 후원금)으로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는 인도주의 단체로서 긴급 대응의 역할을 다하는 동시에, 만성적인 필요에 대응하는 장기적인 프로그램 또한 지속할 예정이다. 그러나 레바논의 상황이 악화함에 따라 우리는 최근 재난으로 인한 고통의 일부만이 아니라 여러 위기 상황이 겹쳐 발생하는 전반적인 필요에 대응할 수 있는 구호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