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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팔레스타인: 분쟁 지역에서 한국인 성형외과의로 활동한다는 것

2023.08.02

이름: 홍준표

포지션: 성형외과의 (Plastic Surgeon)

파견 국가: 팔레스타인

활동 지역: 가자지구(Gaza) 

활동 기간: 2023년 5월 – 2023년 6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국경없는의사회 지원 병원 수술실에서 집도중인 홍준표 활동가 ©국경없는의사회/홍준표 

해외 의료 활동을 여러 번 다녀오신 걸로 알지만, 국경없는의사회 구호활동가로서는 처음으로 활동을 다녀오셨어요. 대체적인 첫 인상이 어떠셨나요? 

이번에 제가 활동을 다녀온 지역은 예루살렘을 통해 들어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입니다. 일단 약 한달 동안 그곳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또 그곳의 실상을 목격하면서 제가 느낀 점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됩니다.

첫번째는 이렇게 안전상의 이유로 폐쇄적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9개월에서 1년 넘게까지 장기간 일하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들이 대단하다는 점, 그리고 이제 이미 수십년간 그곳에서 활동해 온 국경없는의사회의 지속가능한 프로젝트 관리 능력이 과연 신뢰할만 하다는 점입니다. 

제가 도착한 첫날밤, 숙소로부터 불과 3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서 폭탄이 투하됐습니다. 서안지구 난민촌에서 시위가 일어나 이스라엘군 대응이 격해졌고요. 제가 도착하기 일주일 전쯤에도 가자지구에서 분쟁이 격화돼 숙소에 있는 지하벙커에서 3-4일 지내다가 분쟁이 잠시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 전원 예루살렘으로 철수했었다고 들었습니다.  

앱의 추적기능 등 첨단 기술을 사용하거나 현지 안전관리요원 등을 통해 분쟁 지역에서 활동가는 구호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체계가 잘 구축돼 있다는 느낌을 받아, 개인적으로 신뢰를 다지게 된 계기였습니다. 안전관리가 철저하다는 것은, 일면 활동에 불편을 초래할 수도 있지만, 사실 위기관리가 가능한 조직의 힘과 역량이 있다는 말이니까요. 

활동지 도착 후 얼마 안 있어 숙소 인근에서 폭발물 관련 화재가 발생했다. ©국경없는의사회/홍준표 

어디서 어떤 활동을 하셨습니까? 해당 지역의 주요 의료보건 문제로는 어떤 것이 있나요?  

성형외과 의사로서 가기 전 브리핑에서는 주로 화상 환자가 많을 것으로 들었습니다. 가보니 전투나 가정내 화상 환자가 하도 많았어서 기존에 병원에 있던 의사와 간호사들은 이미 화상 치료 전문가들이더군요.  

가자지구 남쪽의 나세르(Nasser), 북쪽에는 시파(Shifa)라는 종합병원 2곳이 저의 주 활동지였습니다. 거주는 북쪽에서 하되 남쪽에 2-3회 갈 때는 차를 타고 약 45분-1시간 정도 이동했고요.  

하지 외상, 즉 총상이나 폭발로 인한 소위 급성 복합골절 환자가 가장 많았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비교적 분쟁 휴지기간이라 간헐적으로 총소리나 폭발음이 들리는 정도였지만 가기 직전에도 한번쯤 긴장 고조가 있었고, 무엇보다 2018년에 시작됐던 ‘귀환 대행진(Great March of Return)’때는 수백 명 주민이 벽쪽으로 나아가 시위를 했거든요. 당시 이스라엘군측에서 발포한 총에 다리쪽을 맞은 환자가 많았는데, 아예 절단한 경우도 꽤 있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골수염이 심해진 경우도 많습니다.  

2020년 국경없는의사회가 나세르 병원에 새로 설립한 외과 복도를 걷는 환자 ©Lyad Alasttal/MSF 

그렇게 난이도 높은 재건 수술이 필요해진 경우 아무래도 이상적인 수술 도구가 갖춰져 있진 않다보니 서울에서라면 4-5시간 걸릴 수술이 보통 10-12시간은 걸리는 형편입니다. 그렇다보니 난이도 높은 수술은 하루에 1건, 일주일에 2-3건 하는 정도죠. 나머지 시간에는 외래 환자도 보고 일정 부분 현지 의료진 교육에도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수술실 수술 도구 ©국경없는의사회/홍준표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었습니까? 어떤 상황이 가장 기억에 남으셨나요? 

수술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환자를 미리 보면서 왜 그렇게 됐는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곳에서 물론 처음에 부상을 입었을 때 초기 재건이 잘 된 경우도 가끔 있었지만, 2018년 행진 당시에만 해도 외상환자 수십 명이 동시에 들어오고, 그후 폭발 건이 있을 때마다 비슷한 상황이 재현됐는데, 성형외과의가 늘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일반의들이 인터넷 등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급하게 임시 대처를 한 경우도 있거든요. 지금은 성형외과의가 남쪽 병원에 3인, 북쪽 병원에 12인 있는데 사실 이들이 체계적으로 성형의학을 이수한 의사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관련 수술을 못하진 않아요. 자원이 부족한데도, 혹은 부족하니까, 정말 색다른 방식으로 어떤 경지에 올라있다고 할까요. 제약으로 인한 혁신이 나타나는 거죠.  

또 현지 의료진은 어떤 경우에든 포기하지 않고 자기 동포들을 살리려는 열정을 바탕으로 일합니다. 그런 걸 보면서 그들에게 저도 존경심을 갖게 됐지만, 그들의 그런 열정을 느껴서인지 환자들도 기본적으로 의료진에 깊은 감사의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리를 절단하게 됐다고 해서 원망하는 경우도 없고, 산 사람은 살아있는대로 감사를 표하고요. 공통적인 상황으로 고난을 함께 겪다보니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 어떤 끈끈한 동지애 같은 것이 생겨있다고 할까요. ‘나도 포기 안 할게, 너도 포기하지 마’라는 느낌입니다. 그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환자로서는 사실 수년간 별 진전 없이 상태가 방치되어 있었다고 느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의사는 이렇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구나’라는 믿음이 있는 거죠.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생겨난 그런 상호 신뢰를 보면서 ‘아 이런 인간적인 아름다움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개인적으로 희망이라는 단어를 다시 품게 됐습니다.  

수술실에서 현지 의료진과 함께 ©국경없는의사회/홍준표 

그렇다면 활동 중 어려웠던 점으로 기억나는 건요? 

맥주가 없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큰 수술을 하고 나면 나가서 친구를 만나 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맥주 한잔 하는게 하루 일과를 마치는 최고의 방법이었거든요. 나 자신을 축하하고 고된 하루를 달래는 루틴이 없으니까 그 점이 허전하고 아쉬웠어요. 이걸로 힘들었다고까지 말하는 건 좀 지나치려나요(웃음). 

안전 문제로 인한 폐쇄적인 생활도 처음에는 좀 힘들게 느껴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고 ‘잘 됐다, 이시간에 책이나 보자’고 금방 포기하니 오히려 충실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운동도 하루에 두 번 하고, 결국 3kg을 감량하고 왔습니다.  

하루 일과를 어떻게 충실하게 보내셨나요? 

아침 6시경에 일어나서, 일단 나가지 못해 답답하니까, 잘 작동하지는 않더라도 숙소에 있는 러닝머신으로 뛰고, 중량 운동도 좀 하고요. 숙소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는 병원에 출근할 때는 도착 첫날에 받았던 전화기에 깔려있는 지도앱에 빨간색으로 표시된 구역을 벗어나면 안됩니다. 보통 규정 근무시간이 오전 7시-오후 3시고요. 북부 병원에서 근무하는 날은 숙소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남부 병원에 가게 되면 현지 의료진이 사다주는 팔라펠을 함께 먹었습니다. 퇴근하고 4시가 넘으면 강의가 없는 날은 숙소에 가서 책이나 논문도 보고 밀린 이메일 처리도 하고, 술이나 바가 없으니 9-10시면 취침했습니다. 누군가 임지를 떠날 차례가 되면 저녁에 가끔 피자 파티가 열렸는데, 저도 떠나기 이틀 전쯤에 현지 주민과 결혼한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떡볶이를 주문해서 동료들에게 대접했죠.  

현지에서 활동가가 발견한 ‘한국인 국수’ ©국경없는의사회/홍준표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이 해당 지역에서 어떤 영향을 가진다고 생각하셨나요?  

일단 국경없는의사회는 현지 체계와 좀 다르면서도 인간적인 의료 서비스를 오랫동안 해왔다보니까 현지 주민들의 신뢰는 확실하게 얻어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활동 안전도 보장되고 지속가능하게 오래 갈 수 있구나, 생각했고요. 

저는 한국에서 교수로 일하며 한국에 방문하는 외국 의료진을 연간 수십 명 교육하고 있기에, 현장에서도 ‘내가 하는 수술도 중요하지만 현지 의료진이 관련 수술을 잘하게 되도록 지원하는 역할도 중요하다’는 철학을 고수한 편인데요. 여기에 필요한 예산을 측정하고 필요한 경우엔 집행하는 국경없는의사회의 유연성과 나름의 전략적 사고도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원래 구호활동가로서 파견된 제게 의료진 대상 강의 일정은 거의 예정에 없었는데 결국 현지에서는 20번 정도 관련 분야 강의도 하고, 성형과 정형 개념을 합해서 생각하는 오쏘플라스틱(orthoplastic surgery) 관련 학회 창립에도 관여하고 왔습니다. 그곳에 엄연한 정치적 현실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 그렇게 후학을 가르치는 데서 오는 보람이 큰데, 그것이 국경없는의사회의 활동 원칙에도 맞아들어가는 부분이 있어서 특히 보람을 느꼈습니다. 

현지 보건부 및 의료진들과 강의 및 교류 활동 ©국경없는의사회/홍준표 

국경없는의사회 미래의 활동가와 후원자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한국전쟁 이후로 한국이 국가간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변해온 것처럼, 후원을 하시는 후원자 분들이 있어 사회 단위에서도 받는 사회에서 주는 사회로 변모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변화로 인해 또 우리같은 한국인 활동가들이 현장에 나가서 직접 활동하는 걸로 기여할 수 있는 사회도 되었고요. 

분쟁 지역에 나가면 환자 수술 수요가 급증할 때가 있어 의사로서 의사 본연의 의무에 물론 충실해야합니다. 그리고 남들에게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전수할 필요도 있어서 그런 준비가 되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남을 돕는다는 것이 활동 의미의 다는 아닙니다. 저는 한국에 돌아와 비행기가 착륙하는 순간 핸드폰을 켜면 문자가 물밀듯이 쏟아져들어오는 것을 보고 한국이란 사회 자체가 마치 영화 소재인 ‘설국열차’같다는 느낌도 갖거든요. 그런 사회 속에서 의사란 직종에서 근무하다보면 어느 순간 눈앞의 환자를 인간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의사란 희망이란 것을 나눌 수 있는 직종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잊고 있을 때가 있고요. 저는 아까 말씀드렸듯 이번 활동으로 ‘희망’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됐는데, 그걸 인간애라고까지 거창하게 말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활동은 제게 사람으로서 갖추고 있는 기본 정서를 재점검하게 된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활동기간 중 어느날 일과 후 현지 동료들과 함께한 식사 장소에서 내려다본 가자지구 시내 전경 ©국경없는의사회/홍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