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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 깨끗한 물 부족으로 질병 창궐 위험

2024.02.16

저 멀리서부터 보이는 긴 줄에 각종 연령층으로 이루어진 수백 명의 사람들이 40리터짜리 쨍한 노란색 혹은 파란색 제리캔(jerry can, 플라스틱 물통)을 들고 서있다. 몇몇 사람들은 가자지구 남부 소재 라파(Rafah) 지역 내 사람들로 북적이는 물탱크 근처 텐트에서 지낸다.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임시 거처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거처로 필수 자원을 싣고 가기 위해 휠체어, 손수레, 쇼핑 카트, 혹은 유아차를 가져오기도 한다. 한 시각 장애인 남성은 어린 딸을 데리고 왔는데, 딸은 길 안내를 하고 그는 물을 짊어지고 갔다. 이들이 사는 해안 지역 알 마와시(Al-Mawasi)에는 깨끗한 물이 없기 때문에 2km를 걸어 해당 지역까지 찾아온 것이다.

팔레스타인 실향민들이 물을 배급받기 위해 제리캔을 들고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2024년 1월. ©Mohammed Abed

4개월 전 가자지구 전쟁이 시작된 이후, 가자지구에 거의 끝도 없이 가해진 공습으로 수도관을 포함한 대부분의 인프라가 파괴되었다. 유니세프(UNICEF)에 따르면 가자지구 내 식수위생 시설 최소 절반이 손상되거나 파괴되었으며,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사업기구(UNRWA)에 따르면 가자지구 인구의 약 70%가 염수(塩水)나 오염수를 마시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존에는 300,000여 명이 거주했지만, 현재는 가자지구 전역에서 찾아온 실향민 150만 명이 머무는 이집트 국경지대 소재 라파 내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식수, 요리 혹은 위생 관리에 필요한 깨끗한 물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당 지역 거주민들의 생활 여건은 인구 과밀화 및 깨끗한 물•화장실•샤워실•하수도 시스템 부재로 인해 이미 열악했고, 겨울 추위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다.

물 부족으로 인한 독감, 피부병, 설사병

우리는 식수 및 기타 용도에 필요한 깨끗한 물 부족으로 인해 환자들이 소화기 장애와 현재 널리 퍼진 독감 바이러스로 고통받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위생 관리에 필요한 깨끗한 물 부족으로 인해 아동들이 피부 발진에 시달리는 현상을 목격했습니다.”_모하마드 아부 자이드(Mohammad Abu Zayed) / 국경없는의사회 보건증진 책임자

또 다른 보건 문제는 탈수증 및 A형 간염이다. 깨끗한 물 부족 사태는 음식 조리 및 개인의 위생 관리에도 영향을 미쳐 감염 위험을 높인다.

깨끗한 물 부족은 설사 및 피부 질환과 같이 수질과 연관된 여러 가지 질병을 유발할 수 있고, 단순히 물이 충분하지 않아 탈수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성인보다 면역 체계가 약하고 각종 질병 및 알레르기에 더 많이 노출돼 있는 아동들에게 타격이 더 큽니다.”_마리나 포마레스(Marina Pomares) / 국경없는의사회 가자지구 의료 자문

라파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실향민들이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는 모습. 2024년 1월. ©Mohammed Abed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라파 소재 두 지역에서 필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월 2일 기준, 국경없는의사회 샤부라(Shaboura) 진료소와 알 마와시(Al-Mawasi) 보건지소에 유입된 5세 미만 아동 환자 질병률 중 거의 30%가 설사병이나 피부 질환에 해당했다. 또한 최근 몇 주간, 라파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A형 간염 의심 환자 43명을 수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보건 문제는 모두 깨끗한 물 부족과 연관되어 있으며 해당 지역 내 제대로 기능 중인 의료시설 부족으로 더욱 악화되었다.

라파 내 실향민들의 가장 시급한 수요에 일부 대응하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2023년 12월부터 물 배급 프로그램을 개시했다. 현재 국경없는의사회 식수위생 팀은 일일 평균 110,000리터의 안전한 식수를 약 20,000명에게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전혀 충분하지 않다.

보통 1인당 하루 필요 식수는 2-3리터입니다. 하지만 현재 물이 부족한 탓에 6명으로 이루어진 한 가족이 제공받을 수 있는 물은 평균적으로 1갤런(약 3.8리터)밖에 안 됩니다.”_유세프 알 키샤위(Youssef Al-Khishawi) / 국경없는의사회 식수위생 팀원

국경없는의사회 식수위생 팀원 유세프 알 키샤위가 아이들이 텐트까지 물통을 옮기는 것을 돕고 있다. 2024년 1월. ©Mohammed Abed

가자시(Gaza City) 출신인 하닌(Hanin)은 전쟁 초기에 포격을 피해 집을 떠났고 현재 라파에 머물고 있다. 해당 지역 내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닌 또한 충분한 식량, 물, 기타 필수품을 얻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는 물을 얻기 위해 줄을 섭니다. 물을 좀 구할 수 있게 되면 몸을 씻거나 설거지하는 데 쓸 거고, 만약 구하지 못하면 내일까지 또 기다려야죠.”_하닌

국경없는의사회는 물 배급량을 늘릴 준비가 되어 있지만, 구호물자 및 연료를 싣고 가자지구로 반입되는 트럭의 수가 제한되어 있는 등 각종 제약 조치 때문에 그렇게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물을 배급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주된 문제는 물을 펌프로 퍼 올리고 운송하는 데 필요한 연료가 부족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우리 트럭이 이동할 수 있는 적절한 도로가 부족한 것이죠. 아스팔트 도로에도 텐트가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는 물을 배급할 장소가 없다는 겁니다. 다 폭격을 당했거든요. 수도관, 도로, 인프라도 전부 파괴되었고요.”_유세프 알 키샤위

라파 소재 난민 캠프의 전경. 2024년 1월. ©Mohammed Abed

국경없는의사회는 지속적 휴전을 거듭 촉구한다. 지속적 휴전만이 가자지구 주민들이 그들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또한 가자지구 내 구호물자 반입 경로가 복구되고 지원 규모가 확대되어 주민들을 위한 식량, 물, 의료서비스 같은 필수 자원 접근성이 보장될 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