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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나이지리아: “산모들이 병원에 올 때는 이미 때를 놓친 경우가 많습니다”

2019.07.31

 

이름: 이예지
포지션: 산부인과 전문의
파견 국가: 나이지리아
활동 지역: 자훈 (Jahun)
파견 기간: 2019년 3월 ~2019년 4월

나이지리아 자훈에서 이예지 활동가 (산부인과의) ⓒ국경없는의사회

 

1. 국경없는의사회 구호 활동을 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학생 때 국경없는의사회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언젠가는 그곳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특히 본과 때 세계보건기구(WHO)와 코이카를 통해 해외 봉사를 다녀오신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국제의료봉사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김용박사님의 아이티 결핵 퇴치 프로젝트를 그린 ‘벤딩 디 아크(Bending the Arc)’라는 영화를 보고, 바로 지원했습니다. 

이번 활동을 마치고 보니 훌륭한 동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제가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지속하고 싶은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함께한 동료들이 열린 마음과 헌신하는 자세로 타인의 행복을 위해 일하는 모습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은 매우 전문적이었는데, 말 그대로 이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이런 기회가 자주 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 저는 공중 보건학에 관심이 있는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어떤 진로로 나갈 수 있을지 정보가 충분치 않았습니다. 다행히 현장에서 만난 프로젝트 코디네이터와 다른 동료들이 이미 이 분야 학위가 있었고, 제 진로를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2. 구호 활동을 떠나기 전 어떻게 지내셨나요? 어떤 준비를 하셨는지 알려주세요. 

미국 대학원 진학 준비로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현장에서 큰 도움이 됐습니다. 현장에 오기 직전에는 유튜브로 수술 과정 등을 검색해보며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3. 이전에는 어떤 일을 했었나요? 어떤 경험이 가장 유용했나요? 

전공의 시절에는 주말마다 라파엘 외국인 무료 진료소에서 봉사했고, 학생 때는 해비타트를 포함해 해외봉사를 다녀왔습니다. 외국인 무료 진료소에서 영어로 진료를 진행했던 점이 제일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습니다. 

 

4. 이번에 활동하고 돌아온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이번에 다녀온 나이지리아 프로젝트는 병원을 짓고 구호 활동을 시작한지 무려 10년이 넘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지인 스태프를 포함해 국경없는의사회 직원 42명이 있었고, 저는 의료진으로 의료팀과 긴밀하게 일했습니다. 의료팀은 서로 다른 전문 분야를 가진 구호 활동가 약 20명 정도로 구성되며 산부인과의 2명과 마취과의 1명으로 구성된 국제 구호활동가 3명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임신•출산 중 합병증으로 수술이나 입원이 필요한 경우, 의료팀장(Chief)과 활발한 논의를 거쳤습니다. 의료팀장은 의료 지식이 뛰어나고 굉장히 협조적이었는데, 매일 회진을 돌며 병원이 돌아가는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습니다. 따라서, 조언을 구하거나 의견을 개진하기도 쉬웠습니다. 프로젝트 중반에 초음파 담당의 에린(Erin Strata)이 합류해 네 명이 아침마다 회진을 함께 했습니다. 환자 상태에 대해 함께 논의했고 때때로 밤까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제가 다룬 수술 케이스는 대부분 임신 중독증(Eclampsia), 난산(Destructive delivery), 제왕절개 기록을 가진 산모의 분만이었습니다. 집중 치료실 치료가 필요한 중증 산모는 일주일에 3-5명 정도였습니다. 입원 후 중환자 관리가 이어졌는데, 산후 마그네슘, 황산염 치료(postpartum magnesium sulfate therapy) 케이스가 주를 이뤘고, 자궁 수축 부전(Uterine Atony) 및 태반 조기박리(placenta abruption)로 인한 파종성 혈관 내 응고장애(DIC; Disseminated intravascular coagulation)에 대한 집중 치료 및 수혈이 뒤를 이었습니다. 마취과의가 수술 후 중환자 관리를 잘 해주었기 때문에 저는 수술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했던 수술을 세어보니 5주 동안 90건이 넘었고, 특히 제왕절개는 70건이 넘었습니다. 한 주에 진료하는 환자(admission)도 평균 200명이 넘었습니다. 

병동을 돌며 회진을 하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 ⓒ Michael Nossier/국경없는의사회

나이지리아 자훈 병원 수술실 모습 ⓒYeji lee /  국경없는의사회

수술이 진행되고 있는 나이지리아 자훈 병원의 모습 ©Maro Verli/MSF

 

5. 현장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휴일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셨나요? 

하루 일과는 8시 아침 회진으로 시작해 저녁 6시 30분 회진으로 끝납니다. 원칙적으로 산부인과의는 주간 또는 야간 근무 중 하나를 담당하지만 업무량과 응급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협력했습니다. 야간 근무한 다음날은 하루 쉬도록 되어있지만 다른 의사가 의사결정과 수술을 모두 담당하기 어려웠으므로 오후에는 출근해 병동 관리를 돕곤 했습니다.

보통 1시부터 2시까지가 점심시간이었는데, 병원에는 제대로 식사가 가능한 공간이 없었었습니다. 매일같이 응급 수술이 있었기 때문에 조용하고 평화롭게 식사하는 날은 거의 없었고 다른 동료 의사가 보내준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에는 수술 일정이 꽉 차서 점심을 아예 못 먹기도 했습니다.

응급 상황을 제외하고는 주간 근무가 끝나는 오후 6시 30분쯤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저녁에는 보통 동료들과 식사를 하거나 배드민턴, 탁구 등 게임을 하며 자유시간을 보냈습니다. 가끔 열리는 바비큐 파티도 참 즐거웠습니다.

야간 근무는 저녁 회진으로 시작하는데 수술 환자들을 먼저 확인하고 환자 상태에 따라 우선 순위를 조정했습니다. 보통은 제왕절개 1~2건을 마치면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저녁 이후에는 동료들로부터 다른 수술 건으로 요청 받기도 했습니다. 환자 케이스는 달랐지만 하루에 3-4 건 정도 이루어졌습니다. 병원에 있는 시간은 날마다 다른데, 저녁 7시에 시작해 이튿날 아침 8시까지 쉬지 않고 일에 매달렸던 날도 기억납니다. 주말에는 휴일을 연달아 보내기 위해 야간 근무를 이틀 연속으로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평일에 비해 조금 더 힘들다고 느껴졌습니다.

휴일에는 회복을 위해 하루 종일 잠을 잤습니다. 이곳에서 스케줄이 육체적으로 꽤 힘들었고 제 생활 패턴에도 영향이 있었습니다. 활동 마지막 주에는 체력이 거의 소진되어 휴일을 즐기지도 못했습니다. 한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져 새벽 1시까지 병원에 있기도 했습니다. 동료들은 매일 아침 조깅을 하기도 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체력이 달려서 함께 하지는 못했습니다. 

자훈 프로젝트 국경없는의사회 스텝들과 함께 ⓒ국경없는의사회

가족 같이 서로 챙겨주었던 국경없는의사회 구호 활동가와 현장 직원들 ⓒ국경없는의사회

 

6. 주거 환경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방마다 달랐는데 전반적으로 넓고 쾌적했습니다. 실내에 전용 욕실과 에어컨도 갖춰져 있었습니다. 다른 동료들과 비교했을 때 제 방은 가장 좋은 축에 속했습니다 일부는 욕실이나 에어컨을 여러 명이 함께 써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자훈 천국’ 우리는 우리 숙소를 이렇게 불렀다. ⓒ국경없는의사회

 

7. 활동 중 인상에 남았던 경험이 있었나요? 

나이지리아 북부는 사하라 사막과 가까워 굉장히 척박한 지역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근에 시달리는 반면 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입니다. 일부 다처제와 미성년 결혼이 법적으로 허용되기도 해서 여성들은 14세 정도부터 임신을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십대 임신과 임신 중독증 같은 고위험 산모가 많은 반면 산전 진찰율은 매우 저조합니다. 따라서 산모들이 병원에 내원했을 땐 이미 때를 놓쳤거나 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된 경우가 많습니다.

종종 긴급 수술을 위해 보호자 연락을 하려 할 때면 남편이 기도를 하느라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환자가 내 앞에서 죽어가는 1분 1초가 소중한 순간에 보호자 동의가 없어 수술하지 못하는 상황이 분하고 안타까워 눈물이 나기도 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18살 초산모가 과다 질출혈로 병원에 도착했던 날입니다. 집에서 난산을 겪던 중 자궁 파열이 왔고, 응급 수술로 아이를 꺼냈지만 이미 뱃속에서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지혈을 하려 했지만 실패해 결국 자궁을 드러내는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자궁 적출 수술을 하겠다고 말하니 남편도 같이 울었습니다. 수술에서 깨어난 뒤 산모에게 중환자실에서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궁을 뗄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하니 18살 소녀의 얼굴이 아주 어두워졌습니다. 자훈 지역에서는 “아내=출산”이라는 인식이 있어 여성이 아이를 갖는 것은 가족 안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반대로 가임력이 없는 아내는 아무 의미가 없다 생각해 이혼 당하는 일도 빈번하다고 합니다. 어린나이에 결혼해 성숙되지 않은 골반구조로 인해 난산을 겪고, 첫 임신에 아이와 자궁을 잃은 18살 소녀가 가여워 저와 제 동료는 그날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당시 상황에서 소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고, 나아가 가족을 위한 일이었다는 것을 가족들에게 지속적으로 주지시켰으나, 여전히 뿌리 깊은 사회적 인식 때문에 앞으로 소녀가 겪을 정신적 고통과 상실감을 보듬어 주기 위해 정신과 치료 또한 연결해주었습니다. 자훈 지역에서는 이런 경우가 빈번해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은 산모들의 정신건강을 위한 심리치료 세션을 건의해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8.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요? 

구호 활동 중 공중 보건에 대해 관심이 생겼습니다. 내년에 공중 보건(Public Health) 석사 과정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9. 미래 구호 활동가들에게 한마디 

가능하다면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추천합니다. 성향이 그렇지 않더라도 외향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현장에서는 도움이 됩니다. 구호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면 그 부담감이 훨씬 줄어들고 일도 수월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