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현장소식

시에라리온: 약사가 산골 마을을 누비는 법

2023.05.26

이름: 강경애

포지션: 약사(Project Pharmacy Manager)

파견 국가: 시에라리온

활동 지역: 케네마(Kenema)

활동 기간: 2022년 10월 – 2023년 4월 


시에라리온 케나마 인근 산간지역 보건소에서 만난 아이들과 함께한 국경없는의사회 강경애 활동가 ©강경애/MSF

1. 다녀오신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지는 어떤 곳이었나요?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시에라리온에 다녀왔습니다. 다이아몬드라는 자원을 가져 소위 ‘자원의 저주’를 받았다고 하는 나라들 중 하나입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라는 영화로도 잘 알려져 있죠. 

저는 시에라리온 수도 프리타운(Freetown)에서 서쪽으로 320km  떨어져 있는 케네마(Kenema)라는 지역의 국경없는의사회 모성병동과 아웃리치팀에서 약사로 활동했는데요. 이곳은 인접국 라이베리아 및 기니 국경과도 가까운 지역입니다. 하지만 교통편이 잘 없고 도로사정이 열악해서 비가 오면 길이 끊겨버리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병원은 커녕, 한국의 보건소와 유사한 형태인 지역내 보건 거점을 방문하려면 6시간 이상 걸어야하는 어려움을 가진 의료 소외계층이 많은 곳이기도 하죠.

국경없는의사회는 병원팀과 아웃리치팀으로 나뉘어 있는 구조였는데요. 지역적으로 라싸열 (Lassa Fever) 및 말라리아 발병률이 높은 곳이기 때문에, 아웃리치팀은 외딴 지역 소외계층으로 하여금 예방·진단 및 치료를 위한 약품 공급과 의료서비스 접근성을 보다 쉽게 확보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운영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전남 구례군 보건소를 통해 지리산 골짜기 곳곳에 있는 환자에게도 약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거랄까요. 

국경없는의사 아웃리치팀은 접근성이 어려운 지역까지 차량이나 모터바이크를 통해, 아니면 걸어서라도 일단 들어가서 수요조사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필요한 약품을 공급하려 노력합니다. 저는 약사로서 이런 팀에 합류하여, 외딴 지역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꼭 필요한 약국 내 의약품의 저장 상태, 재고확보 및 의약품의 유효기간 등을 확인하고, 이것들이 환자들에게 제대로 투약되는지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고, 이와 관련하여 현지 직원을 교육하는 일을 했습니다. 

도로 사정이 열악한 벽지로 약품 등 보급 활동중인 국경없는의사회 아웃리치팀 ©강경애/MSF

외딴 지역 곳곳에 백신을 공급해 질병예방을 우선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백신의 유효성을 유지하여 수혜자들이 안전하게 접종을 받으려면 ‘콜드체인(cold chain)’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쉽게 말해 백신 저장 장치의 온도 유지관리인데요. 주문한 약품이 유럽에서 시에라리온 수도 프리타운에서 케네마까지 이동하려면 아무리 빨라도 여섯 시간은 더 소요되거든요. 현지 온도가 보통 36도가 넘어가는 기간에는 이 콜드체인에 문제가 생기기 쉬워서 일과시간 상관없이 24시간 대기하다가 필요 물품을 수령하는 등 관리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2. 활동지역의 가장 심각한 의료보건 문제는 무엇이었나요?

라싸열도 위험한 질병이고, 이 지역에서는 HIV나 말라리아 감염률이 아주 높습니다. 제가 한 산골 지역에 방문했을 때, 4.3킬로그램 정도 아기들의 혈액을 검사하길래, ‘설마?’하며 걱정했는데 실제 결과가 HIV 양성 또는 말라리아 감염으로 나타나 안타까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행이라면 요즘은 말라리아 치료약 효과가 좋아서, 일찍 진단하여 처치한 경우에는 하루 만에 회복되는 경우도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비해 모세혈관이 파괴되는 라싸열은 치사율이 높아서 위험합니다. 몇 년 전 해당 지역에 에볼라 바이러스도 발생한 적이 있는데, 제가 활동하는 기간 중에는 없었습니다. 

시에라리온은 출산 및 영아 사망률이 높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모성사망률을 줄이기 위한 모자보건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의료텐트에서 시작했던 구호활동이 2019년 케네마 병원을 건축하는 것을 시작으로 응급병동, 소아병동, 산부인과 및 지역적인 질병치료를 위한 격리병동으로까지 확대됐습니다. 

2021년 시에라리온 케네마 지역 증축 중이던 국경없는의사회 병원 현장 ©Mohammed Sanabani/MSF

2023년 6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계 인사가 선거 유세차 인근 지역을 방문했을 때 대형 운동장 펜스가 무너지는 사고가 있던 것도 기억납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즉시 응급팀을 꾸려서 현장에 파견했습니다. 많은 부상자들이 가장 먼저 국경없는의사회 이동진료소로 왔죠.

3. 특별히 기억나는 즐겁거나 보람있는 순간이 있었나요?

어느날 저녁 아무리 봐도 말라리아 환자인 것 같은 사람이 늦게 찾아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 하루를 넘기면 치료가 힘들어질 정도인 것 같아서 당장 테스트를 해보자고 하니 정말로 양성이 나왔던 사람인데요. 다행히 양성으로 나온 키트 사진을 전달받고 바로 치료를 시작할 수 있어서 큰탈없이 나았습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시에라리온 사람들 뿐 아니라 외국에서 파견된 직원들에게도 말라리아는 조기 발견과 예방이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 말라리아 치료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감염되면 여전히 위험합니다. 

제가 근무하던 곳은 기본적으로 1960년대 한국 시골 마을들 같은 환경이라, 저는 될 수 있는대로 많이 걷고 동네 아이들과 잘 지내는 것으로부터도 즐거움을 찾았습니다. 현지 주민들의 언어를 익혀서 소아 환자들에게 인사하면 고통에 찡그리고 있던 아이들도 웃어주고 부모들도 좋아해주셔서 기뻤습니다. 그중에서도 영양실조에 걸려 36개월에 2.9kg이었던 한 아기가 저를 보고 웃어주던 순간이 특히 기억나네요. 아기가 웃거나 운다면 그건 생명이 살아있다는 증거잖아요. 그래서 사실은 아기가 우는 소리만 들려도 감사한 기분이 들었던 생각이 납니다. 

아웃리치 활동 중 만난 아동 환자 및 그 보호자들과 웃음을 나누는 강경애 활동가 ©강경애/MSF

저는 약사지만 병동으로 가서 사람들이 약 복용을 제대로 하도록 직접 설득하기도 했는데요. 예를 들면 소아환자들에게 웃음을 유도한 후 재빨리 그 기회를 틈타 약 복용을 돕는다거나요. 그런 식으로 관계를 형성하면 간호하느라 지쳐있는 아기 엄마들도 고마워하며 반갑게 웃어주는 것도 기뻤습니다. 

4. 그럼 어렵거나 힘들었던 순간은요?

에너지나 설비 관리팀이 아마 저때문에 성가시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콜드체인 관리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요. 창고에 전기가 나가서 약품을 못 쓰게 되거나 사고가 발생하면 안되니까, 주말에도 나가서 가동 상태를 확인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느 토요일 오전 8시에 국제 배송되는 약품 조달을 준비하려고 한 보관 현장에 나가보니 모든 냉장고 전원이 내려져 있어서 아찔했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쥐가 전선을 갉아먹은 것이었어요. 휴일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에너지팀에 전화해서 도와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기 전에 전원을 다시 살려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세 번쯤 있었는데, 다들 휴일을 망쳤다고 짜증내지 않고 달려와 주셔서 거듭 감사를 드렸습니다. 결과적으로 제가 있는 동안은 콜드체인에 문제가 생긴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는 냉장고 옆에서 온도 체크하고 있을 때가 제일 마음이 편하더라고요(웃음). 

약품 창고에서 산간 지역으로 공급될 약품을 준비중인 활동가 ©강경애/MSF

또 한 가지 들었던 생각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늘 동등한 입장에서 상호 작용을 하려고 노력하는 게 무척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같이 일하는 일부 직원들이 산수를 잘 못하는 것을 보고 놀랐는데요. 약품 재고를 관리하면서 행이나 열이라는 개념을 몰라서 개별적으로 물품을 일일이 센다든가, 어떤 약 3,000정을 지급해야 하는데 300정으로 잘못 센다든가, 유효기간이 몇 개월 남았다는 것을 바로 해당되는 월로 치환을 못한다든가 하는 일들이 있으면 ‘아니 이렇게 쉬운 것을 모른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하지만 당연히 모두가 한국인처럼 산수 교육을 받거나 일처리에 급한 마음을 가진 건 아니거든요. 사람들의 교육수준과 교육방식 또는 그 문화를 잘 이해 못한 채 면박을 준다거나 하면 안되고, 일에 대한 확인을 함께 하거나 잘못된 점을 서로 고쳐주거나, 직접 실행하며 가르치는 모범도 보이고 해야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의 직접적인 수혜자들과의 관계에서 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직원들 사이에서도 상호 이해와 존중이 무척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5. 하루 일과는 어떻게 진행됐나요?

저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약품 사용량 모니터링 등 집에서 할 수 있는 보고서 작업을 하고, 6시쯤에는 동네에 나가 한 바퀴 돌면서 동네 주민들과 인사도 하고 그랬습니다. 병원으로 이동하는 차는 7:40분쯤 탔고요. 

출근하면 콜드체인과 창고 온도 현황 확인부터 하고, 기타 물류 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점검했습니다. 현지 의료진과 상시로 협업하며 복약지도에 오류가 없도록 안내하기도 했고요. 업무 중 약국 환경 개선과 재고 관리가 있다보니 직접 물건도 나르고 했습니다.

보건소에 나가보면 보통 오전 11시면 사람들이 꽉 차 있어요. 5세 이하 백신 접종 프로그램에 따라 보호자들이 아이 백신을 맞히려고 집에서 새벽에 나와서 걸어오는 것이죠. 그리고 12시가 넘으면 다시 몇 시간을 걸어 황량한 곳의 집으로 돌아가고요. 

활동가가 동네에서 출근할 때마다 인사를 나누던 아이들 ©강경애/MSF

6.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은 활동지역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이곳의 환자들에게 국경없는의사회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대부분의 주민들이 아플 때, ‘내가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 가면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를 낳을 때도 무사히 안전하게 도와주고, 설령 분만 과정에서 어려운 일이 생겨도 아기와 내가 둘다 무사히 살아나올 수 있다는 믿음을 오랫동안 쌓아온 결과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그곳에서 믿을 수 있는 고품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입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국경없는의사회가 현지에서 고용을 추동하는 효과도 낸다는 것입니다. 현지 의료진은 물론 직원들에게 국경없는의사회가 직업인으로서의 동기를 부여하고, 일정한 기준 이상의 수준 높은 일을 하도록 어떤 모범을 제시하는 역할도 하는 것이죠. 국경없는의사회가 하는 일 자체가 직원들에게 더 공부하고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독려하는 동기를 제공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직원 교육 중인 강경애 활동가 ©강경애/MSF

7. 활동가님의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요?

저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한센병원이 있는 소록도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우선 40여 년 오가며 일하던 소록도에 가서 환우들과 동료들의 안부를 묻고 저의 안부 및 그 동안의 생활을 보고합니다. 

지금은 이번 활동 중 현지에서 만난 환자들과 동료들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제가 워낙 열심히 즐겁게 잘 어울리니까 동료들이 ‘너는 꼭 여기 다시 돌아올 거다’고 농담도 했는데요. 실제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시에라리온에 다시 돌아가 활동하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8. 미래의 활동가에게 한 마디 전하신다면요?

이 일을 하시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이미 잘 알고 계시고 잘 하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선 생각보다 활동가들의 현지생활이 그렇게 불편하지 않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우리가 너무 편리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긴 하지만, 현장에 나오면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제공하는 적절한 지원이 있고, 사람은 어디서나 다 적응하며 살게 마련입니다. 

외국어도 큰 장벽으로 느끼실 필요는 없습니다. 한국인들이 시험은 잘 보는데 말은 잘 못한다고들 하는데, 어쨌든 관련 어학시험 자격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구비해 두시는 게 좋습니다. 개인적으론 아랍어도 공부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워낙 세계적으로 사용인구가 많은 언어고, 이집트 동료와 아프가니스탄 동료가 아랍어로 이야기하는 걸 보게 되면 소외감 또는 질투심을 느끼거든요(웃음). 

공부를 놓지 말고 꾸준히 하시고, 마음가짐도 함께 가꾸시면 좋겠죠.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이라면, 다른 이들의 역사를 존중하고, 나 또는 우리와 다른 문화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시에라리온 케네마 인근에 흔한 식당 및 산골 주거 가옥의 형태 ©강경애/MSF

9. 후원자 분들에게도 한 마디 남기시겠어요?

치료는 믿음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국경없는의사회는 그 믿음을 충족시킵니다. 인간을 존중한다는 편견 없는 가치와 그에 대한 신뢰를 추구하고, 실제로 이를 실행하는 기관입니다. 

저도 약사니까 약사 친구들이 많고, 그중에는 이미 국경없는의사회에 꽤 오래 후원 중인 친구들이 많습니다. 이번 활동을 마치고 경험한 저로서는 이전보다도 더욱 자신있게 친구들에게 국경없는 의사회 후원의 정당성을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품질을 중시하는 지속성 있는 단체다”라고요. 국경없는의사회는 현장에서 의료지원을 원칙에 따라 제대로 제공하고, 씨앗만 뿌리고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게 아니라, 결실을 볼 때까지 그곳에서 책임을 지는 단체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지역사회에서 단단한 결실을 스스로 맺을 때까지 아낌없이 가르치고 나누며 공생하는 단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