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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수단: 보육원의 소아과 의사

2022.12.12

이름:  홍기배
포지션:  소아과의
파견 국가:  수단
활동 지역:  카르툼(Khartoum)
활동 기간:   2021년 5월  ~ 2021년 12월


홍기배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소아과전문의(오른쪽에서 세 번째), 수단 카르툼 활동지에서 동료들과 함께 ©홍기배/국경없는의사회

1.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제가 다녀온 곳은 수단 카르툼에 위치한 마이고마(Mygoma) 보육원이었습니다. 예전에 국경없는의사회가 이곳에서 활동했었는데 잠시 활동이 중단되었다가 재개됐습니다. 이곳에 소아과 의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현장 파견이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보육원의 의료시스템을 개발하고, 시설에서 질환이 있는 아이들을 치료하는 의사, 간호사, 영양사 등을 교육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보육원생 중 40여 명 정도가 신경계 기저 질환을 가지고 있어서, 지속해서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야 했습니다. 

병원 뿐 아니라 방에 있는 아이들 건강 상태 확인과 방에서 일하는 시터 교육에도 참여했습니다. 아이들 방에서 일하는 시터들은 주로 국경없는의사회 현지 직원이 보육원 직원과 협업하여 교육합니다. 안전하게 수유하는 법, 음식물이 기관지로 들어가 감염을 일으키는 흡인성 폐렴의 예방법, 위생 교육 등 다양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보육원 대부분의 아이들의 발달이 느려서 9월부터는 정신 건강 매니저도 활동팀에 추가되어 아이들 발달에 대한 교육도 시행하였습니다.

2. 주요 의료보건 문제는 무엇인가요?

수단이 이슬람 국가이다보니 혼외로 낳은 아이를 사회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결혼 없이 아이가 생기면 사회와 가족으로부터의 가혹한 처벌을 피하기 위해 신생아들이 길거리에 버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버려진 아이들을 경찰이 데려와서 보육원에서 케어를 해주고 있는 셈이죠. 신생아부터 만 5살까지 340명 정도의 아이들이 보육원에서 생활중이고 한달에 30명 정도의 아이들이 새로 들어옵니다. 대부분 신생아입니다. 

오자마자 사망하는 아이들도 있고, 큰 병원으로 전원이 되었다가 돌아오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치료가 필요한 아이라면 병원으로 데려가야지 보육원으로 데려오지 말라고 보건 당국에 알렸지만 병원에서도 보호자가 없다면 책임지고 싶지 않다며 보육원으로 보내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보육원에서는 원래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아이들이 많아지고 2차 병원으로 전원하기도 힘들고 해서 클리닉을 입원 병동으로 운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환자들만 모아놨을뿐 치료는 잘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하는 인원의 반은 신생아에서 만 2개월 정도 되는 아주 어린 아기입니다.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아 세균성 장염이 많고 탈수증상도 많습니다. 하지만 나라에서 적은 월급으로 운영하고 있어 의료 물품이 부족하고 많은 아이가 방치되고 있습니다. 침대가 부족하여 작은 침대를 두명의 아이가 같이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신생아들이 있는 방에서는 시터들이 바쁘다며 급하게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켜주지 않고 눕히는 경우가 많아 흡인성 폐렴에 걸리거나 질식사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마이고마 보육원 ©홍기배/국경없는의사회
보육원의 연령 제한은 만 4살까지인데 기저질환이 있거나 갈 곳이 없는 아이가 남는 경우도 있어서 약 340명 정도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입양이 많이 되지는 않지만 입양을 지원해주는 수단의 단체를 통해서 입양을 가기도 합니다. 또 영어가 가능한 교육받은 어머니가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후 아이를 보육원에 보내고 가끔 만나러 오기도 합니다.

마이고마 보육원 ©홍기배/국경없는의사회

3. 특별히 기억에 남았던 환자가 있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자파르(Jafar)라는 이름의 아기가 있습니다. 심각한 영양실조였는데, 장염에 걸려서 심한 탈수로 입원했다가 패혈증과 신부전까지 진행했던 아이입니다. 큰 병원 중환자실로 이송해야만 했는데 전원을 요청한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아 내부 병동에서 치료를 했습니다.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우리 의료진의 치료만으로도 기적적으로 회복하였고 혼자서 병을 잘 이겨냈습니다. 몇 달 후 영양실조도 조금은 호전되었습니다.

처음 이 아기는 표정도 없고 사물에 관심도 없어서 청력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료진과 친해지고나니 웃기도 잘하고 옹알이도 하고 마스크와 안경에 장난치기도 해서 안도했습니다.

4. 보육원에서의 활동 경험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좋았던 점은 아이들이 들어와서 6개월간 자라고 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곳에서 제가 느낀 것은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발달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곳 직원들이 관행적으로 아이들과 놀아주지 않았습니다. 아니 놀아주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 보육원으로 간다고 했을 때는 아이들과 함께 놀고 치료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갔는데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침대가 부족해서 한 침대에 작은 아이 둘이 함께 지내는 경우도 있는데 침대에서 꺼내주지 않으면 밖으로 나오질 못합니다. 병원도 상황은 마찬가지라 약간 큰 침대에 3명이 누워있기도 합니다.

마이고마 보육원 ©홍기배/국경없는의사회

좁은 공간인 침대에만 있다보니 움직이지 못하니까 발달도 느립니다. 큰 아이 같은 경우는 나와서 놀게 놔두면 관리가 힘들어져서 방에 가두어놓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아이가 침대에 머리를 박는 등의 행동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혼자 먹을 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지 않아 세 살이 되어도 먹여줘야 할 정도입니다. 처음엔 소리를 지르거나 뛰거나 웃는 아이들이 없었는데 그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뛰고 노는 모습을 더 자주 보게 되는 게 제 기억에 가장 크게 남는 것 같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일을 하면서 눈에 띄게 바뀐 것은 머리를 침대에 박는 등 반복적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1분이라도 관계를 만들어가고 아이들과 이야기하기를 6개월간 꾸준히 지속했는데 처음에는 관심도 없고 표정도 없던 아이들이 변화해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다가가서 이야기하면 웃어주고, 사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모습이 정말 좋았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건강 매니저가 아이들과 매일 노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다행인 점은 이제 많이 환경이 바뀌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놀이터도 생겼고 밖에서 뛰어노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조금씩 바뀌는 중이지요. 시간이 지나며 제대로 된 보육원 같아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이고마 보육원 ©홍기배/국경없는의사회

5. 한국의 근무환경에 비교한다면 크게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한국에는 모든 높은 수준의 검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만 이곳은 그렇지 못합니다. 수단의 수도인 이곳에서는 MRI 등 다양한 검사가 가능은 하지만 아무래도 비용이 부족하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검사가 필요한 경우에는 여러 병원을 상대로 알아봐야 하고, 인큐베이터나 인공호흡기가 필요한 경우에 한국에서는 쉽게 전원을 할 수 있는 반면 여기서는 전원을 기다리다가 사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6. 숙소나 생활 환경은 어땠나요?

숙소는 한번 이사를 했었습니다. 첫 숙소는 마이고마 근처였는데 발전기가 고장이 나서 인터넷도 안 되고 전기도 잘 안들어오고 어려웠고, 이사한 후에는 꽤 좋았어요. 전기도 문제없고 물도 충분히 잘 나와서 이사 후에는 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보편적으로 수단 카르툼은 생활환경이 나쁘지 않습니다.  전기가 수시로 끊기긴 해도 발전기가 있어 대처가 가능합니다. 다만 물이 그리 깨끗하지가 않았습니다.

6명의 동료와 함께 활동했는데 서로 돕는 분위기의 환경이 조성돼서 좋았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하는 환경이었고, 내부 직원이 아닌 보건국 직원을 교육해야 하는 활동이라 쉽지 않은 부분도 많았지만 서로를 격려하며 잘 지냈습니다. 

마이고마 보육원 동료들과 함께 ©홍기배/국경없는의사회

7. 하루 일과가 어땠나요?

매일매일 비슷한 하루였습니다. 8:30분에 출근해서 4:30분에 퇴근하고 병원에 먼저 가서 의사들과 회진을 돌면서 교육하고 치료 계획을 세웠습니다.

회진이 끝나면 의사들과 함께 아이들이 있는 방을 돌았어요. 방이 12개 정도 있었고 한 방당 30명 정도 아이들이 있었는데 방에서 치료가 가능한 아이는 간호사에게 맡기고 입원해야 하는 아이는 병원으로 보냈습니다. 방을 다 방문한 다음에는 그날 입원한 환자 회진을 돌았고 한달에 1~2회 현지 의사를 모아 교육을 진행하곤 했습니다.

8. 이번 활동을 다녀오신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처음 시작하는 프로젝트였고 병원과 아이들 방 등 모든 곳에 워낙 문제가 많이 보여서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하는 것을 보면서 보람이 있었습니다. 특히 아이들의 표정이 바뀌는 것을 보면서 기뻤습니다. 아직도 해야 할 것과 유지해 가야 할 것이 많은 상황이지만 국경없는의사회를 통해 보육원이 아이들에게 따듯한 집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사람으로서 일한다는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국경없는의사회는 소외된 지역으로 떠나니 그에 대한 보람이 있습니다. 확실히 활동을 다녀오면 오히려 제가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내가 ‘좋아서’ 떠난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현장 활동을 하면 정말 보람이 있습니다.

또한 일단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만약 현장 활동의 계획이나 생각이 있다면 내가 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말고 도전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변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많은데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일단 한 번 정도는 도전해보시길 바랍니다.

9.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기존에 일하던 병원에서 다시 일할 예정입니다. 저에게 맞는 프로젝트가 생기면 또 구호 현장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마이고마 보육원 정문에 그려진 그림에 아랍어로 '놀고 배우고 자란다(We play, We learn, We grow.)'고 씌여 있다. ⓒ홍기배/국경없는의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