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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단: 말라칼 민간인 보호 구역 사람들의 정신건강에 나타나는 여파

2018.04.20

2014년 초, 남수단 어퍼나일 전투에 휘말린 지역민들에게 임시 보호를 제공하고자 말라칼 ‘민간인 보호 구역’(Protection of Civilian site, PoC)이 마련됐다. 이후 4년간 힘겨운 생활을 이어 가던 사람들은 절망감과 포위감을 느꼈으며 PoC에서는 생계유지 방편도 충분치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PoC 안에 갇힌 사람들의 정신건강에는 큰 여파가 나타났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아직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실정이다.

우기(6월~11월)가 되면 캠프는 대대적인 침수 피해를 입는다. 통로들은 다 진창으로 변하고, 사람들이 머무는 거처 바닥은 웅덩이로 변해 생활하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Raul Fernandez Sanchez/MSF

PoC 안에서 정신건강 지원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국경없는의사회

병동 한쪽 모퉁이에서 한 젊은 여성이 걷잡을 수 없이 몸을 흔들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이를 본 병원 스태프들은 여성이 자해를 하지 않도록 곧장 달려와 막았고, 한 간호사는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여성 주변을 칸막이로 막았다. 이 병원 정신과의로 활동하는 자이람 라마크리쉬난(Jairam Ramakrishnan)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심인성 발작이었는데요. 이 병원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PoC 안에 갇혀 지내며 느끼는 불안과 스트레스는 많은 이들이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무거운 짐입니다.”

2017년 한 해 동안 총 31건의 자살 시도가 있었고 안타깝게도 7명은 목숨을 잃었다. 연말에는 한 달 사이에 자살 시도가 무려 10건이나 있었다. 라마크리쉬난 박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우울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남성들도 다들 공격을 받거나 무장 단체에 끌려갈까 봐 캠프를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4년 말라칼 전투로 많은 이들이 살던 곳을 떠나야 했고, 이에 대응해 PoC가 생겼다. 캠프를 세운 유엔 남수단 임무단(UNMISS)은 사람들이 임시로 정착할 곳을 마련해야 했다. 캠프의 여건 개선은 시급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캠프 당국은 PoC가 당장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여건 개선의 필요성은 인지했으나 해볼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아동들은 캠프 밖 생활을 준비하며 여러 기술을 배운다. 아동들은 이 시간을 통해 지금보다 더 행복했던 과거 어느 때를 다시 기억하곤 한다. ⓒMSF/Philippe Carr

현재 이 좁은 공간에 살고 있는 2만5000명 중 대다수는 아동이다. 캠프 내 몇몇 곳에서는 1인당 평균 생활 공간이 채 17미터도 되지 않는다.

캠프 생활이 가장 힘겨운 때는 6월~10월에 찾아오는 우기이다. 우기가 돌아오면 흑토였던 땅이 질척한 진흙탕으로 변해 사람들이 머무는 거처 바닥이 모두 웅덩이로 변하고 만다. 라마크리쉬난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겪은 폭력을 고려할 때, 아마 많은 이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 눈에 보이는 모습은 다릅니다. 비록 폭력사태를 겪었지만, 사람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여러 징후를 보이지 않고 강인한 회복력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 없이 계속 이런 여건 속에 갇혀 지내다 보니 사람들은 절망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정신병에 걸린 사람들은 정신적인 감옥에 갇혀 현실 세계로부터 동떨어지고 만다. PoC 안에서는 자신의 세계 속에 빠져 힘겨워하며 멍하니 혼자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가족들의 정서적 지지도 받지 못한다.

PoC 안에서 정신건강 문제가 있는 사람들의 비율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알기 어려우나, 매월 중증 정신 장애로 국경없는의사회를 찾는 신규 환자는 평균 18명~20명에 달한다. 물론 여기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환자들의 숫자는 빠져 있다. PoC에서 정신건강 활동을 돕고 있는 ‘남수단 정신건강 의료진 워킹 그룹’에 따르면, 2017년에 보고된 모든 정신건강 환자의 절반가량은 우울 증상을 앓았고, 15%는 불안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종교 행사들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경험을 나누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사람들은 여럿이 모일 때 자신의 문제를 더 잘 꺼내놓고 함께 어울릴 수 있다. ⓒMSF/Philippe Carr

사라지지 않는 폭력의 위협이 긴장을 더하고 있다. 2016년 2월, PoC 안에서 전투가 일어나 25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중상을 입었으며, 캠프의 3분의 1이 불에 타 사라졌다.

어떤 사람들은 그 지방에서 나오는 ‘마리사’(marisa)라는 술에 의지하기도 한다. 캠프 내에 만연한 알코올 중독은 고혈압과 같은 건강 문제를 심화시키고, 결핵과 같은 질병에 맞서 싸울 저항력도 떨어뜨린다.

몇몇 여성들은 반복되는 일상을 위안으로 삼기도 하지만, 안전한 캠프를 벗어날 때면 성폭력의 공포에 휩싸인다. 생계를 위해 여성들이 하는 일 중에는 캠프 밖으로 나가 땔감을 구해오는 일도 있다. PoC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심리학자 나탈리아 로드리게스(Natalia Rodriguez)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들이 공격을 받고 성추행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상담이나 진찰을 받으러 국경없는의사회를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폭력을 당하면 결혼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다들 두려워하는 거죠.”

PoC에서는 아동기가 금방 끝난다. 2016년 하반기에는 아동들 사이에서 자살 시도와 실제 자살 사건들이 너무 많이 나타났다. 이에 캠프 당국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새로운 조치를 실행했다.

아동들이 겪는 곤경은 안타깝게도 눈에 띄지 않을 때가 많다. 공격성이나 야뇨증 같은 정서적 고통에 대해 부모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나가기 십상이다. 학대, 방치, 굶주림도 소리 없이 지나가 결국 아동들의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PoC 안에서 소득 창출 기회는 거의 없다. 여성들은 생계를 위해 캠프 밖으로 나가 땔깜을 구해 오기도 하는데 그러다가 공격을 받거나 폭력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사람들의 낙인이 두려워 대부분 치료를 받으러 가지 않는다. ⓒMSF/Philippe Carr

방치된 아동들이나 고아들을 거리에서 볼 수 있는데, 어떤 아동들은 식량 배급을 받지 못해 거리에서 쓰레기통을 뒤진다. 아동들 사이에서도 현실 도피의 수단으로 술을 찾는 경우가 있는데, 이로 인해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아동들도 있다. 나탈리아 로드리게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사람들이 우울과 같은 증상이 있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알려 주고자 노력합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우울을 유발하는 정신적 신호를 알아차리고 미리 대처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라마크리쉬난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언제 다시 어퍼나일 상황이 좋아져서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마시는 술은 캠프 안에서 제조된다. 일상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술에 의지하려고 하는데 이 때문에 정신적, 사회적 문제가 나타나기도 한다. 여기서 나는 ‘마리사’라는 술은 달리 생계 수단이 없는 여성들이 소득을 마련하려고 제조하는 경우도 많다. ⓒMSF/Philippe Carr

캠프 당국은 사람들에게 식량과 물을 제공하는 것 이상을 해야 한다. 거처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캠프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연계 활동을 개발하고, 캠프 내 고용 기회를 더 많이 창출해야 한다. 이렇게 취약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데 이를 지원할 정신건강 관련 자원은 부족한 상황이다.

매주 토요일, 일요일에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전통 춤과 노래를 연습하고 경연을 연다. 이러한 활동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각자에게 행복한 시간을 안겨주는 치료 효과가 있다. ⓒMSF/Philippe Car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