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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단: 홍수로 대규모 수재민 발생해 인도적 위기 악화일로

2022.12.28

남수단 올드판각 부근 침수된 마을의 전경. ©Florence Miettaux
여덟 명의 가족이 마른 풀로 속을 채운 작은 비닐 뗏목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나일강을 건너고 있다. 홍수로 살던 마을이 침수된 탓에 갓난아기를 데리고 험난한 여정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가족은 도착지가 조금이라도 안전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작은 비닐 뗏목에는 옷가지와 조리 도구가 실려 있는데 먹을 거라곤 사실상 물에서 건진 수련뿐이다. 가족이 살던 마을은 홍수로 대부분 잠겼다. 마을 주민은 수위가 상승해 아동과 고령자가 이동하기 힘들어지기 전에 임시 뗏목이나 통나무의 속을 파내 만든 카누를 타고 안전지대로 대피했다.


지난 40년간 동아프리카 지역은 최악의 가뭄에 시달렸지만, 남수단은 정반대의 위기를 겪고 있다. 수년간 지속된 대규모 홍수로 피해를 본 인구만 백만 명이 넘는다. 특히 지난 4년간 연속적으로 발생한 홍수 사태로 국토의 3분의 2가 침수되었다. 특히 남수단의 종글레이(Jonglei)주, 바르엘가잘 북부(Northern Bahr El Ghazal), 어퍼나일(Upper Nile)주, 유니티(Unity)주, 와랍(Warrap), 서에콰토리아(Western Equatoria), 레이크스 주(Lakes States)와 아베이 특별행정구역(Abyei Special Administrative Area)은 몇 달 동안 이어진 극심한 홍수로 몸살을 앓고 있다.

 

남수단 침수 피해 지역과 국경없는의사회 활동 지역이 표기된 지도, 2022 


나일강과 지류는 본래 일정한 주기로 범람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홍수의 주기를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전례 없는 수준의 홍수가 발생했다. 지역 주민은 우기가 더 빨리 시작되고 길어졌으며 과거와 비교했을 때 강우량 또한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강 수위가 높아져 범람하면서 토지가 계속해서 침수되다 보니 건기에도 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는다. 이렇게 우기 때마다 강이 빠르게 범람하며 2019년부터 매년 상황이 그 이전 해보다 더 악화하고 있다. 
각 지역사회는 침수를 예방하기 위해 흙으로 둑을 세워서 우기에 대비했지만, 침수 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무용지물이 됐다. 울랑(Ulang) 지역에서는 10월 내린 폭우로 둑이 무너지면서 보건소, 학교, 집 할 것 없이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겼다.

아침부터 물이 불어나는 걸 보고 진흙으로 둑을 보강하기 시작했습니다. 밤새 작업에 매진했는데 다음 날 아침이 되니 물에 다 휩쓸려 내려갔어요. 필사적으로 뛰어서 목숨은 구했지만, 홍수가 마을 전체를 삼켜서 다들 집과 가축을 잃었습니다. 참담한 심정을 이루 표현할 수 없어요.”_ 은야니스 방(Nyanyieth Bang) / 울랑 지역 주민 

홍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고 있다. 수많은 마을이 침수되고 섬처럼 고립되면서 지역 주민들은 필요한 서비스를 전혀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보트나 카누를 타야만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진료 팀을 파견하고 이동 진료소를 운영하며 고립된 지역의 취약한 주민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여전히 일부 지역에 접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홍수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지역에 지원을 제공하기가 여의치 않습니다. 도로가 대부분 유실됐어요. 국경없는의사회가 활동 중인 일부 지역에서도 활주로가 물에 잠긴 탓에 비행기가 착륙할 수 없습니다. 고립된 지역에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해서 의료 물자나 다른 필수품을 제공할 수가 없고,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 와도 대응할 수가 없습니다. 응급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이송하기도 어렵습니다.”_알린 세린(Aline Serin) / 국경없는의사회 남수단 현장 책임자 

남수단 올드판각 부근 침수된 마을의 전경. ©Florence Miettaux
홍수로 인해 조성된 대규모 습지가 모기 번식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면서 말라리아 감염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팀이 올해 7~ 9월 치료한 말라리아 환자는 무려 81,104명이나 된다.
홍수로 수십만 명의 수재민이 발생하고, 수백 마리의 동물이 폐사했으며,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농경지가 파괴되어 식량 안보 위기가 가중되었다. 유엔 농업식량기구(UNFAO)는 남수단 인구 75% 이상이 식량 지원을 필요로 할 것이라 추산했다. 경증 및 중증 급성 영양실조 환자 증가세 또한 매우 우려스럽다. 올해 1~9월 사이 남수단 병원에서 영양실조 치료를 받은 아동은 4,200명이 넘는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소를 키웠어요. 하지만 홍수가 모든 것을 휩쓸어갔습니다. 소는 전부 폐사했고, 경작지는 침수됐죠.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기면서 집도 잃었습니다. 음식도 없습니다.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거라곤 수련뿐인데, 이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린 아마 모두 죽을지도 모릅니다.”_툿 추올 (Tut Chuol) / 판각(Fangak) 출신 수재민

올드판각 부근 물 속에서 목초지를 찾는 소. ©Florence Miettaux
갈 곳을 잃은 수십만 명의 수재민은 열악한 환경의 임시 캠프에 머물고 있다. 안전한 거처나 식수, 위생 시설이 부족해 감염병이나 수인성 질병이 유행할 위험이 높다. 이미 너무나도 큰 피해를 겪은 이들이 또다시 인도적 재난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됐다.


남수단은 건기에 접어들고 있지만 상황이 나아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작물과 가축 손실의 처참한 여파로 영양실조 환자가 증가할 전망이다. 인구 절반 이상이 목축민이라 홍수로 인한 피해를 보전하기 위해 타인의 소를 훔치면서 지역사회간 폭력 사태가 불거질 수도 있다.


남수단에서 긴급 인도적 지원 필요는 점점 증가하고 있지만 국제 원조가 줄어들면서 대응 규모가 현저하게 축소되었다. 남수단은 자원이 부족할 뿐 아니라 여러 차례의 연속적인 충격을 이겨낼 회복력이 부족하다. 홍수 피해에 대한 대응도 필요한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 인도적 구호단체, 유엔 기구 및 각국 정부가 지원 규모를 한층 확대해 피해 인구에게 식량, 거처, 의료서비스 등 필수 구호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