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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나이지리아: 건물, 가장 겸손하고 단순한

2024.03.25

이름: 이진희

포지션: 건축팀장 (Construction Referent)

파견 국가: 나이지리아

활동 지역: 보르노

활동 기간: 2023년 6월 – 2024년 2월


2024년 2월 나이지리아 마이두구리 현장을 떠나며 동료들과 함께한 이진희 활동가 ©국경없는의사회/이진희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벌써 두어 번 다녀오셨는데, 이렇게 자세한 이야기 나눠 보긴 처음입니다. 이번 활동에서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작년에도 수단에 활동을 나갔다가 아시다시피 4월 분쟁 격화 이후로 급박하게 소개되고, 수단은 한국민 대상 여행 금지국으로 지정되는 등 여러가지 특이 상황을 겪었죠. 이번에는 나이지리아 보르노주에 위치한 마이두구리라는 곳에 다녀왔습니다. 원래 6개월 활동 예정이었는데 결국 약간 연장돼 8개월 동안 일하면서 창고 2개를 짓고 왔습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의약품 창고와 물류 창고가 있었는데, 국경없는의사회 팀이 활동하는 병원과 거리가 너무 멀고, 규모가 작고, 또 위험한 지역에 위치해 있어서, 새로운 부지를 찾아 해당 창고들을 설계 및 공사감독하고 준공까지 보고 왔네요.

리모델링한 의약품 창고 내부 ©국경없는의사회/이진희

건축 팀장이라는 직책이죠? 국경없는의사회에는 의료진 활동가만 있다는 오해를 좀더 불식시킬 겸, 자세한 직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제 공식 직책은 프로젝트 건축 팀장(Mission Construction Referent, MCR)으로 국경없는의사회의 건축 관련 6단계- 1) 사업요구, 2) 타당성검토, 3) 디자인, 4) 발주 및 입찰, 5) 공사, 6) 준공 -의 일부 혹은 전부를 관리하는 직책입니다. 구체적으로는 프로젝트 및 예산관리, 도면작성 및 기술지원, 협력업체 관리, 그리고 전체 프로젝트와 코디네이션 및 본부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사무실에 오래 있을 것 같지만, 마이두구리 프로젝트는 현장 관리자와 저 2명뿐인 작은 팀이라서 사무실과 현장에서 일한 시간 비율이 반반 정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의약품 창고는 500m2 규모로, 해당 부지에 이미 있던 빈 창고 내부에 철골로 구조물을 세우고, 단열을 보강하여 만들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 이미 공사가 진행중이었고, 4개월간 현장 관리감독과 준공을 보았습니다. 물류창고는 의약품 창고와 같은 부지 내 빈 공터에 400m2 규모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만들었는데, 타당성 검토부터 준공까지 6개월간 맡았던 현장입니다.

 

직무 소개를 보면 어색할 수도 있는데, 때로는 설계자 혹은 감리자이기도 하고, 때로는 시공자이기도 하며, 클라이언트이자 프로젝트 매니저이기도 한, 어떻게 보면 잡다한 업무를 담당하는 역할입니다.

나이지리아 마이두구리 활동 현장 동료들과 건축주 ©국경없는의사회/이진희

의료진 활동가와 달리 환자를 직접 만나실 일은 없으셨겠군요. 현장에서 활동하시면서 체감한 의료보건 문제도 좀 다를 것 같아요.

저희 팀은 15세 이하 아동 및 청소년을 치료하는 말라리아 전문 병원에서 활동했습니다. 병상수는 말라리아 유행시기에 따라 크게 변화하는데, 1-5월에는 75개 병상, 6-12월에는 300개 이상 병상으로 늘어나며, 따라서 대부분의 환자들이 기온이 높은 텐트 안에서 치료를 받게 됩니다. 23년 초에 다제내성균 환자를 진단할 수 있는 실험실(미니랩)이 생기면서, 홍역과 더불어 격리와 장기입원이 필수인 다제내성균 환자들이 발견됐는데요. 이 환자들을 40도가 넘는 텐트 안에서 2주 이상 격리 및 치료를 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의료진들의 의견으로, 저는 우선 3개월 정도 격리병동 타당성 검토와 설계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2024년 초 실제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감염전문의료인들, 협회원, 본부 및 다양한 사람들의 회의와 토론을 거쳐, 해당 환자들의 격리보다는 기본적 감염 관리 및 통제에 더 많은 노력을 하는 것이 타당하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죠. 몇 개월간 진행한 내용이 사라져서 정말 아쉬웠지만, 이 과정에서 저도 배운 게 많았고,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 매우 투명해 그 결과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되었기에 기억에 남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건설 현장에 따르는 특수한 어려움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한국에서는 주로 주택과 소규모 건축물의 설계 및 공사만 해봤기에, 출국하기 전에는 새로운 시설 디자인에 대한 걱정이 약간 있었는데, 정작 가서 어려웠던 점은 오히려 전기, 수도, 인터넷, 하수처리같이 기본적인 것들이었어요. 전기 보급이 안되니 발전기와 디젤통을 보관할 자리를 마련해야 하고, 상수도가 없으니 물 탑을 만들어야 하고, 인터넷 케이블이 안 들어오니 케이블 탑을 만들어야 하고, 하수처리/배수시설이 없으니, 화장실, 세면기 하나를 설치하려고 해도, 고민이 너무 많이 되었어요. (물론! 함께 고민해주는 동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건물 외적인 부분들을 해결하고 나니, 그 다음은 익숙하지 않은 재료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가 고민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벽을 만들 때, 작은 시멘트 벽돌을 일반적으로 사용하거든요. 그런데 마이두구리에서는 하나에 16킬로그램이나 되는 9인치 시멘트 블록을 사용하더라고요. 이에 맞춰 건물의 크기, 높이, 창과 문의 크기가 정해졌고, 이에 맞춰 구조방식도 바꿔야 했습니다. 다행히 우리 건축 팀 현장 관리자가 마이두구리 출신의 훌륭한 엔지니어라서, 저의 수백, 수천가지 질문에 답을 해주었고, 함께 고민하여 디자인과 디테일을 풀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본부차원의 구조, 설비, 전기 기술지원도 받을 수 있었고요. 또한 이동제한으로 시장조사를 하지 못하는 저를 대신해 준 그 현장 관리자 덕분에 시장조사, 자재 검수, 현지 시공업자와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한국에서 해온 경험과 가장 다른 부분은 디자인이라고 생각돼요. 온갖 고민을 말씀드렸지만, 결과를 보면 아주 단순한 직사각형 건물입니다. 프로젝트마다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국경없는의사회의 건물은 의료활동 지원이라는 단 하나의 강력한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간이 합리적이어야 하고, 후원금으로 짓기 때문에 경제적이어야 하고, 시공이 쉬워야 하잖아요. 그 결과로 건물은 가장 겸손하고 단순한 모습이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제가 다음 프로젝트를 한다면, 그 공간을 매일 이용하게 될 동료들이 소소하게나마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1퍼센트라도 좀더 아름다운 공간을 만드는 노력도 하고 싶습니다.

신축 창고 공사 현장 ©국경없는의사회/이진희

생활 환경은 어떠셨나요?

나이지리아가 남부는 기독교, 북부는 이슬람이 우세한 곳이라, 하루에 다섯번 예배 알림 방송이 크게 들렸습니다. 특히 새벽 네 시 반이 되면 첫번째 기도를 위해 무슬림 동료들이 문 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성 무슬림들은 같이 기도하지 않고 보통 방에서 돗자리 펴놓고 혼자 하고요. 가장 동료들이 많을 때는 약 15명의 동료들이 함께 있었는데 보통 니제르, 케냐, 파키스탄, 예멘, 소말리아 출신 활동가들이었고요.

 

숙소에서 사무실로는 차를 타고 2분여밖에 안 걸리는 거리라 아침에 다같이 이동했습니다. 2인 이상 4인 이하로는 저녁 6시전까지는 숙소-사무실 간은 걸어다닐 수 있었어요. 다만 2017년에는 차량에 총격이 가해진 적이 있고 직원 하나도 다리에 총상을 맞은 적이 있는 곳이라 매주 월요일 오전 회의때마다 안전에 대한 유의사항이 전달되는 분위기였습니다.

 

숙소에서 병원, 즉 창고 부지까지는 차를 타고 20분 정도 이동하는 거리였고요. 저의 경우 노트북을 들고 사무실, 창고, 병원 등지에서 자유롭게 일하고 여섯 시에 퇴근했습니다. 점심, 저녁은 숙소에서 감자, 고기, 쿠스쿠스, 샐러드나 과일을 먹었고요. 제가 근무하던 때 일본인 의사 활동가가 한 명 와 있어서 돼지고기, 초밥, 돈카츠 먹고 싶다고 얘기를 나누던 게 기억나네요(웃음). 퇴근 후에는 주로 숙소 안에서만 지냈습니다.

숙소에서 동료들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 ©국경없는의사회/이진희

아까 건물 완공됐을 때의 보람을 말씀하셨는데, 또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의 어떤 측면에서 특별히 보람을 느끼시나요?

저는 저보다 형편이 못한 사람들을 위해 거창한 신념을 가지고 봉사 활동을 하러 나간다기보다도 우선 이 일이 적성에 맞기 때문에 합니다. 사실 보수도 적고, 한국에서 꾸준히 보편적인 생활 기반을 가지려면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처럼 누군가는 이 일이 적성에 맞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활동 현장의 새로운 환경에서 건축을 하는 데서 특별한 보람을 느끼는 것은 사실입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건물을 짓는데, 그게 조금은 더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을 위해서 짓는 거니까요. 예를 들어 서울에서 집을 짓는다고 하면, 새로 안 지어도 사실 이미 많이 있잖아요? 꼭 건물이 당장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짓는 일이 아닐 수도 있고요. 그런데 국경없는의사회 활동 현장의 사람들에게 그 건물은 지금 꼭 필요한 건물인 것 같거든요. 어차피 건축이라는 행위가 기본적으로 나무를 자르고 시멘트로 환경을 파괴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조금이라도 더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쪽이 낫지 않을까요?(웃음) 직업적으로도 도면을 그리는 것뿐 아니라 공사 내역을 발주하고 현장에 참여하며 프로젝트 관리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까지 새로운 것을 배우는 보람이 있습니다.

활동가님의 다음 계획을 알려주세요.

국경없는의사회 활동 현장으로 나갈 것입니다. 나이지리아의 해당 병원도 이제 규모가 너무 작아져 아예 부지를 옮길 계획이 있던데, 다시 그곳에 갈지도 모르겠네요. 이제 제게는 잘 아는 동네가 되었으니까요. 현장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여유 시간이 생길 때 할 수 있는 운동을 배워둬야 할 것 같아요. 프랑스어도 배워서 활동 선택지 폭을 넓혀볼 계획입니다.

여가 시간에 숙소 내 스포츠 활동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 ©국경없는의사회/이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