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채용영상

국경없는의사회 '소아과의' 구호활동가의 모든 것을 알려드립니다!

2022.07.19

“죽는 순간 내 삶을 돌아보았을 때, 나는 과연 의미 있게 살았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구호활동가의 삶을 선택한 최용준 활동가! 의사로서 삶의 의미를 되찾아 준 국경없는의사회 구호활동가가 되기까지의 풀스토리를 ‘국경없는인터뷰’에서 전합니다.

현지 동료들과 최용준 활동가의 모습. ©국경없는의사회

Q. 왜 의사가 되었나요?

일단 아이들 보는 게 좋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성장해 나가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치료에 잘 반응하고 또 제가 간단한 수액 치료만으로 살려냈던 어느 아이가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아이들을 치료한다는 건 미래를 키우는 느낌이 듭니다. 그게 좋아서 소아과 의사가 되었습니다.

Q. 구호활동가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내가 어떻게 살아야 죽는 순간에 조금이나마 보람되고 의미 있게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으로 구호 활동가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생각해온 꿈을 전문의가 된 이후에도 잘 지켜왔던 게 가장 큰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Q. 국경없는의사회에 지원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셨나요?

“나중에 구호활동을 해봐야지.”라고 얘기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하지만 대게는 다들 각자의 생활을 하다 보면 못 하게 되는데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전문의 수련을 마칠 때까지 제 원했던 바를 잘 지켜왔던 게 가장 큰 준비였습니다.

현장에서는 소아과 전문의라고 해서 소아과 문제만 신경 쓸 수 없습니다. 때문에 병원에서 배우고 일할 때 나의 분야가 아닌 다른 전문 분야의 의사 선생님들 일하시는 모습이나, 환자를 관리하고 처치하는 방법들을 잘 봐두었어요. “언젠가 내 지식이 도움이 될 일이 있겠지.”하면서 말이에요. 하나라도 더 보고 배우려고 지냈던 것이 좀 저만의 노력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 현장에서는 어떤 일을 하나요?

저는 수단으로부터 분리 독립한 지 10년쯤 된 남수단이라는 나라에 6개월 동안 파견 활동을 다녀왔는데요. 분쟁 지역인 아비의 아곡(Agok) 마을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아곡병원에서 소아과 전문의로 활동하고 왔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아곡병원은 그 지역에서 유일하게 2차 병원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지역의 유일한 소외과 전문의로 일하고 왔는데요, 현지 의료진들이 대게 전문 분야를 수련 받거나 공부를 깊게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때문에 소아 환자를 제가 1차적으로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지 의료진 교육에 신경을 많이 썼고요. 제가 소아과 전문의라고 해서 소아과 문제에만 집중하고 그 외의 문제는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양한 환자의 문제들을 현지 의료진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리저리 물어보고, 알아가면서 환자를 함께 같이 봤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아곡병원에서 치료받는 어린이와 최용준 활동가 ©국경없는의사회

Q. 현장활동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한국 도시에서 일할 때는 어느 한 병원의 의사가 없더라도 문제될 건 없습니다. 옆에 다른 병원 갈 수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구호 현장 활동에서 활동가들은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됩니다. 만약 그 시간에 그 자리에 내가 없었다면, 환자들이 치료를 받을 수가 없는 거죠. 때문에 환자의 생사에 좀 더 깊이 관계하게 됩니다. 그래서 현장활동에서 제가 좀 더 중요하고 이미 일을 하고 있다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 제게는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Q.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일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가장 힘들었던 점은 역시 의사로서 환자를 잃는 거겠죠. 예를 들어, 폐렴은 아이들에게는 흔히 발병할 수 있는 질병입니다. 급성기에 며칠을 잘 버텨내서 치료를 잘 받으면, 이겨낼 가능성이 높은 병이죠.

어느 날은 폐렴 환자들이 병원을 줄줄이 찾아왔습니다. 호흡이 곤란해질 정도로 폐렴이 악화된 환자들도 있었어요. 이 때 인공호흡기 같은 시설이 부족해 치료가 어려워 환자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만 봐야 했었습니다. 어떨 때는 3일 연속으로 매일매일 하루에 한 아이를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숙소에 들어가서 누우면 눈물이 주르르 나곤 했습니다. 이런 부분이 현장에서 힘든 점이었어요.

Q. 미래 구호활동가에게 한마디

젊을 때는 구호활동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더라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환경과 조건들 때문에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말이 있죠. “당신은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이 말을 들으며 생각하는 대로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과 조건들을 목표에 맞게 꾸며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오랜 꿈이었던 구호 현장 활동과 가까워지는 방향으로 제 삶과 조건들을 꾸며왔습니다. 병원 수련을 받을 때, 교수님께서 병원에 계속 남아서 교수의 길을 가자고 하셨어요. 물론 그 길이 안정적인 삶 기대할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제안이지만, 결국 제가 평소에 꿈꿔왔던 현장 활동의 길과 멀어지게 되잖아요. 이런 식으로 삶의 선택의 기로에서 구호활동가의 삶과 가까워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선택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Q.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은 어떤 의미인가요?

지난 구호활동은 그동안 간직해온 꿈을 현실로 실현시켜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경험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여러 소아과 의사 중에 한 명으로서 일할 때보다, 현장에서 없으면 안 될 존재로 일하며 느꼈던 보람이 큰 의미로 남았습니다.

 

남수단 아곡 지역 아이들과 함께. ©국경없는의사회

Q. 현장에는 무얼 가지고 가야하나요? 추천템이 있다면?

활동 현장은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과 스트레스가 심한 환경에서 오랜 기간 동안 같이 생활하고 일해야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구호활동가에게는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은데요, 저의 경우에는 제가 좋아하는 책과 음악이었습니다. 피아노 클래식을 좋아해서 피아노 협주곡들을 즐겨 들었어요.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서 가시는 것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Q. 영어 공부는 어떻게 하셨나요?

흔히 생각하는 모든 방법을 저는 다 해봤습니다. 하지만 영어라는 게 말을 써야 되기 때문에 저는 화상영어 수업을 많이 들었었고요, 그것과 별개로 펜팔을 시도해봤어요. 도와주시는 분과 일주일에 세 번씩 스카이프로 대화를 했었던 게 저한테는 되게 큰 도움이 됐었습니다.

어느 날은 제게 “너는 왜 영어를 공부하니?”라고 물어서 “저는 의사고 나중에 국경 의사회 활동을 하기 위한 준비로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본인이 국경의사회 후원자시라고 하시더라고요. 감사히도 그 분이 제가 국경 사회 활동을 준비하고 지원하는 모든 과정을 함께 옆에서 지켜보고 도와주셨습니다. 남수단에 파견 활동을 가 있는 동안에도 항상 응원을 많이 보내주셨어요. 정말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Q. 부모님과 가족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대부분 다 비슷한 반응이지 않을까요? “그거 좋은 일이긴 한데, 네가 왜 해야 하니 그거를?”이런 반응이셨어요. 저는 워낙 어릴 때부터 꾸준히 나중에 현장 구호 활동을 하겠다고 말해왔기 때문에, 막상 제가 국경없는의사회에 지원하고 남수단 현장 활동을 가게 되었을 때에는 의외로 쉽게 받아들이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깜짝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나 한 번은 갔다오고 두 번은 안 된다는 반응이셨죠.

물론 이 활동이 좋은 일이니 저를 자랑스럽게 바라보시는 면도 있겠지만, 저는 꾸준히 구호활동을 통해 삶의 의미를 느끼고 있으며, 제가 하고 싶은 일이다는 말을 계속해서 드리고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