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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시론] 시리아 만행 5년,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2016.03.15

국경없는의사회는 2012년 5월 이후 약 6만 명의 시리아 난민들이 머물고 있는 도미즈 캠프에서 주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15일은 중동 및 유럽 국경까지 확대된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지 5년째 되는 날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그 동안 470만 명의 시리아 국민들이 나라를 떠났고, 800만 명이 시리아 내에서 난민 신세에 처해 있다. 시리아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수치다. 서울 시민 전체가 안전한 곳을 찾아서 살던 곳을 버린 난민이 됐다고 상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내전으로 지금까지 25만여 명이 숨졌다. 국경없는의사회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사상자의 30~40%가 여성과 아동이었다. 민간인들에 대한 만행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끝없는 분쟁 속에 일어나는 폭력의 수준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으며, 내일은 상황이 더 나빠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크게 우려하고 있다. 최근의 부분적인 정전(停戰)으로 일부 지역에서 교전이 줄어들었지만 유혈 사태는 이어지고 있다.

시리아 정부 주도 연합군과 반군들이 대치로 시리아 내에 2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고립돼있다. 그들은 무력 분쟁, 질병, 영양실조를 겪으면서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분투하고 있다. 병원, 학교, 양수 펌프, 곡물 저장고, 빵집 등 주요 기반시설의 파괴는 삶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기본적인 식량과 생필품을 확보하는 것도 문제지만, 인도적 지원이나 의료 서비스를 받는 것이 어려워졌다. 의약품과 의료물자 공급로가 막힌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위급한 환자나 중상을 입은 환자들조차 의료시설에 접근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접근이 허용되는 시리아 지역에 의약품과 물자를 보내주고, 대치 지역이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시리아인 의료진 네트워크를 지원하고 있다. 결코 충분할 수 없지만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일 때가 많다.

물리적 고통에 더해, 이 죽음의 덫에 갇힌 사람들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심리적 고통도 견뎌야만 한다. 터키,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 등 주변국에서 국경없는의사회는 수십만 명의 시리아 난민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외상 수술, 모자 건강, 정신 건강, 만성 질환 치료 등을 지원한다.

의료진이 보여주는 헌신은 감동적이다. 그들은 시시각각 급변하는 상황 속에 스스로 공격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난민들이 필요로 하는 지원을 하고자 목숨을 걸고 있다. 올 들어서만 벌써 시리아 내 의료 시설 17곳이 폭격을 당했다. 그 중 국경없는의사회의 의료지원 시설이 6곳이다.

2016년 2월, 공습으로 파괴된 시리아 이들리브 주 마라트 알 누만 병원의 모습

지난달 시리아 북부 이들리브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지원 병원 1곳이 공습을 받아 파괴되면서 직원 9명을 포함해 25명이 숨졌다.

지난해에는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하는 의료 시설 63곳이 폭격을 당했으며 그 중 12곳은 완전 파괴됐다.

1차 공격이 일어난 지 1시간 안에 2차 공격이 일어나는 ‘더블 탭(double tap)’ 공격도 받았다. 이는 부상 환자들을 다른 시설로 이송하기 위해 현장에 도착한 구조대원 및 의료대원을 겨냥하는 것이다. 이런 비인도적 만행을 과연 언제까지 받아들여야 하는가? 어떤 원칙과 가치가 이처럼 인간의 존엄성에 깊은 치욕을 끼치는 상황을 허용한단 말인가? 아무도 남지 않고 시리아 전역이 텅 비어야 비로소 분쟁이 끝날 것인가?

차가운 안개가 깔린 바알벡 외곽에 있는 임시 정착촌에서 한 아동이 빨랫줄 근처에서 땔깜을 찾고 있다. ©Ghazal Sotoudeh/MSF

지난해 시리아 난민 대다수가 정착한 레바논 베카 계곡의 난민촌을 방문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2012년부터 의료지원을 하고 있는 곳이다. 그때 나는 난민촌의 시리아 아동들과 그 가족들의 초점 잃은 눈빛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내가 만났던 난민들 대부분은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들이었다. 직업이 있었고 아이들은 학교에 다녔으며 젊은 부부들은 행복한 미래를 그리며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한 순간에 모든 게 끝났다. 어떤 사람들은 꼭 필요한 것만 챙겨 하룻밤 사이에 집을 떠나 길고도 위험한 여정에 올라야만 했다.

이 절박한 가족들이 보기에 국제평화회담은 그저 회담에 지나지 않는다. 회의를 열고 대화를 나누는 것 그 자체로만 성과라 할 수 없다. 지난 5년 동안 교전 당사자들은 시리아 국민을 보호하는 데 실패하고, 그들의 고통만 가중시켜 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분쟁의 모든 당사자들이 민간인들에 대한 모든 공격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 결의안을 이행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모든 대치 지역의 주민들에게 인도적 지원이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현장에서 의료 지원, 물자 전달, 직원 이동 등이 제한 없이 이루어지도록 허용해야 한다.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시리아 사람들에게도 안전하게 삶을 영위하면서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 날이 올 때까지, 국경없는의사회는 의료 및 인도적 지원을 계속할 것이다.

티에리 코펜스(Thierry Coppens)는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의 사무총장이다. 레바논에서 국경없는의사회 현장 책임자로 일했으며, 시리아 난민들을 위한 의료 지원 활동을 지휘했다.

[출처: 중앙일보] [시론] 시리아 만행 5년,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