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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벨고로드에서 폭력 사태 피란민 지원

2023.10.06

포탄이 마당에 날아들어서 모든 것을 파괴했어요. 마치 종말 영화의 한 장면 같았어요.”_게보르크(Gevork)

지난 6월, 러시아-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에 위치한 노바야 타볼잔카(Novaya Tavolzhanka) 마을에서 대규모 포격 및 폭격이 발생해 게보르크(31) 가족의 집이 파괴되었다. 게보르크는 현재 국경에서 42km 떨어진 러시아 도시 벨고로드(Belgorod)의 친구 집에 머물고 있다.

게보르크, 31세 ©MSF

2022년 10월 이후 국경 지역에서 수천 명의 피난민이 발생해 벨고로드에 도착했다. 상당히 많은 사람의 집이 부분적으로 또는 완전히 파괴되어 게보르크와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불안은 올해 5, 6월 벨고로드 근교 국경 지역 및 마을들에서 포격 및 폭격이 격화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포격과 폭격이 격화함에 따라 벨고로드 지역 내 피난민 숫자가 증가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2022년 2월에 국제적 무력충돌이 확대된 이후로 총 120만 명 이상의 피난민이 전투로 인해 발생하여 러시아에 도착한 것으로 파악되는데, 신뢰할 만한 통계 및 인도주의적 공동대응이 부족하여 피난민 규모를 완전하고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벨고로드 및 로스토프나도누(Rostov-on-Don), 보로네시(Voronezh) 등 러시아 남부에 위치한 대도시는 교전 사태가 진정되길 기다리거나 다음 목적지를 살피는 피난민들의 집결지가 되었다. 피난민 대부분이 국제적 무력충돌로 인해 정신적, 신체적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

집을 떠나기 전까지 폭발이 계속 발생하고, 거리에는 시체가 널려 있고, 휴대전화 연결도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_니나(Nina, 가명), 하르키우(Kharkiv) 출신 현 벨고로드 거주민

최악이었던 점은 구급차나 응급 서비스, 소방대조차 부르지 못하는 것이었어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속수무책이었어요.  저 자신보다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뛰었어요. 내가 다치면 어머니를 도울 수 없다는 생각을 했죠.”_올렉(Oleg, 가명), 포격으로 깨진 유리에 부상당한 모친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쳤던 현 벨고로드 거주민

국경없는의사회는 벨고로드에서 지역 비영리단체 ‘미래로 가는 길’(Path to Future)과 긴밀히 협력하여 의료 전문지식을 제공하고 필수 물품을 기부하는 등 피난민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안전을 추구해 해당 도시에 피난해 있는 많은 사람들이 국경없는의사회 팀에 전한 바에 따르면, 이제 극심한 폭력이 발생하는 지역에서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전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등 충격적인 경험으로 인한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굉음이 들리면 종종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어디로 달려갈지 정신없이 생각하곤 해요. 그리고는 숨을 내쉽니다. 심장이 매우 빠르게 뛰지요…저는 이런 상황을 겪은 지 이제 한 달째지만, 다른 사람들은 몇 달 동안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언가 계속 머리 위로 날아다니거나 폭발하면 이게 어디에 떨어질지 생각하느라 굉장한 긴장감을 느낍니다. 포격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게 어디에 떨어질지 모르겠는 일 초 정도의 순간이 있죠. 한번은 매우 큰 폭발음이 났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 이웃집에 떨어진 거였어요.”_아나톨리(Anatoly, 가명), 연로한 모친과 사는 현 벨고로드 거주민

일부 주민들은 포격 및 폭격 때문에 끊임없는 두려움과 스트레스에 시달려 수면 등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편, 대응기제를 습득해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인 사람들도 있다.

포격이 정말 심할 때는 한두 시간 정도 몸을 뒤척이다 보면 다시 잠이 듭니다. 아침에는 출근해서 커피를 마시면서 기분 전환을 합니다.”_게보르크

다른 피난민들과 마찬가지로 아나스타샤(Anastasia)와 알리나(Alina) 자매도 이제 포격이 어느 쪽에서 오고 있는지 구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제 포격에 익숙해졌어요. 포격이 시작되면 지하실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죠. 노바야 타볼잔카에서는 2022년 9월 이후로 포격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길거리로 나가지도 않았어요. 가게로 갈 때는 포격이 길에 떨어질까 봐 두려운 마음에 걷지 않고 뛰어서만 이동했어요. 그러다가 그 굉음에 익숙해졌죠. 근처에 떨어지지 않는 이상 정상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입니다. 극심한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는 그것에 맞게 상황을 헤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포격 및 폭격 위협 속에서 살아가는 것 외에도, 많은 피난민이 살 곳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문제도 있다. 처음에는 정부가 제공한 임시 숙소에서 생활하다가, 피난민 대부분이 이제 사적으로 집을 임차한다. 하지만 높은 수요로 인해 주택 가격이 폭등하고, 국경 지역에서 신규 피난민이 넘어오면서 임차 비용이 더 뛰었다. 많은 사람이 주거비용 및 공과금, 식비 등 생활비를 감당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 중에서도 노인 및 만성 질환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가장 취약하다. 70대인 아나톨리의 모친은 대대적인 수술을 받고 배에 카테터 배액관을 삽입해서 복잡한 후속 치료와 약 처방을 받아야 한다. 몇 년 전, 이 모자는 수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하르키우에 가지고 있는 집을 팔아야 했다. 아나톨리는 어머니 배에 연결된 고무관이 적절한 상태로 유지되도록 살피고, 의료적으로 필요한 게 없는지 면밀히 관찰하면서 하루에 최소 한 시간씩 어머니를 직접 돌보고 있다.

이 지역에서 국제적 무력충돌로 피난길에 오른 많은 사람이 생존 수단으로 육체적 노동에 의존하는데, 아나톨리는 건강 문제로 인해 그렇게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심장마비를 두 차례나 겪고 수술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나톨리는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하면서 생계를 꾸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어머니를 돌볼 시간도 확보했다.

반면 엘레나(Elena, 가명)가 처한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과 떨어져서 아이들을 도네츠크(Donetsk)에서 벨고로드로 데려왔다. 전투는 엘레나 가족의 정신적 건강과 행복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맏아들의 죽음으로 삶이 송두리째 바뀌면서 이들이 처한 상황에 비극이 더해졌다. 엘레나는 주로 신앙과 창의적인 글쓰기를 통해서 깊은 슬픔을 극복하려 한다.

아들은 심장 전문의였어요. 코로나19 때, 병원 내 격리 구역에서 일했어요. 아들은 사망 당일에 인도적 지원에 힘을 보태기 위해 갔었어요. 항상 도움을 주기 위해서 그곳에 갔었죠. 그때까지는 안전했었죠…글을 쓰기 시작하면 마음이 조금 나아집니다. 마음이 정말 힘들어질 때가 있습니다...”_엘레나

벨고로드에 머무는 피난민의 상황을 고려하면 의료 및 정신건강 지원이 절실한 것이 자명하지만, 이들이 이런 필수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피난민은 가까운 시일 내에 집으로 돌아가길 희망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이들의 법적 지위가 복잡해지고 벨고로드에서 서비스 및 치료를 받는 데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벨고로드에서 국경없는의사회는 지역 자원봉사 단체인 ‘미래로 가는 길’을 도와 무상으로 의료 상담 및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고 처방약 및 의약품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음식 및 속옷, 개인 생활용품, 기본 가정용품 등 긴급하게 필요한 물품을 지역 단체 봉사자를 통해 배포하고 있다. 2022년 10월 이후부터 국경없는의사회와 ‘미래로 가는 길’이 의료 지원을 제공한 피난민은 2,800명이 넘고, 인도적 지원을 제공한 주민도 9,600명이 넘는다.

국경없는의사회가 NGO ‘미래로 가는 길’과 협력해 제공한 구호 물품 ©MSF

동시에 벨고로드에 머무는 피난민들은 기존 봉사 단체에 가입하거나 지원 센터를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등 서로를 돕기 위해 스스로 나서서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스베틀라나(Svetlana, 50)는 전투로 피난길에 오른 사람 중에서 벨고로드에 머물거나 경유하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돕는 지역 봉사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처음에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돕고 있었는데, 곧 우리도 그들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었어요.”

스베틀라나는 1년 넘게 포격 및 폭격이 이어지고 있는 셰베키노(Shebekino)에서 벨고로드로 이주했다. 고향인 셰베키노에서 약국 소유주였던 그녀는 당시 포격이 일어난 상황을 떠올렸다.

2022년 11월이었어요. 대낮에 학교와 약국이 박격포 공격을 당했어요. 포격 때문에 3명이 사망했습니다. 남성 한 명은 우리 집 현관에서 죽었고, 다른 남성은 약국에서 사망하고, 여성 한 명은 의사가 도착하길 기다리다가 세상을 떠났어요. 모두 노인들이었습니다. 오후 5시에 사건이 발생했는데, 사람들이 퇴근하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시간이었죠. 그날 약국 계산대 점원으로 일하던 한 여성은 아들을 데리고 출근했었는데, 아들이 약국에서 옮겨지는 엄마의 시신을 보지 못하도록 우리가 손으로 아들의 눈을 가려줘야 했습니다.”

스베틀라나는 그날 경험으로 스스로에게 더 솔직해졌고,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용기를 많이 얻었다고 말했다.

메신저로 도움 요청 그룹을 운영하는 하르키우 출신 주민 옥사나(Oksana, 가명)는 자원봉사자 스베틀라나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것이다. 옥사나는 전투 상황 때문에 가족과 함께 지하실에서 4개월 동안 생활했는데, 임신 9개월차에 벨고로드로 거처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출산 과정이 복잡했어요. 심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임신한 상태에서 모르는 곳으로 가면서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그리고 아이를 낳았는데 집에 모든 것을 두고 왔기 때문에 아기한테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죠. 신생아를 위한 유모차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친절하고 공정한 사람들은 어딜 가도 있습니다. 자원봉사자들도 곳곳에 있고요. 혼자서는 이런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이해합니다. 저는 자원봉사자가 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_옥사나(Oksana)

옥사나, 42세 ©MSF

옥사나는 집을 떠나서 가족과 새로 태어난 아기와 함께 셰베키노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비슷한 상황에 처한 피난민들을 돕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불 및 베개, 식기 등 구호 물품을 피난민들이 긴급하게 구할 수 있도록 창고를 운영하고 기부자들과 소통했다. 하지만 2023년 5-6월에 셰베키노 지역에서 포격·폭격 사태가 격화되면서 가족과 함께 다시 한번 거처를 옮겨야 했다. 현재 그녀는 벨고로드 인근 지역에 머물면서 계속해서 다른 피난민들을 돕고 있다.

우리 모두 같은 인간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분명 모두에게 어렵습니다. 그들에게도 어렵고, 우리한테도 어렵습니다. 우리는 단지 서로를 붙잡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할 뿐이죠. 타인의 도움 없이는 극복이 불가능할 것입니다.”_옥사나(Oks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