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주제보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파괴의 해

우크라이나: 전쟁과 파괴의 해

크리스토퍼 스토크스Christopher Stokes,
국경없는의사회 우크라이나 현장 책임자

2022년 2월 24일, 우리는 먼 곳에서 들려오는 웅웅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전투기들이 키이우에 미사일을 투하하는 소리, 그리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는 놀라운 소식이었다.

아무도 앞일을 예측할 수 없었다. 나는 혹시라도 분쟁이 격화될 사태에 대비해 우리 일을 도와줄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해 두려고 나흘 전에 도착한 상태였다. 국경없는의사회는 1999년 처음 우크라이나 내에서 활동을 시작한 이후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전투에도 대응해 왔지만, 사실 만반의 준비를 갖추지는 못한 상태였다. 구호단체들과 우크라이나인 대다수 사이에서는 침공 전의 ‘설마’ 싶던 마음이 곧 믿을 수가 없다는 마음으로 뒤바뀌고, 일반 민간인들 사이에서 분노가 일종의 다가오는 종말에 대한 감각과 뒤섞였다. 많은 NGO들이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떠나는 바람에 곧 증가한 인도주의적 필요에 대응해 대폭적으로 지원을 확대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전쟁 초기 1,000~1,500만 명 이상이 피란을 떠났다. 놀랍게도 그 어떤 공황이나 약탈 사태는 보지 못했다. 민간 및 군사용 공항 모두 처음부터 러시아 미사일에 폭격당해 아무 비행기도 이륙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내가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처음으로 일해본 분쟁 지역도 아니었고, 내가 거대한 전쟁의 서막을 지켜본 것도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국가 간 전쟁(예를 들어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2003년 이라크 침공)은 드문 일이며,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는 강렬한 단계는 보통 조기 종식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우리는 키이우에서 르비우로 이동해 그곳에서 우리 의료지원 내용을 재정의하고 재정립하기 시작했다. 국제적으로 고용된 직원들 중 우크라이나에 계속 머물 만큼 안전하다고 느끼는 이가 별로 없어서 대부분의 우리 활동은 우크라이나 동료들과 함께 전개하게 됐다. 그들은 이제 거의 대다수가 실향민이 되어 우크라이나 내에서 더 안전한 곳에 가족들의 거처를 마련해줘야 하는 형편이 되었는데도 적극적으로 활동에 임했다.

그다음으로 할 질문은 이것이었다.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양상을 보이는 전쟁 중에 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행동은 무엇인가? 인도주의에 기반한 의료 NGO가 가장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영역은 어디인가? 민간인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곧 명확해졌다. 탱크들이 경고 없이 발포를 하는 바람에 키이우를 떠나는 가족들이 동부나 남부로 향하는 도로들 위에서 사망했다. 그래서 우리는 도로 교통사고 같은 ‘보통의’ 트라우마와는 구분되는, 굉장히 고도화된 전문 분야인 전쟁 트라우마와 대규모 사상자에 대응하는 병원들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구축했다. 우리는 병원들이 증대한 트라우마 관련 일을 처리할 수 있게끔 관련 물품 재정비를 위한 비상 조달도 시행했다. 이것은 제대로 된 전문 의료 인프라가 있는 중소득국에서 발생한 전쟁에서 일반적인 방식이다. 원래는 기존 체계가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업무량에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는 비록 지리적으로 범위가 제한돼 있긴 했어도 2014년부터 전쟁 상태였다. 우크라이나에는 대다수 국가들보다 나은 체계가 준비돼 있었다. 물론 가족과 함께 떠난 의사나 간호사들이 있었지만, 대다수는 남아 있었다.

3월 중순이 되자 의료보건 체계 안 공백들이 눈에 띄게 됨에 따라 우리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철도가 아직 기능하고 있으며 국가교통의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이었다. 부상을 입거나 기타 취약한 상태에 놓인 많은 이들이 포화가 심해진 동부와 중부를 벗어나기 위해 보통은 서부로 향하는 기차에 탑승했다. 하지만 대다수 지방과 병원들은 이러한 장거리 이동에 대비돼 있지 않았다. 어느 늦은 저녁 르비우에서 우크라이나 국영 철도회사 우크르잘리즈니짜 사람들과 회의 중에 나는 환자들을 서부로 이송하기 위해 개조된 ‘의료형’ 열차를 제안했다. 그들은 그 제안을 환영하며 제 2차 세계대전 중에도 비슷한 형태의 일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우리는 집중치료를 준비하기 위해 산소발생기와 전력 자가발전 장치를 포함한 의료기기와 기술자들을 보냈고, 그들은 철도 기지에서 열차들을 개조하는 데 착수했다. 그 프로젝트가 첫 수회 시도 이상으로 지속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연말까지의 결과는 약 2,500여 명의 환자들이 80회 이상의 (종종 야간에 이뤄졌으며 보통 24시간 이상 지속된) 운행을 통해 안전하게 국가 안에서 이동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개조 후 2022년 4월 1일 르비우에 처음 도착한 국경없는의사회 의료열차 ©MSF

전쟁 관련 부상 환자가 증가하는 와중에 구급차 운행 직원들 중에서도 사상자가 늘고 구급차도 파괴됨에 따라(특히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지역) 구급차 운행 서비스도 영향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구급차를 이용한 환자 긴급 이송은 우크라이나 동부의 대다수 전쟁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 우리 의료대응의 중요한 요소가 되어, 주당 50~100건의 이송을 담당했다. 대부분의 경우 전쟁 부상자를 전선 인근의 부실해져버린 보건부 병원들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한 드니프로로 이동시켜 필요한 의료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추가적으로 우리는 헤르손, 하르키우, 체르니히브, 키이우와 미콜라이우 점령 지역에서 의료서비스 접근성이 차단된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한 이동진료소들도 운영했다. 우크라이나군이 재탈환한 마을들에서 우리는 뒤에 남기로 결정하거나 제때 피란을 갈 수 없었던 대다수 고령 인구에게 전쟁 전에 만성적 질환 관리를 위해 처방됐던 필수 의약품 접근이 불가능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헤르손에서만 우리 이동진료 서비스는 약 160개 이상의 마을에서 의료 및 정신건강 지원을 담당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는 지역에도 많은 경우 지역 보건소나 의료 거점 시설은 폭격으로 파괴되거나 후퇴하는 러시아 군인들에 의해 약탈되기까지 한 상태였다. 이러한 파괴의 정도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선은 약 1,000 킬로미터가 넘는 길이로 형성돼 있으며 그 양쪽으로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역에 해당한다. 파괴를 입지 않은 마을은 한 곳도 없다. 국가 재건에는 잠재적으로 수십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피란을 떠난 가족들 중에는 내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말한 사람들이 있다. 뒤에 남은 사람들은 임시적인 방문 외에는 거의 의료지원을 받지 못하는 폭격받은 건물 잔해 속에서 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곳과 국가 전역에 걸쳐 지원의 상당 부분을 첫날부터 스스로 조직된 활발한 시민사회의 협조를 받는 당국이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국제기구들이 감히 가지 못하는 곳에도 때로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진입한다.

2022년 9월 키이우 소재 우크라이나 내무부 내 의료센터에서 손목이 부러지고 오른쪽 손가락 부상을 입은 환자에게 국경없는의사회 물리치료사가 물리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Hussein Amri/MSF

한편 계속되는 교섭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바는 국경없는의사회가 전선의 다른 쪽, 즉 그들 점령 하에 있는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을 허가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불행한 일이다. 우리는 기존 러시아 점령 하에 있던 지역들에서 인도적 구호 접근성 확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리우폴, 자포리자와 헤르손에서 우리가 접촉한 우크라이나인들은 이러한 지원 수요가 크다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이러한 상황이 변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주민들은 매일 계속되는 드론과 미사일 공격의 스트레스와 위험 때문에 끝나지 않는 고통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