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아빠들이 마주하는 흔한 문제들

무너지던 우리 집
모습이 생생합니다.

01. 부족한 거처

마땅한 거처가 없다는 것은 집을 떠난 많은 아빠들과 그 가족들이 겪는 흔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라크에서 자녀 4명을 둔 시리아 출신 난민 아빠를 만났습니다. 그는 고향 마을까지 분쟁이 번지자 아이들이 무서워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라크로 떠나 결국 다른 가족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담요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아이들 모두 추위 때문에 몸이 아픕니다. 우리도 다른 모든 이들과 함께 서류를 작성해 등록했고, 작성한 서류는 다 잘 챙겨 두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거리에서 살고 있습니다. 당국과 지원 단체들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계속된 분쟁으로 황폐해진 남수단 계속된 분쟁으로 황폐해진 남수단. 한 아빠가 그의 집에 들어가 사진을 찍어서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세상에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이 사진은 아이 넷을 비롯한 여덟 명의 가족들이 거주하는 집의 내부 모습으로 커튼 뒤는 식사 준비를 하는 곳이다. 빈약한 거처들은 우기 동안 보호막 역할을 거의 못하기 때문에 내부는 온통 진흙투성이였다. ©Raul Fernandez Sanchez/MSF

02. 폭력의 위험

피난 상황에 처해 있는 아빠들은 늘어난 폭력의 위험도 감수해야 합니다.

남수단에서 피난민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사람 대다수는 여성과 아동들이며, 이들 중 다수는 치안 불안 속에 남편과 형제가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한 뒤로 정신적 충격에 빠져 있습니다.

이웃해 있는 콩고민주공화국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스태프 불람바 카세 조수에는 고향 키찬가에서 분쟁이 발발하자 아내에게 갓난아기를 데리고 도망치라고 했습니다.

그는 보건 홍보단원으로서 국경없는의사회 일을 지속하면서 전쟁의 여파로 고통받는 이웃들을 도왔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보건 홍보 단원 불람바 카세 조수에 국경없는의사회 보건 홍보 단원 불람바 카세 조수에. ©Sara Creta/MSF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방에서 총소리가 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마을이 전부 불탔어요. 무너지던 우리집 모습이 생생합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나니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에 심리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잠도 못 자고 체중도 줄었거든요. 총소리가 나는 것 같아 한밤 중에 벌떡벌떡 깨기도 했습니다.”

03. 착취와 학대

난민이나 피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착취와 학대에 특히 취약합니다.

현재 리비아의 경우 이주민 • 난민 구금 시스템 속에 납치, 고문, 착취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구금 센터들은 인신매매로 이익을 취하는 민병대가 운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이 치료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임의적으로 구금되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돈을 보내 달라고 친척들에게 전화하도록 강요를 당하고 돈이 올 때까지 구타를 당합니다. 석방 비용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은 건설 현장이나 농지에서 강제 노동을 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알리와 그의 아들 무스타파와 함두 알리와 그의 아들 무스타파와 함두 ©Albert Masias/MSF

알리는 리비아에 살았지만 상황이 너무 불안해져 리비아를 탈출해 위험천만한 바다 횡단에 나섰습니다. 그것 밖에는 리비아를 탈출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가득 찬 과밀한 고무 보트에 탔습니다. 그러나 출발 직후 물이 새기 시작하자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보트 한가운데 타고 있던 알리의 아내는 당시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리비아로 송환된 알리와 아들들은 납치를 당해 한 달간 붙잡혀 있었습니다. 알리는 구금돼 있던 건물 유리창을 깨고 나와 아들들과 함께 간신히 도망쳤다고 말했습니다.

첫 시도가 실패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알리 가족은 최대한 빨리 리비아를 탈출하기 위해 또 다시 허술하고 과밀한 고무 보트에 몸을 실었습니다. 두 번째 횡단 때는 국경없는의사회 구조선의 도움을 받아 안전한 곳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04. 의료

파상풍은 예방접종 덕분에 사실상 사라진 질병입니다. 하지만 이 어린 소녀와 아빠가 살고 있는 미얀마 북서쪽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로힝야의 어린 소녀와 아빠 파상풍 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와 그 아빠 ©Ian Cross/MSF

지난해 후반, 소녀의 가족을 비롯한 무려 60만 명의 로힝야 난민은 전례 없는 폭력을 피해 미얀마를 탈출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피신했습니다.

우리가 보건소에서 만나는 수많은 엄마, 아빠들처럼 이 소녀의 아버지도 그저 소녀 곁을 지키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의 딸은 식구들이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기만 했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질병에 걸려 벌써 몇 주째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방글라데시에 있는 우리 진료소에 왔을 당시, 소녀는 척추 근육 경련, 개구 장애(턱이 벌어지지 않는 장애), 뻣뻣한 팔다리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살아남지 못할 것만 같았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의사 이언 크로스는 어린 환자가 눈물이 가득 고인 아빠에게 안아달라고 했던 순간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아버지는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었습니다. 고통스러운 경련이 또 시작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가만히 아이를 들어 아버지 무릎에 올려놓고, 아버지에게 아이를 꼭 안아 주라고 부탁했습니다. 자리를 나서면서 아빠 두 팔에 안긴 어린 소녀를 다시 돌아본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무릎을 60도나 구부릴 수 있을 정도로 근육 경련이 줄어든 겁니다. 턱도 더 이상 닫혀 있지 않았습니다. 소녀는 아빠를 향해 환한 미소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울음을 터뜨릴 뻔했습니다. 사랑은 약은 아닐지언정 그와 같은 효험을 발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