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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의료 접근의 한계로 불가능한 결정에 내몰리는 환자들

2020.03.11

국경없는의사회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 ‘아프가니스탄 소외된 의료 위기의 현실’을 통해 지난 수십 년간 아프가니스탄에 국제 원조와 투자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초 의료와 긴급 의료 접근이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이는 불안정한 상황과 지리적·비용적 한계 때문이며, 의료 시설의 인력과 장비가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프가니스탄 헬만드 주 라쉬카르가의 부스트 병원에서 의사 파리드(왼쪽)가 환자를 진찰하고 있다. ⓒAdhmadullah Safi/MSF

 

헤라트(Herat) 주와 헬만드(Helmand) 주에서 환자와 보호자, 국경없는의사회 직원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다수의 아프가니스탄 주민이 의료 지원을 받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 드러났다. 2014년 국경없는의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보고서를 발간한 이후 아무런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불안정한 환경과 광범위한 빈곤으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주민들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  

격렬한 전투와 무차별적 폭력의 영향은 일상생활에까지 스며들고 있으며, 여기에는 의료 서비스 접근도 포함된다. 헬만드 주 라슈카르 가(Lashkar Gah)에 위치한 부스트 병원(Boost hospital)을 찾는  환자들은 병원을 오기까지 여러 요인을 고려해야 하는데, 도로에 지뢰가 있지는 않은지, 오가는 길에 검문소가 있는지, 야간이나 전투가 진행 중일 때 이동하는 것이 위험하지는 않은지 등을 알아봐야 하는 것이다.

부스트 병원 산과 병동의 한 보호자는 "밤에 이동하는 것은 무서워서 병원에 가려면 항상 낮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가족 중 한 명이 아파서 생사를 오가는 상황이 되어도 구성원 모두가 다 함께 기다려야 한다”고 전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운영하거나 지원하는 의료시설의 의료진은 이처럼 치료가 지연되는 것이 환자의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목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생사가 갈리는 일도 있다. 

2019년 상반기, 부스트 병원 소아 중환자실에 도착하고 24시간 안에 사망한 아동의 44%가 병원에 온 시점이 너무 늦었고 이미 매주 위중한 상태였다. 

 

부스트 병원의 입원 병동에 모인 여성과 아이들. 라쉬카바자르 출신의 마스타나(65)는 고혈압으로 파키스탄의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이후 부스트 병원에 입원했다. ⓒAdhmadullah Safi/MSF

 

빈곤은 의료 서비스 접근에 큰 영향을 미친다. 헤라트 지역병원(Herat Regional Hospital)에서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환자와 보호자의 89%가 재정적인 압박 때문에 진료를 미룬 경험이 있다. 한 아이의 부모는 영양실조에 걸린 자녀를 병원에 데려가려 했는데, 이동 수단으로 차를 빌리기 위해 지인과 친척에게 돈을 빌리다 병원에 오기까지 8일을 지체했다. 또 다른 주민은 이렇게 질문했다. "당장 오늘 저녁 먹을거리를 살 돈도 없는데, 약값이나 진료비를 어떻게 낼 수 있겠습니까?"

 

압둘 잘릴(Abdul Jalil)은 아들 라민(Ramin)을 공립 병원에 데려갔지만 처방 받은 약을 구입하지 못해 국경없는의사회 카데스탄 (Kahdestan) 진료소로 왔다. ⓒAdhmadullah Safi/MSF

 

아프가니스탄 주민은 수십 년간의 폭력과 불안이 만들어낸 비극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번 보고서 ‘아프가니스탄 소외된 의료 위기의 현실’에는 이곳 주민의 의료 접근의 어려움이 극명히 드러난다. 특히 주민 건강과 의료 대응에 대한 아프가니스탄 공식 입장과 환자들이 일상 생활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 사이의 불일치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환자들은 영양실조에 걸린 자녀나 임신 중인 친척, 부상을 당한 가족을 병원으로 데려오기 위해 얼마나 길고 위험한 길을 나서야 하는지 이야기합니다. 진료소에 가더라도 의약품이나 자격을 갖춘 의료진이 부족한 경우가 많으며,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빚을 내야 합니다."_ 줄리앙 라이크만(Julien Raickman) / 국경없는의사회 아프가니스탄 현장 책임자


국경없는의사회는 아프가니스탄의 카불(Kabul), 코스트(Khost), 칸다하르(Kandahar), 쿤두즈(Kunduz), 헬만드(Helmand), 헤라트(Herat) 6개 주에서 6개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2018년 국경없는의사회는 외래환자 약 411,700만명을 진료하고, 74,600건의 출산을 지원했으며 외과 수술 6,890건 이상을 진행했다. 국경없는의사회 아프가니스탄 프로젝트는 어떠한 정부 지원금도 받지 않으며 민간 재단이나 개인으로부터 모금된 후원금으로만 운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