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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의 로힝야 난민에게 듣는 이야기: “로힝야족의 운명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2019.08.26

메툰(Metun, 가명)은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Cox’s Bazar)의 쿠투팔롱-발루칼리(Kutupalong-Balukhali)난민 캠프에 살고 있는 미얀마 라카인 출신 로힝야 난민이다. 메툰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난민 캠프에서 비정부기구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메툰은 국경없는의사회를 만나 희망과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미얀마 라카인 출신 로힝야 난민인 메툰(Metun, 가명) ⓒDalila Mahdawi/MSF

“2017년 9월 11일 방글라데시로 왔어요. 정확한 날짜도 기억나요. 아내와 아이들 네 명을 데리고 건너왔죠.

라카인에서는 하루하루가 위험했어요. 그곳에 비하면 방글라데시는 천국 같지만, 여전히 이곳 환경도 너무 열악해요. 좁은 방 안에서 지내야 하고 화장실은 공용으로 쓰고 있어요. 비닐 천막 아래 환기도 안 되는 곳에서 살고 있어요. 아무데도 못 가고 여기서만 지내야 하고 방글라데시 사람들처럼 일을 할 수도 없어요.

여기는 이제 예전만큼 안전한 곳이 아닙니다. 돈을 벌 수도 없고, 학교도 일자리도 없어서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불법 행위를 하게 됩니다. 이미 사람들을 납치하고, 협박하고 강탈하는 과격 단체들이 있고, 미혼 여성과 아동은 인신매매단의 표적이 됩니다. 누군가와 불화가 있으면 갱단에 살인을 청부하는 경우도 있을 만큼 무서운 곳입니다. 작게 장사를 하거나 비정부기구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돈을 약간 벌기 때문에 주로 강탈 대상이 됩니다.

최근 캠프 주변을 둘러 방벽이 세워진다는 소문이 돌아서 사람들이 굉장히 걱정하고 있어요. 만약 그렇게 되면 난민캠프 안에서 각 구역 간에 이동할 수 없고, 신분증을 보여줘야만 가능할 거에요.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피폐해질 것이고, 캠프 안에서 갈등과 불안은 더 커져만 갈 겁니다.

미얀마 라카인 출신인 이만 (Iman, 22세)은 2015년 집을 떠나 태국으로 간 뒤 말레이시아에 와서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공사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는 이만은 두 달 넘게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일을 하는 동안 그 곳에서 머물 수 있기 때문에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  ⓒ Arnaud Finistre 

사람들은 로힝야족이 미얀마로 강제 송환됐던 1992년 상황이 다시 일어날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1992년때와는 다르겠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걱정하고 있죠. 며칠 전 저는 아직 라카인에 남아있는 사람과 연락을 했는데, 그곳에서는 방글라데시로 와있는 우리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합니다. 로힝야족 전체의 운명은 우리에게 달려있다고 했어요. 이곳에서 우리 권리를 인정받는다면, 거기서도 권리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미얀마로 돌려 보내진다면 우리 모두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거죠. 그걸 듣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여기 있는 우리도 불안합니다. 방글라데시 정부가 우리를 송환하려는 압박을 가하지 않길 바라고 있어요.  

많은 나라가 로힝야족 대이주 사태가 알려지기 전에는 로힝야족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을 겁니다. 미얀마에서 2017년 8월부터 계속된 폭력 사태에 대해서도 그렇죠. 로힝야족은 미얀마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이 금지돼있어서 그 상황을 세계에 알리지 못했습니다. 작년 이맘때쯤, 여러 비정부기구들과 언론매체에서 로힝야족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다뤄졌지만 지금은 세간의 관심이 많이 줄었고 내년에는 훨씬 더 줄어들 거에요. 이 상황이 계속된다면 방글라데시 정부는 우리를 미얀마로 돌려보내려 할 거에요. 국제사회가 이 문제에 관심을 계속 가져주길 바라고 있어요. 물론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간이 걸릴 거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쿠투팔롱 난민캠프. 현재 방글라데시에 머물고 있는 로힝야 난민은 91만 2000여명에 이르며 로힝야 대이주 사태가 일어난 2017년 8월 25일부터 지금까지 70만명이 이곳에 추가 유입됐다. ⓒDalila Mahdawi/MSF 

로힝야는 민족의 이름일 뿐인데, 미얀마에서는 우리를 칼라(kala)라고 불러요. 벵갈리어로 불법 이주민이라는 뜻이에요. 미얀마 정부는 국민들에게 국적증명카드(National Verification Card)를 신청하라고 했어요. 이 증명카드를 신청하려면 미얀마 시민이 맞는지 확인하는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작성해야 하는 문서가 있는데 거기에 나오는 첫 질문이 “언제 방글라데시에서 돌아왔는가?”이고, 질문 다음은 “왜 왔나?” “방글라데시에서 살던 곳에서 마을 대표는 누구였나?”입니다. 이 질문들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요? 그냥 우리를 강제로 수용소에 보내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얀마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 것이죠. 미얀마로 돌아가게 되면 국적증명카드를 만들기 위해 이런 조사를 받아야 하고 시민권을 신청하라는 압박을 받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 심정으로 그 시민권 카드를 신청하려고 하면 양가 3대 가족의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해요. 3대에 걸친 친척들의 신분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특히 미얀마 정부가 이미 과거에 수많은 문서들을 받아주지 않고 다 돌려 보냈는데 말입니다. 미얀마 정부는 이렇게 의도적으로 우리를 문서상 어떤 기록도 없는 상태로 내버려두고 있습니다. 정부가 로힝야족이 사는 마을을 모두 불태웠을 때, 그나마 갖고 있던 문서들도 다 불타버렸죠.

앞으로 5년 동안은 미얀마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아서 여기서 더 오래 지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에 있는 로힝야 난민들이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기에 더 머무르게 된다면 이들에게 교육과 사회적 보호를 받을 권리, 난민 지위, 2차 보건의료를 받을 권리, 노동의 권리가 주어져야 합니다. 즉, 우리는 정의를 원합니다. 미얀마에 있는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시민권뿐 아니라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 2차 보건의료를 받을 권리, 종교를 가질 권리를 원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짓밟히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교육 받아야 하지만 여기엔 학교 조차 없습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여기서 5~6년 난민 생활을 하고 나중에 돌아가면 아이들은 학교를 다시 다닐 수 없거나 가고 싶어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의 생활이 길어질수록 아이들의 미래는 어두워져만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