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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HIV 감염 환자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될 인세인 진료소 폐소

2019.07.12

양곤의 인세인 진료소에서 한 환자가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 Minzayar Oo

2019년 6월 27일, 국경없는의사회가 운영하던 미얀마 양곤 인세인(Insein) HIV 진료소는 미얀마 국가 AIDS 프로그램(NAP)에 환자를 인계하기 위한 국가적 전략에 따라 문을 닫았다. 

2014년에 개소한 인세인 진료소는 2003년부터 운영되던 국경없는의사회 상위 양곤 프로젝트의 일부였다. 프로젝트 절정기에는 17,000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했고 대부분 양곤 밖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인세인 지료소 폐소는 국경없는의사회와 미얀마 모두에게 중요한 사건이다. HIV 감염인을 위한 항레트로바이러스(ARV) 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국가의 역량이 강화됐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미얀마에서 최초로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제공했고 어느 기간 동안에는 국가에서 가장 큰 규모의 HIV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미얀마 국가 AIDS 프로그램과 국가 결핵 프로그램이 성장함에 따라 국경없는의사회는 보건체육부에 치료를 이양해 환자들이 거주지 인근 진료소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인세인 진료소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사회적 낙인과 비판에서 자유로운 환경에서 질 높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커뮤니티를 형성했습니다. 진료소는 올바른 치료기준의 전형이 되어, HIV 의료 제공자가 따를 수 있는 예시와 충족시켜야 할 기준을 제공했습니다.” – 파블로 콜로보스(Pavlo Kolovos), 미얀마 현장 책임자

미얀마 내 모든 국경없는의사회 HIV 진료소가 그렇듯 인세인 진료소의 의료는 종합적이고 환자중심적이다. 상담은 치료의 필수적인 부분이었으며 특히 테스팅 전후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상담가는 또한 환자들, 특히 취약한 그룹인 청소년, 성매매업 종사자, 마약 중독자들이 치료에 충실히 임할 수 있도록 돕는다. 미얀마에서는 HIV 감염인에 대한 차별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에 상담가는 환자들이 사회적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고, 환자와 가족, 공동체에 HIV에 대한 교육을 진행했다. 

“제가 HIV 양성이라는 걸 확인했을 때, 우울해서 자살까지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진료소 직원들이 제가 치료를 계속 받아 다시 정상적이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줬어요. 그들은 저에게 힘이 되고, 친절했어요. 제가 힘을 내고 다시 살기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줬어요.” – 우 미오 윈(U Myo Win, 가명), 국경없는의사회 환자

인세인 진료소에서 HIV 감염 환자는 또한 결핵, 다제내성 결핵, C형간염, 폐렴, 뇌수막염 등 생명에 위협적인 기회 감염 치료도 함께 받았다. 통합 치료 모델은 환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치료를 지속할 수 있게 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HIV와 다른 질병의 확산을 막았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지속적으로 이러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다른 HIV 의료 제공자들이 도입할 수 있도록 옹호했다.

인세인 진료소 폐소는 국경없는의사회가 미얀마에서 1992년부터 시작한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의 종결을 뜻한다. 이는 또한 2020년까지 미얀마가 국가 AIDS 프로그램을 통해 모든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의 75%를 제공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한 중대한 진전이기도 하다. 국경없는의사회는 국가 AIDS 프로그램이 HIV 치료를 확대해 선진 치료 모델을 표준화하고 치료를 전국적으로 분산하는 일에 협력할 것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계속해 양곤, 카친, 샨, 타닌타리에서 종합적 HIV 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 일을 하면서 우리 상담 프로그램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알게 되어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코 묘 키야(Ko Myo Kyaw)는 미얀마 인세인(Insein) 진료소 상담사이자 교육자다. 그는 15년 이상 HIV 감염인 상담에 상당한 경험을 쌓았다. 환자를 상담할 때 그는 환자가 치료를 충실히 받도록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며, 그 접근방식은 동기, 사회적 이슈, 행동 방식으로 구성된다.  

미얀마 인세인(Insein) 진료소 상담사이자 교육자 코 묘 키야(Ko Myo Kyaw). 매일 2시간동안 오가던 출근길에서 찍은 사진. ⓒ Minzayar Oo

HIV 치료에는 다양한 사회적 심리적 요인이 영향을 줍니다. 미얀마에서는 여전히 HIV 감염인을 향한 차별이 팽배합니다. 결핵이 있는 사람은 당당히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HIV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낙인은 여전히 널리 퍼져있고, 이는 환자들이 치료를 지속하는데 영향을 줍니다.

HIV 감염인은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학교에서든 매일 약을 복용해야 합니다. 어떤 환자들은 이것이 수치스럽고 부끄럽게 느껴져서 약을 복용할 때 다른 사람들로부터 숨기도 합니다. 그래서 불규칙적으로 복용하게 되고 나아가 치료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환자가 배우자와 다투거나 하면 약 복용을 잊어버리거나 치료를 지속할 동기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이렇듯 치료를 방해할 수 있는 요소를 줄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리는 환자와 환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도울 수 있습니다. 상담은 기본적으로 환자가 성공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곁에서 지원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상담가/교육가로 일한 15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 환자가 HIV 치료를 충실히 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는 세 가지 주요한 요소가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동기, 사회적 문제, 그리고 행동 방식입니다. 

이런 요소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테크닉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동기 인터뷰’로, 치료에 대한 동기를 잃어버린 사람을 어떻게 상담하는지 알려주는 논의입니다. 두 번째는 ‘문제 해결’ 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일상에서 사회적인 어려움을 만나지만, 우리는 환자들이 치료를 지속하고 건강을 유지하게 하기 위해 경감시킬 수 있는 사회적 문제들은 무엇인지 보는 게 우리 목표입니다. 우리는 ‘행동 방식 변화 상담’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환자가 폭음, 마약,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 등 위험한 성향을 보일 때 이 상담을 진행합니다. 우리 목적은 환자들이 치료를 방해하기보다는 도움이 되는 행동 방식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하면서 저는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상담 프로그램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볼 수 있었습니다. 2004년 이전 저는 국경없는의사회 같은 NGO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간호사로 이곳에서 일하던 이웃을 통해 상담가에 대해 알게 됐고, 제가 상담가는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봤을 때 이웃은 상담가는 환자들과 소통해야 해야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2003년 이곳에서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렸습니다.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제가 국경없는의사회 일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국경없는의사회와 일하며 기쁜 또 다른 이유는 2016년에 C형간염 치료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양곤에서 시범적으로 시작되어 현재는 C형간염이 완전히 치료된 환자들도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매우 자랑스럽고 상담가로 일하는 것도 아주 뿌듯합니다. 

 

“나는 스스로에게 ‘때가 되면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그 때까지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마 윈 윈(Ma Win Win, 가명)은 AIDS로 남편과 자녀를 잃었다. 그녀는 노숙과 가난을 견디고 살아남았다. 현재는 다른 환자를 위한 건강 교육과 상담을 제공하는 동료 서포터(peer supporter)로 활동하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다른 환자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하고 있다. 

마 윈 윈이 외출 전 전통 타나카 반죽을 얼굴에 바르고 있다. 이 오두막은 양어머니 다우 하 이(Daw Hla Yee, 가명)의 소유인데 갈 곳이 없는 마 윈 윈이  HIV 치료를 받는 동안 무료로 지내게  해주었다. ⓒ Minzayar Oo

저는 2000년 28살의 나이에 남편을 잃었습니다. 그때 저는 임신 중이었어요. 아들도 HIV를 가지고 태어났고, 아프기 시작했을 때 병원에 데려갔습니다. 아이가 영양실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조금이라도 돈을 벌어보려고 그림을 그려 팔았어요. 아이는 결핵에 걸려 매우 말랐었고, 우리는 돌봐줄 다른 가족이 전혀 없었어요. 결국 아들이 겨우 4살 됐을때 죽었어요. 우리는 당시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받을 수 없었어요. 남편과 아들이 죽고 나서 저는 혼자였고, 수입도 없고, 집도 없는 상태였어요.

제가 HIV가 있었기 때문에 친척들은 저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어요. 그 집에서 물을 마시지도 못하게 할 정도였어요. 부모님은 돌아가신 지 오래였고, 형제들은 각자 가족과 함께 살고 있어서, 제가 HIV가 있다는 걸 알고 자기 집으로 오지도 못하게 했어요. 음식을 살 돈도 없어서 저는 공원에 가서 나무에서 떨어진 망고를 주워 먹고, 공원에 있는 식수대에서 물을 마셨어요. 가끔은 부처님께 공양 드려진 음식을 가져다 먹거나 구걸을 하기도 했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고통스럽습니다. 

건강은 하루가 다르게 악화됐어요. CD4 수는 겨우 14로 떨어졌고 (CD4세포는 HIV 바이러스가 공격하는 세포로 HIV 감염이 진행될수록 수가 감소한다), 저는 치료받을 방법을 찾으려 흐라잉따(Hlaingthayar)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로 갔습니다. 전에 아들이 치료를 받을 때 우리에게 숙소를 제공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치료를 받으러 다시 진료소를 찾았고 처음엔 치료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제공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가 필요해 모든 사람에게 치료를 제공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죽을 거라 생각했어요. 제가 구할 수 있는 약은 셉트린(Septrin) 뿐이었습니다. 그 시점 저는 눈에 보일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고 있었고 온 몸에 궤양이 생겼습니다. 

국경없는외사회는 제 결핵을 먼저 치료해줬습니다. 저는 기침이 많이 났고 밤에는 열이 나고, 몸이 아프고, 온 몸에 궤양이 있었습니다. 의사가 저에게 결핵약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폐 검사를 해주고, 진료소를 오가는 교통비도 지원해줬습니다. 저는 9개월 동안 결핵 약을 먹었고 그 이후,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시작했을 때, 제 CD4수가 늘어났습니다. 저는 정기적으로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받았습니다. 의사들이 매우 친절하게 대해줬고 모두가 곁에서 저를 지지해줬습니다. 

마 윈 윈의 양어머니 다우 하 이 (Daw Hla Yee)가 오두막의 사당에서 기도하고 있다. 다우는 마 윈 윈이 HIV 치료를 받는 동안 무료로 지내게 해주었다. ⓒ Minzayar Oo

2005년 건강이 많이 회복되어서 저는 HIV 감염인을 위한 모임에 나갔습니다. 매주 일요일 저는 HIV 환자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현재 저는 성매매업 종사자들이 일하는 유흥업소나 살롱, 안마 시술소, 사창가, 나이트 클럽 같은 곳을 다니며 HIV/AIDS 예방과 치료에 대해 설명합니다. 사람들에게 HIV 검사를 받고, 필요한 경우 치료를 받으라고 권고합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HIV에 대해 절망하지 않도록 격려하면서 제 이야기를 예로 들곤 합니다. 

제 건강상태가 크게 호전된 이후 저는 살 곳을 찾았습니다. 지금도 정기적으로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받으며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살아있는 동안 저는 계속 일을 할 것입니다. 

이제 저는 잘 곳, 먹을 것,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제 건강을 되찾았으니, 저는 제 두발로 온전히 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