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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성형외과의 김결희 활동가의 세번째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기

2019.05.31

국경없는의사회 김결희 구호활동가 (성형외과의) ⓒKyulhee Kim / MSF

글 | 김결희 구호활동가 (성형외과 전문의)

나와 국경없는의사회와의 인연은 2014년 보스턴에서 펠로우쉽을 마치는 시기에 미국 국경없는의사회 사무국을 통해 지원을 하게되면서 시작되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구호 활동가로 선발되기 위한 뉴욕 사무국에서의 채용설명회 참석, 서류 면접, 대면 영어 면접, 참고인 조사 등 여러 단계를 거쳐 활동가(Expatriate) 인력으로 등록되었다. 

그러나 다음 펠로우십 일정 관계로 2년동안 구호 활동을 나가지 못하였다. 국내에서도 매년 국경없는의사회 채용 설명회가 있고 현재는 그 곳에서 나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국제 봉사에 뜻이 있는 열정적인 의사분들을 만나고 있다. 뜻은 있으나 막상 국경없는의사회와 활동하지 못하게 되는 가장 큰 장애물은 고소득이 보장되고 지속적으로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의사가 한두 달 간 자리를 비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2016년 미국에서 국내로 진료 환경을 바꾸면서 시간을 낼 수 있는 시기가 왔고 이전에 이미 활동가 인력으로 등록이 되어 있었기에 미션 참여가 가능함을 사무국에 알려 시기에 맞는 미션을 미리 배정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계기가 되어 2016년 하이티로 첫번째, 나이지리아로  두번째 미션을 다녀왔다. 

이후 한국 국경없는의사회 소속으로 변경되어 한국 활동가 선생님들, 사무국 분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워낙 유럽 쪽 활동가가 많은 국경없는의사회이기에 실제 미션을 나가면 한국분들과 일하는 기회가 극히 드물다. 국내 활동가 선생님들과 현장에서 함께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미션을 향한 나의 향수를 자극한다. 활동가들끼리는 ‘국경없는의사회와 일하는 것은 중독이다’ 라는 말을 한다. 한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으나 한번만 미션을 가는 사람은 없다는……  물론 의료 환경이나 생활 환경이 안락하지는 않으나 나를 기다리고 있을 도움이 필요한 환자들, 미션지에서 느끼는 경험, 그리고 그 경험에서 오는 보람이 중독을 일으키는 것이리라. 

그러나 나 또한 국내 개인 병원에서 봉직의로 일하면서 시간을 내기란 쉽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다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고 이 시기가 미션을 다녀올 수 있는 적기라고 생각되어 사무국에 미션 참여가 가능함을 알렸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하지 재건을 할 수 있는 성형외과 전문의가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많은 분들이 안전에 대해 걱정을 하시리라 생각된다. 실제 팔레스타인 지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들 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역사적으로도 이스라엘과 이집트간의 영토분쟁지였으며 현재는 길이 약 50km, 폭 5-8km 의 가늘고 좁은 지역(Strip)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고 바다를 포함한 사방에 이스라엘 군이 병력 배치를 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대(對)이스라엘 시위가 매 주 발생하고 이스라엘 군의 시위대를 향한 총격, 폭탄 투하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지역이다. 

미션을 제안 받자마자 나는 또 들떠 있었다. 이미 가자지구로 활동을 다녀오신 활동가 선배님들에게 전화하여 그 곳의 상황과 환자군의 특성, 갖춰진 수술 기구들과 가능한 기술들을 문의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이미 두번의 미션지로 나를 떠나보낸 적이 있는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제는 담담히 받아들였다. 실제로 활동가들의 안전은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이다. 안전한 것을 알고 있기에 남편은 이슬람 문화에 대한 별 경험이 없는 나를 위해 이것저것 자신의 경험을 공유해 주기도 했다. 

가자지구와 이스라엘을 구분하는 장벽의 전경 © Laurie Bonnaud/MSF

터키 이스탄불에서 경유를 하고 이스라엘 Tel Aviv-Yafo공항에 착륙하였다.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을 거쳐야 들어갈 수 있다. 이스라엘 공항에 도착하여 ‘MSF(Médecins Sans Frontières, 국경없는 의사회, 불어) 팻말을 들고 있는 운전 기사를 만나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예루살렘 숙소에서 하루를 머물고 나면 다음 날은 가자와 이스라엘 사이의 접경 지역을 통과하게 된다. 외국인들에게도 왕래가 매우 어렵고 특히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밖으로 나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여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The World largest Prison)’이라 불리우는 가자지역 안으로.

가자지구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경비가 매우 삼엄했다. 어떤 촬영도 불가능하고, 인도해 주는 MSF직원들은 눈에 띄는 행동을 절대 하지 말 것을 수 차례 경고한다. 높다란 콘크리트 담으로 막힌 가자와 이스라엘 사이의 장벽의 유일한 통로인 황무지 한복판을 뚫고 끝없이 멀어 보이는 복도를 통과하면 드디어 가자지구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를 구분하는 1km 터널. 가자지구 북부에서 촬영된 사진  © Laurie Bonnaud/MSF

가자지구에 있는 MSF 캠프는 인력 변화가 항상 있기는 하지만 약 40-50명들의 활동가들이 근무하는 비교적 큰 프로젝트에 해당된다. MSF는 의료 구호 활동을 하는 단체지만 미션지에서는 의사, 간호사 등의 의료진들뿐 아니라 비의료진과도 함께 활동하게 된다.

무력분쟁지역, 전염병 창궐지역, 자연재해 지역 등의 의료 사각 지대에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현장에 필요한 기술/관리 지원, 물자 주문/구입/수송/저장, 차량, 통신장비, 기계 관리 등을 해 줄 수 있는 로지스티션 (logistician) 뿐만 아니라, 많은 인력과 재정을 관리할 인사 및 재무 담당자들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미션지에서 모든 활동가들은 한 숙소에서 생활하게 된다. 미션지의 상황에 따라 각자의 방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고 한 방에 여러 활동가가 벙커 침대를 사용하며 함께 생활하기도 한다. 가자지구에서는 현지 활동 경력이 많으신 60대 영국 여성 성형외과 전문의 선생님과 함께 방을 사용했다. 각자 수술을 마치고 돌아오면 케이스를 상의하고 수술 플랜에 대해 조언을 묻고 예전 케이스들을 리뷰하여 정말 좋은 룸메이트였다는 생각이 든다.  

국경없는의사회 가자 지구 클리닉 © Yuna Cho/MSF

가자지구에서 MSF는 여러 병원에서 진료, 수술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나는 가자지구 남쪽에 위치한 Dar Essalam 병원에서 근무하게 됐다. 매일 아침 8시면 숙소에서 방탄차를 타고 20-30분을 달려 병원으로 출근을 한다. 가자지구는 치안이 안정적이지 않아 숙소 인근을 제외하고는 개인적으로 걸어 다닐 수 없고 항상 동반자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병원에 도착하면 하루 스케줄을 확인하고 일과가 시작된다. 전형적인 환자들은 하지, 특히 무릎 아래 부위에 총상을 입은 남자 환자들이다. 매주 금요일이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접경 지역에서 시위를 하고 이스라엘 군대는 시위대의 무릎 아래를 조준해 사격을 한다. 나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전쟁에서는 머리나 가슴을 조준하여 한 사람을 사살하는 것보다 한 명을 불구로 만들게 되면 불구가 된 사람을 이동시키기 위해 두 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더 많은 병력 손실을 일으킨다고 한다. 이슬람 문화상 외부 활동은 주로 남자들만이 할 수 있어 남성 하지 총상 환자들이라는 전형적인 환자군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가자 지구 병원 대기실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총상 환자들 © Yuna Cho/MSF

한국에서도 교통 사고 등 종아리의 개방성 골절은 흔하지만 총상에 의한 하지 손상은 거의 볼 수가 없다. 가자 환자들의 총상은 작은 원형의 금속 물체(총탄)가 다리 한 쪽에 입사구, 반대측에 큰 연주조직 결손이 동반된 출사구를 만들며 중간의 뼈는 분쇄시켜버리는 개방성 분쇄상 골절을 만들게 된다. 결국 이러한 손상은 뼈의 골절 유합, 그리고 입사구과 출사구의 연부 조직 재건이라는 공통적 난제를 갖고 있다.

가자지구는 이러한 손상의 특성상 정형외과의과 성형외과의가 협동 수술을 하게 된다. 정형외과의사 뼈의 결손을 메꾸고 외부고정기로 alignment를 만들면 성형외과의가 피부 이식이나 근육-피부피판, 근육피판으로 연조직결손을 메꾸는 것이다. 특히 개방성골절은 노출된 뼈에서 비롯되는, 결국은 절단으로 귀결되는 골수염이라는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기에 노출된 뼈를 건강한 조직으로 덮어주는 재건 수술이 중요하다.  

다리에 총상을 입은 젊은 남자환자라는 특정한 환자군을 가진 가자지구에서 대부분의 수술은 하지재건술이다. ⓒKyulhee Kim / MSF

입원 시설이 없어 모든 수술 환자가 당일 퇴원하고, 미세 현미경이나 수술기구, 재료가 없기에 MSF는 오히려 큰 결손을 발생시킬 수 있는 미세 수술은 금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수술은 피부이식 또는 피판술 (Gactrocnemius flap, Soleus flap, Reverse Soleus flap, Peroneus flap, Lateral supramalleolar flap등)이 이루어 진다.  사실 국내에서 이런 케이스들을 본다면 모두 미세 수술의 적응증이 될 것이다. 그러나 X-ray도 수상 당시의 것만이 있고 Angio-CT등은 기대도 할 수 없으며 수술 기구도 정형외과에 준하여 갖추어져 있으니 현대의 첨단 진단, 치료 장비를 이용한 진료만 해 온 의료 선진국의 의사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그래서 MSF와 일하면서 의사로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덕목이 유연성(Flexibility)이다. 접하지 못했던 환자군, 제한적인 수술 기구/ 재료, 처음 손을 맞춰보는 인력들과 일하면서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 경험을 바탕으로 유연하게 적응하여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총상은 체내에서 터진 총알의 파편 조각들이 연조직에 산재해 있어 염증의 가능성이 있기에 바로 재건 수술을 하지 않는다. 환자들은 수상 직후 외부 고정기로 뼈 고정을 받고 열린 상처는 여러번의 debridement를 걸쳐 감염의 가능성이 없을 때 재건 수술을 시행한다.  하루에 약 7-8개의 수술을 시행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시간은 없고 대기 환자는 많고…. 플랩수술로 예약되어 있어 상처를 열어보면 장기간 기다리면서 오래 드레싱 치료를 받아 granulation tissue가 자라 피부 이식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웃지 못할 상황이 있기도 하고, 오랜 열린 상처로 골수염으로 진행되어 절단이 불가피한 상황이 있기도 하다.  

이런 장기간의 치료가 필요한 비극적인 상황에서 환자들의 태도가 매우 절망적일 것 같지만 반대로 환자들은 자신이 치료를 받을 수 있고 나을 수 있다는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처음 국경없는의사회에 지원하고 미션에 나가면서 나 자신에 대해 가장 걱정했던 점은 환자들의 그런 비극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만난 환자들은 오히려 긍정적인 마음 가짐을 갖고 있어서 우리보다 정신적으로 더 강하다고 느끼게 된다.  

수술실에서 함께했던 국경없는의사회 동료들과 ⓒKyulhee Kim / MSF

또 다른 경험은 각각의 미션 지역마다 다른 문화이다.  무슬림들은 하루에 다섯 번의 기도를 하는데 바쁜 수술방 상황에서도 로컬 간호사들은 정해진 시간에 맞춰 기도를 한다. 새벽 다섯 시에도 숙소 옆 사원에서 기도하는 소리에 맞춰 기상을 했는데 수술 중간 중간에도 바닥에 자리를 깔고 기도를 올리는 간호사들을 볼 수 있다. 옆 회복실에서 기다리는 환자도 당연한 일인 것처럼 느긋하게 기다린다. 미션이 끝나갈 때쯤 이해할 수 없는 기도 소리에 왠지 모를 마음의 평온함을 느끼게 되었다. 다른 문화권에서 일하며 그들을 충분히 이해할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은 국경없는의사회와 일하며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경험 중 하나이다. ‘여행은 살아보는 것’이라는 광고가 있다. 현지인들과 일하며 살아보는 것. 이러한 심도 있는 문화 경험이 또 있겠는가! 

현지인들과의 문화 교류도 경험이지만 다른 여러 국가들에서 파견되어 온 활동가들과의 생활, 일도 경험이다. 언어 장벽이 있지는 않을 까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언어의 문제보다는 열린 마음의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MSF는 불어를 주로 사용하는 미션과 영어를 주로 사용하는 미션으로 나누어진다. 나도 영어만 가능해 영어를 주로 사용하는 미션에 참가해 왔다. 앞서 말했듯이 유럽에서 온 활동가들이 많은데 생각해보면 그들에게도 영어는 제2외국어이다. 언어가 적응 능력이나 일의 퍼포먼스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면 북미 또는 영국에서 온 이들이 사회생활이나 일적으로도 뛰어나야 한다. 그러나 실제 숙소에서 분위기를 주도해서 모임을 만들고 일적으로도 조율을 잘하는 이들은 언어가 뛰어나다기 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 대하는 분들이다. 언어는 남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고 본다.  

가자에서 3주 동안의 미션을 마치고 돌아 오는 길. 그 동안 친해진 로컬 간호사, 의사들을 두고 가자지구를 나오려니 다른 미션과는 다른 기분이 들었다. 아이티와 나이지리아도 2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다시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떠날 때는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높은 담과 철망으로 봉쇄되어 있는 가자 지구를 떠나 오려니 왠지 다시 그들을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오늘은 나만 이 곳을 나가지만 언젠가는 그들이 세상에서 제일 큰 이 감옥에서 나올 수 있기를… 그래서 내가 다시 이 곳으로 오기보다는 더 넓은 세상에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육중한 철문을 통과해 나왔다. 

*이 글은 대한성형외과학회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s://www.plasticsurgery.or.kr/mail/file/mail_190430.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