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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르완다 대학살 25주년

2019.04.10

1994년 4월 7일 국경없는의사회는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Kigali)의 폭력 사태를 생생히 목격했습니다. 르완다 대학살이 시작된 바로 그 날부터 국경없는의사회 직원을 포함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희생됐습니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국경없는의사회는 그 날을 기억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르완다에서 1982년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90년 10월 후투(Hutus)족을 이끄는 쥐베날 하브자리마나(Juvénal Habyarimana) 당시 르완다 대통령의 르완다군(Rwandan Armed Forces, RAF)과 투치족(Tutsis)으로 구성된 르완다 애국전선(Rwandan Patriotic Front, RPF)군의 내전이 발발했습니다. 하브자리마나 대통령을 타도하려고 했던 르완다 애국전선군의 공격은 르완다군에 의해 중지되었습니다.

당시 르완다 정부가 가까스로 승리했고 평화 협정을 위한 대화가 시작됐으며 1993년 르완다군과 르완다 애국전선군은 아루샤평화협정(Arusha Accords)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이 평화협정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1994년 4월 6일 하브자리마나 대통령이 탄 키갈리행 항공기가 격추되면서 1994년 4월 6일자로 휴전 상태는 급격히 무산됐습니다.

르완다 대학살 당시 국경없는의사회는 르완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100일 동안 약 50만-80만명의 이르는 투치족과 집단 학살에 반대하는 후투족이 살해됐습니다. 

☞자세히 보기: https://www.msf.org/rwandan-genocide-25-years

1994년 4월 13일. 부룬디(Burundi)와 르완다(Rwanda) 국경에 있는 르완다 난민들의 모습. ⓒXavier Lassalle/MSF

 

1994년 4월. 르완다 키갈리(Kigali)에 위치한 국경없는의사회/국제적십자위원회(ICRC) 병원에 한 청년이 환자인 동생을 부축해 데려왔다. 이 지역을 통제하고 있는 군부 세력과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이들은 환자의 형이 병원에 머무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그는 결국 병원에서 100미터 떨어진 지역에서 피살된 채 발견됐다. ⓒXavier Lassalle/MS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