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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던 소아과 의사 타이틀 내려놓은 지 벌써 14년 됐네요" 국경없는의사회 마리아 구에바라 선임

2019.01.10

 

국경없는영화제 현장 토크 패널로 방한한 국경없는의사회 마리아 구에바라 선임

국경없는의사회(MSF, Medecins Sans Frontieres) 가 기획한 제2회 국경없는영화제가 많은 관심 속에 지난 11월 25일에 막을 내렸습니다. 분쟁 지역에서의 의료 시설에 대한 공격을 다룬 다큐멘터리 <아프가니스탄: 화염에 휩싸인 병원> 상영 후 진행된 현장토크를 위해 방한한 마리아 구에바라 (Maria Guevara) 국경없는의사회 의료시설 공격 대응 선임 (Senior Coordinator, Attacks on HealthCare)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

구에바라 선임은 전세계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의료 시설에 대한 공격 현황 및 국제인도법뿐 아니라, 미국에서 소아과 의사로 일하고, 이후 15년간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일한 개인적 경험도 들려줬습니다. 

  • 잘 나가던 미국 소아과 의사
  • 의사로서 봉사활동 많이 하던 부모님에게 영감 받아 
  • 늦기 전에 의사로서 할 수 있는 봉사 활동 찾기로 15년전 결심
  • 의료 시설은 국제인도주의법에 의해 보호받는 시설임 인지해야  

Q.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일하게 되신 동기는 무엇인가요? 

이 얘기를 하려면 먼저 왜 의사가 됐는지 얘기해야 합니다. 부모님 두 분 다 의사였고, 나는 어려서부터 항상 좋은 일을 하고 싶었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내과 의사였던 아버지와 마취과 의사였던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 휴가 기간에 의료 구호 활동에 많이 참여하셨고, 구순구개열 (태어나면서부터 입술과 입천장이 갈라져있는 기형)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을 주로 치료하셨어요. 구호 작업에서 돌아오시면 부모님이 치료해서 나아진 아이들 사진을 보여주셨고, 난 부모님이 정말 훌륭하신 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에겐 영웅 같은 존재였죠. 나도 부모님과 같이 이런 훌륭한 일을 하고 싶어서 의대에 갔고,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의사라는 직업이 의술을 행하는 것보다는 항상 서로 경쟁해야 하는 비즈니스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는 훌륭한 의사들이 많아요. 의료 시스템 내의 기술도 훌륭하고, 활용할 수 있는 자산도 많습니다. 하지만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보다는 더 많을 것 같았고, 미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내가 의사로서 다른 이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라면서 항상 이런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의대에 다닐 때 국경없는의사회의 스티커를 보게 됐습니다. 그 당시 국경없는의사회는 잘 알려진 단체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NGO들이 더 유명했지만, 딱히 공감이 가진 않았어요. 나랑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국경없는의사회를 알게 됐고, 의사가 되면 꼭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졸업을 하고, 수련의 과정을 거쳐 의사가 되고, 병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집 앞 거실에 앉아 창 밖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플로리다 해변 근처의 큰 집에 살고 있고, 좋은 차도 타고, 돈도 많이 버는데 이상하게 답답한 기분이 들었고,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결심하지 않으면 계속 더 많은 걸 가지기 위해 평생 무한 경쟁 속에 갇힐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지금 당장 국경없는의사회로 가지 않으면, 평생 하지 못할 거고 그럼 후회만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병원 과장님에게 가서 병원을 그만두고 자원 봉사하러 가겠다고 했더니 놀라운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다들 “와, 나도 국경없는의사회에서 봉사하고 싶었는데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다시 돌아오고 싶을 땐 언제든 돌아와” 라고 격려해줬습니다. 그게 벌써 14년도 넘은 일입니다.  ​

 

Q. 결정에 후회는 없었나요? 

첫 미션지는 라이베리아 수도 몬로비아였고, 처음 2개월은 힘들었습니다. (웃음) 딱히 후회라기 보다는 내가 이 일을 정말 원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엔 내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 이해가 필요했습니다. 난 그 전에 소아과 의사로 아이들을 치료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현지에 파견되어서, 아이들을 치료하는 것도 처음부터 새로 배워야 했고, 책에서만 봤던 질병을 가진 성인들을 치료하려니 정말 충격이었죠. 또한 현지의 의료 관습부터 기계 작동까지 모두 다 처음 접하는 것들이라 신기하기도 하지만, 스트레스도 컸습니다.

​터닝 포인트가 있었는데, 일하던 병원이 있던 지역에서 서로 다른 민족들 사이에 무력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동네가 불타고 부상당한 환자들로 병원이 가득 찼습니다. 병원이 유일하게 남은 피난처였던 거죠. 그 다음 2-3일은 병원에 환자가 넘쳐났습니다. 그 때서야 내가 어디에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그 이후에 호송 차량을 구하고 밖으로 안전하게 나갈 수 있었습니다. 원래 사람들로 붐비던 시장은 텅 비어 있었고, 주유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병원에 갔는데 아비규환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아, 이런 거구나. 이런 곳에 내가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이런 건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고 느낄 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됐습니다. 바로 그곳 현장에 있는 구호 인력은 국경없는의사회 뿐이었고, 실제 그런 역량을 가진 것도 국경없는의사회 뿐이었습니다. “그래, 난 여기 남겠어”라고 결심했지만 동시에 “내가 여기 계속 있을 수 있을까?’ 두려움도 들었습니다. 

Q. 기억나는 현장 프로젝트가 있나요?

2016년 남수단의 수도인 주바에서 분쟁이 벌어졌고, 마침 프로젝트 사이에 1달의 시간이 비어 자원하여 주바에 갔습니다. 도착한 지 1주일도 지나지 않아 도시 전체가 전쟁 지역으로 바뀌었고 평범하던 길인데 길에 총을 든 군인들이 쫙 깔리고, 도로 양쪽에서 서로에게 총을 겨누더군요. 결국 3일간 건물 안에 갇혀서 어디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어디서 발생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총 소리가 너무 가까이서 들리고 창문 너머로 불이 치솟는 장면도 너무 잘 보였습니다. 한 무리의 군인들도 보였구요. 

​분쟁 현장의 한복판에 있는 것이 흥분되는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여길 살아서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어 또다시 총성이 들렸는데 휴전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화요일에 건물 폐쇄가 풀리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는데, 그제서야 이 도시에 일어났던 일을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또다시 “그래서 내가 여기 있는 거지”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6년: 남수단 수도 주바에 있는 성 테레사 성당에서 이동 진료를 진행하는 국경없는의사회의 모습. 이곳 성당에는 2500명이 피신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의료 지원이 가장 시급한 사람을 중심으로 의료 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매일 수백 명을 치료해 왔다. ⓒMSF

 

​Q. 지난 몇 년간 전세계적으로 의료 시설에 대한 공격이 증가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의료 시설에 대한 공격은 지속적으로 발생해 왔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같은 단체들은 현장에서 이런 상황을 더 잘 볼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전세계에서 발생하는 의료 시설 공격과 관련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모으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공격의 정도가 강해지고 있고, 기술 발전이 우리에게는 큰 적입니다. 드론이 그 예인데요, 칼에서 총으로 무기의 수준은 달라졌지만, 양쪽이 비슷한 조건하에 싸우는 것이라면, 드론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수백만 킬로 떨어진 곳에서 드론을 띄우고 목표물을 설정해서 버튼을 누르면 바로 폭파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드론을 통해 의료 시설을 공격하는 자들은 파괴된 현장이나 사상자들을 실제 보지 않고, 본인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을 손쉽게 자행할 수 있습니다.

목표물을 사전에 정한다 하더라도 일정 구역이기 때문에 그 구역 안에는 민간인이나 병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인도법 준수 국가들도 민간인 사상자가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경우에 따라 판단이 다릅니다.

또 다른 문제는 인식 부족입니다. 국제인도법 (IHL: International Humanitarian Law)을 준수하는 국가라 할지라도 중요도가 높은 목표물일 경우, 무장 세력이 국가 소속이 아닐 경우 법을 지키지 않는 일이 발생합니다.

2015년 10월 3일, 공습 이후 불에 탄채 남아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아프가니스탄 쿤두즈 외상병원의 내부 모습 ⓒVictor J. Blue

아프가니스탄 쿤두즈에서 미군에 의해 자행된 의료 시설 파괴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국제인도법에서 병원은 그 어떠한 공격으로부터도 안전한 곳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분쟁 가담자 측이 병원 근처에 무기를 숨겨놨다거나 하면 병원도 지역 공격으로 인해 피해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라도, 공격하는 측에서 병원이 공격받을 수 있음을 그 지역에 미리 알려서 병원 측에서 민간인 대피를 도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쿤두즈에서 발생한 병원 공격은 사전 경고가 없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미군 측의 실수로 벌어진 일인데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의사로서, 국경없는의사회 직원으로서 살아온 지난 날에 후회가 없다는 마리아 구에바라 선임에게서 국경없는의사회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이 느껴졌습니다. 2019년에는 한국의 더 많은 분들이 국경없는의사회의 다양한 현장 구호 활동에 관심 가져 주시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