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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대지진과 쓰나미... 술라웨시 재난은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2018.12.05

“술라웨시 재난은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글 | 란지 W. 수드라자트 / 의사

규모 7.5 지진에 이어 6m 높이의 쓰나미가 중부 술라웨시를 덮친 날로부터 9일이 흐른 10월 7일.

“(중부 술라웨시) 사망자 수는 1900명까지 치솟았고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팔루 시로 들어가는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마카사르 공항 텔레비전에서는 이런 보도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팔루 시 공항에 도착해 보니, 그 보도는 제가 앞으로 마주할 현실을 암시했던 것이더군요.

공항은 몹시 혼잡했습니다. 최근 보수한 활주로 주변에는 군 항공기들이 늘어서 있었고, 처참하게 무너진 항공교통관제탑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공항은 팔루 시에서 나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엄마 무릎을 베고 잠든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머리를 다쳤는지 큰 붕대를 감고 있었습니다. 저는 ‘부디 무사히 가기를…’ 하고 조용히 그 아이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잘 오셨어요!” 국경없는의사회 행정 직원이 우리를 맞아 주었습니다. 우리 팀은 의사인 저, 간호사, 식수위생 전문가 이렇게 3명이었습니다. 행정 직원은 피곤해 보였습니다. 10월 2일부터 여기 와 있던 현장 조사팀(프로젝트 코디네이터, 의사, 물류 담당자, 행정 담당자)은 호텔 주차장에 텐트를 치고 거기서 지내 왔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전기도 들어오고 물도 구할 수 있어서 괜찮아요. 처음 며칠은 진짜 힘들었어요.” 현장 조사팀이 말해 주었습니다.

“먹을 게 많지는 않지만 상황이 그리 나쁜 건 아니에요. 프라이드 치킨이나 피자 같은 건만 달라고 하지 않으신다면 괜찮을 거예요.” 행정 직원이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음날 우리 팀은 푸스케스마스(현지 보건소)에도 방문하고, 시기(Sigi) 지역으로 나가는 발루아세 이동 진료소에도 합류했습니다. 시기는 지진 • 쓰나미 • 액상화 삼중 재난으로 피해를 입은 3개 지역 중 하나였습니다.

“평상시에는 금방 가는 거리인데 도로가 훼손되고 교각들이 무너지는 바람에 돌아가느라 두 시간이 걸리는 거예요. 전에는 팔루에서 시기까지 45분이면 갔거든요.” 푸스케스마스 소장 크리쉬나 박사님이 말했습니다.

조그만 차창 밖으로 보니 키 큰 풀들이 우리 주변을 에워쌌고, 길은 최근에 생긴 비포장도로였습니다. “원래 이곳은 전부 벌판이었는데, 군에서 풀을 다 베어내고 모래를 부어서 도로를 만들었습니다. 이 도로가 생기기 전까지 시기는 외부 세계와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었습니다.” 차를 운전하던 크리쉬나 박사 남편 분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표지판: “의료 지원이 필요합니다”

표지판 내용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은 곧 알 수 있었습니다.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상황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자 한 가정에서 이 표지판을 만든 거죠. 식구 중 부상자가 있던 이 가족은 누구라도 와서 환자를 데려가 치료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두려움 속에 몇 날 며칠을 보냈습니다.

다리가 부러져 탈골된 여성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진 나고 5일 정도 뒤에야 이송됐어요. 사람들이 저를 태우고 팔루로 데려다 줬어요. 이제 저는 괜찮은데 일곱 살 난 제 아들은 폐허 속에 잃어 버렸어요. 나중에 아이는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됐어요.” 

시기에서는 눈 닿는 모든 곳이 파괴되고 무너져 버렸습니다. 땅이 갈라지고 집들이 무너지고 건물들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발루아세의 푸스케스마스는 멀리서 봤을 때는 멀쩡한 것 같았는데 가까이 가 보니 피해가 심각했습니다. 그 보건소는 1만5000여 명의 주민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던 중요한 의료시설이었습니다.

다행히 국경없는의사회는 지역 의료 서비스를 복구할 계획을 수립하고 현장에 2018년 10월 15일 임시 푸스케스마스를 마련했습니다.

시기 주 사우스 돌로 구역에 위치한 발루아세 보건소(푸스케스마스) 모습

보건소 복구를 위해 물류, 식수위생 팀이 구슬땀을 흘리는 동안, 우리 의료팀은 푸스케스마스 직원들의 도움 속에 사우스 돌로 구역 13개 마을을 돌며 이동 진료 활동에 착수했습니다.

일하기가 매우 힘든 때도 있었습니다. 전에도 국경없는의사회 긴급구호 현장에서 일했었지만,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대형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치료한다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고, 정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충격이 컸던 거죠.

그래서 저는 다른 현장에서 하곤 했던 일에 나섰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 바로 아이들과 놀면서 시간을 보낸 거죠.

시기 주 삼보 마을 이재민 캠프 (2018년 10월 15일)

제가 글을 쓰는 지금, 국경없는의사회는 발루아세에 임시 푸스케스마스 건립을 마쳤습니다. 그 지역에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던 시설의 중요한 기능을 살려낸 것입니다. 또한 국경없는의사회는 시기 주에 있는 난민캠프 곳곳에 물탱크와 간이 화장실도 설치했습니다. 그 밖에 현지 보건국과 함께 활동하면서 팔루, 동갈라 지역의 다른 푸스케스마스도 복구했고, 필요한 의료와 심리사회 지원도 제공했습니다.

팔루, 동갈라, 시기 주민들이 예전처럼 생활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현장에 머물면서 내면의 힘과 회복력이 참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제가 만났던 분들은 “그래도 남은 사람은 삶을 붙들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제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때로는 좀 울어도 괜찮지만 그러다가도 눈물을 닦고 웃으며 힘을 내야 한다는 거죠. 이건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삼중 재해로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나간 사람들이 남기고 간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땅이 갈라지고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리고
우리가 사랑하던 그 바다가 지붕을 덮치고
너의 그 소중한 두 손마저 내게서 빼앗아 갔지만
네가 남기고 간 사랑을 위해서라도
씩씩하게 살아가겠다고 약속할게.
가슴 활짝 펴고 당당하게 살아가면서
늘 친절한 마음씨를 간직할게.
나는 너에게 또 너는 나에게 언제나 푸근한 집…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겠지…

2018년 10월 20일 팔루에서,
란지 W. 수드라자트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