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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화 의료: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도 우리의 임무입니다”

2018.10.17

국경없는의사회 완화 의료 전문가 아민 람루스 (Amin Lamrous) ⓒ국경없는의사회

“사람들은 사망률을 신경 씁니다. 사망률은 측정하기가 더 쉽거든요. 고통은 측정할 수도 없을뿐더러 이해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생명을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고통을 덜어주는 것도 분명 우리의 임무입니다.”

아민 람루스(Amin Lamrous)는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완화 의료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인도적 대응 활동의 일환으로 완화 의료를 어떻게 실시하고 있는지 들어 보았다.

Q. 보통 ‘완화 의료’는 죽음을 몇 달 앞둔 환자에게 통증 완화제를 제공하는 일 정도로 생각하는데요. 맞는 말인가요?

완화 의료(Palliative Care)란 심각한 질병에 걸린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제공하는 종합 의료를 말합니다. 중증 환자들은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심리적, 정신적, 문화적, 사회적 고통도 겪을 수 있습니다. 완화 의료는 그러한 환자의 증상을 치료하고 구토, 설사 등의 치료 부작용도 치료합니다.

완화 의료가 질병의 진행을 역전시킬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이를 죽음과 연결 지어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완화 치료를 받는 환자가 모두 죽는 것은 아니니까요. 불치병이 아니라도 환자 상태가 심각하다면 완화 의료와 치료를 병행할 수 있습니다. 병의 경과에 따라 어느 한쪽에 더 무게를 실어 진행하되 최대한 균형은 맞추려고 노력하죠.

완치를 목표로 하는 치료만 진행한 경우와 완화 의료를 병행한 경우를 비교한 연구들이 있습니다. 연구 결과를 보면, 완화 의료를 받았던 환자들이 더 오래 살았다고 합니다. 당연한 이치입니다. 완화 의료를 통해 환자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덜 고통받으면 환자의 상태도 달라지니까요.

Q. 국경없는의사회 같은 단체에서 ‘완화 의료’라는 주제가 이제야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국경없는의사회와 같은 단체들은 무력 분쟁, 최전선, 비상사태와 같은 심각한 상황 속에서 일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의료 서비스를 구하느라 이미 사람들이 충분히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의료 서비스를 전혀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죠. 그런 분들에게 고통은 일상입니다.

우리 팀들도 그런 고통을 목격합니다. 사실 치료적 측면에서는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일에 눈감아 버릴 수도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완화 의료는 의료 단체로서 우리가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대응하는 일의 일부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는 일을 계속 개선해야죠. 고통받는 이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지도록 다른 단체들의 참여도 독려해야 합니다. 그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설명해 줘야 합니다. … 하지만 몸이 아픈데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Q. 분쟁이나 비상사태에서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 우선인데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완화 의료를 실시할 수 있을까요?

인도적 지원의 목표는 생명을 살리는 것과 더불어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남수단의 외진 마을에서 한 말기암 환자가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 찾아왔다고 상상해 보세요. 대개 이런 경우라면 환자를 수도의 큰 병원으로 이송합니다. 하지만 수도로 가더라도 병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한 상황이라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환자와 가족들이 겪을 고통을 다 알면서도 그냥 수도의 큰 병원으로 이송해야 할까요?

이럴 때 현지의 우리 병원에서 환자와 가족에게 심리적 지지를 제공하고 고통을 완화시키는 치료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 고통스러운 상황을 모면하려고 환자를 수도로 보내는 일만은 결코 할 수 없습니다.

Q. 완화 의료를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 활동에 포함하기란 어려운 일인가요?

기술적으로는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통 조제실에서 사용하는 기본적이고 저렴한 의약품을 사용하니까요. 오히려 윤리적인 부분이 복잡하죠.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국제 활동가 대다수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완화 의료를 시작하는 데 익숙합니다. 그분들은 다들 유럽이나 북미 출신이니까요. 하지만 우리의 활동 현장에서 완화 의료는 보다 일찍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치료 기술, 직원 역량, 자원 수준이 아무래도 서양 국가들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완화 치료를 더 빨리 시작할 수밖에 없는 거죠. 어려운 일이지만 윤리적으로는 옳은 일입니다. 다른 대안이 없으니까요.

나아가 완화 의료는 기본적으로 팀워크 활동입니다. 환자를 위한 최선의 의사 결정을 내리기 위해 다양한 분야 의료진이 환자 정보를 공유합니다. 의사 혼자 감당하기에는 스트레스가 클 수도 있거든요. 이런 점에서 완화 의료를 시작할 수 있는 특정 시점은 없습니다. 해당 국가와 환자, 병의 종류 등 갖가지 변수를 고려해서 결정을 내리는 거죠.

Q. 완화 의료 부문과 관련해 국경없는의사회의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요?

우선 ‘완화 의료’라는 개념이 우리 의료 활동에 잘 스며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환자를 치료할 다른 해결책이 없을 때, 적어도 완화 의료를 사용하면 우리가 가진 것— 스태프, 의약품 등 —으로 환자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망률을 신경 씁니다. 사망률은 측정하기가 더 쉽거든요. 고통은 측정할 수도 없을뿐더러 이해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생명을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고통을 덜어주는 것도 분명 우리의 임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