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현장소식

[세계 안전한 낙태의 날] “안전한 낙태가 생명을 살린다는 것을 제 눈으로 직접 확인했습니다”

2018.09.28

Aurelie Neyret/The Ink Link/MSF

동부 아프가니스탄에 위치한 코스트(Khost) 병원 산부인과 병동. 일러스트 작가 오렐리 네이렛 (Aurélie Neyret)이 이곳에 머물면서 겪은 일화를 그림으로 그렸다.

마니샤 쿠마르(Manisha Kumar) 박사는 가정의학과 전문의이자 국경없는의사회가 운영하는 ‘안전한 낙태 지원 특별 위원회’(Task Force for Safe Abortion Care)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에서 제공하는 피임 및 안전한 낙태 서비스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 안전한 낙태의 날’(International Safe Abortion Day)을 맞아 쿠마르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국경없는의사회 현장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까지 저는 낙태를 일종의 정치적 이슈 혹은 여성 인권 측면에서 생각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안전한 낙태가 필요한 여성과 소녀들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난 후, 저는 낙태가 의료적 측면에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것이 사람들의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의사들, 낙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을 포함해 미국에 있는 제 친구들, 동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제가 맞닥뜨리는 일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세계 곳곳의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에서 날마다 다루는 일들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미국에서는 낙태가 합법이고 안전하며 최근까지는 미국 전역에서 서비스를 받기가 대체로 용이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소득 국가에서 위험한 낙태를 실시하다가 얻는 합병증이 미국에서 나타나는 경우는 없죠. 그래서 저는 친구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제가 처음으로 해외에서 일했던 곳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안에 있는 작은 나라 레소토였습니다. 거기서 저는 산악 지역에 있는 작은 병원의 산부인과 병동 의사로 일했죠. 어느 날 18세 소녀가 들어왔는데 상태가 매우 위독했습니다. 패혈성 쇼크로 전신이 감염된 상태였고, 고열과 함께 의식이 가물가물했습니다. 검사 결과, 질 안쪽에서 막대기 여러 개와 나뭇잎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집에서 위험한 낙태를 시도하다가 생긴 합병증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는데, 제일 먼저 이를 알아본 건 현지 스태프였고 뒤이어 저도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환자를 치료하려고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정맥 주사로 항생제도 놓고 다량의 수액도 투여했습니다. 여러 날이 지나서야 마침내 소녀는 건강을 회복했지만, 소녀의 머리맡에 앉아 ‘이런 건 다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건데 …’ 하고 안타까워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건강에 아무 문제가 없던 젊은 여성이 한 순간에 이렇게 병원에 입원해 생사를 오갔던 경우를 저는 그때 처음 봤으니까요.

이후 콩고민주공화국으로 첫 국경없는의사회 현장 활동을 나갔을 때는 꽤 큰 프로젝트에서 성 · 생식 보건 활동을 맡았습니다. 병원 산부인과 병동을 관리하면서 전에 레소토에서 만났던 소녀만큼 아픈 여성들과 소녀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그런 환자가 매우 많았습니다. 다들 위험한 낙태로 합병증을 얻은 여성들이었죠.

그 프로젝트에서는 해마다 낙태 합병증으로 800명의 여성들이 입원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저는 이 문제가 모든 여성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소녀, 중년 여성, 미혼 · 기혼 여성, 아이가 많은 여성, 아이가 둘인 여성, 아이가 없는 여성까지 모든 여성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분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었는데, 다들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상황에 안전하게 대처할 방법이 없어 최후의 방법으로 위험한 수단을 찾았습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이자 국경없는의사회가 운영하는 ‘안전한 낙태 지원 특별 위원회’(Task Force for Safe Abortion Care) 코디네이터 니샤 쿠마르(Manisha Kumar) 박사

이 여성 분들은 마치 그림자 속에 가려져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분명 직원들에게 치료를 받고 있는데, 그 누구도 이에 관해서 얘기하지 않았고, 이 분들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아프게 됐는지 생각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위험한 낙태와 관련해 우리가 치료하는 환자 수를 보고 솔직히 저는 충격을 받았는데요. 콩고 현지 스태프 대부분은 그런 분들을 대하는 데 이미 익숙해진 모양이었습니다. 이미 그 병원에서는 일상적인 활동이 되어 버린 거죠. 하지만 조금만 더 파고들어 콩고 현지 스태프에서 이것저것 물어보면, 다들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다들 위험한 낙태로 합병증을 얻었던 여성들을 곁에서 보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런 환자들 중에는  결국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많았죠. 잘 자라고 있던 여동생의 이야기, 이웃의 이야기, 간호학교를 함께 다니던 학우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심지어 한 직원은 위험한 낙태로 목숨을 잃은 자신의 딸 이야기를 들려 주기도 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수많은 여성들과 소녀들의 고통에 새롭게 눈을 떴습니다. 그 전까지 저는 그런 세계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습니다. 갑자기 그런 일을 맞닥뜨리게 된 거죠. 그런 분들이 제 환자들이었으니까요.

미국 집에 돌아와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줄 때 제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여성들이 위험한 낙태를 하지 않게 된 것이 불과 한두 세대밖에 안 되었다는 거죠. 60년대 · 70년대 그러니까 미국에서 낙태가 합법화되기 전에 활동하셨던 의사들을 만나서 얘길 나눈 적이 있어요. 그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때도 똑같았다고 하더라고요. 패혈성 낙태로 누워 있는 여성들이 병동에 가득했고, 제가 콩고에서 보고 있는 그런 합병증으로 고통받고 출혈을 하는 여성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국경없는의사회를 통해 사람들에게 안전한 낙태 서비스, 위험한 낙태로 인한 질병 치료, 피임 지원을 한다는 게 너무 자랑스러워요. 여성들과 소녀들에게 꼭 필요한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해 하루하루 제 앞에 놓인 싸움에 임한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산모들의 사망과 고통을 예방하고 있는 거니까요.

사람들은 ‘국경없는의사회’ 하면 전쟁 때 중대한 의료 활동을 하는 기관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외상 수술이라든지 전쟁 부상 치료와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런 활동들도 분명 중요하죠. 하지만 저는 우리 팀들이 현장에서 안전한 낙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하고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일 자체가 위험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안전한 낙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도 다른 모든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과 같은 비중을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제 두 눈으로 직접 본 일들을 통해 저는 안전한 낙태 서비스가 여성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