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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드 호: 국경없는의사회 심리학자가 전하는 환자 이야기

2018.08.03

카메룬, 차드, 니제르, 나이지리아에 걸쳐 있는 차드 호 지역에서 비정부 무장 단체들과 정부군 사이의 격렬한 분쟁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은 약 1700만 명에 달한다. 230만여 명은 살던 곳을 떠나 현재 피난 중이다. 차드 호 분쟁은 피난민, 그리고 아직도 폭력의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정신건강에 특히나 해로운 영향을 끼쳤다. 이곳 분쟁이 시작된 이후로 국경없는의사회는 날이 갈수록 정신건강 분야에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폭력이 줄어든 곳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피난과 절망감으로 인해 만성적인 정신건강 문제를 겪을 수 있다.

아래 내용은 차드 호 지역에서도 니제르 디파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심리학자가 전한 환자의 이야기다.

국경없는의사회 지원 보건소에서 정신건강 진료를 받은 야가나

3월 어느 날 아침, 나는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원하는 킨찬디 보건소로 들어오면서 대기실에서 한 여성이 유독 다른 환자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있던 그 여성의 얼굴에는 슬픔과 분노가 함께 묻어났다.

그녀에게 다가가 정신건강 진료실로 들어가자고 말했다. 그곳은 사적인 공간으로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곳이었다. 우선 내가 누구인지 설명한 뒤 우리 대화는 비밀로 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이 말을 해주면 사람들이 마음을 놓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름은 야가나*이다. 야가나가 처음 꺼낸 이야기를 들어보니 역시 그녀에게 다가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가나는 요새 기분이 별로 좋지 않고 기운도 없다고 말했다. 심장도 안 좋다면서, 심장이 너무 빨리 뛴다고 했다. 몸에 통증도 있었다. 야가나는 온몸이 아프다고 했다. 육체 노동으로 인한 피로는 아니었다. 야가나는 마지막으로 몸을 써서 일했던 것이 언제인지 기억하지 못했다. 아마 7개월쯤 된 것 같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야가나가 겪고 있는 불안이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야가나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꾸 악몽을 꾼다고 했다. 사실 보건소에 찾아온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잠을 푹 자게 해줄 약을 타 가려던 것이었다. 아이들도 돌보고 집안일도 하려면 힘이 필요한데, 야가나는 지금 자신에게 아무 힘도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야가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알아내려고 이것저것 물어보니, 드디어 그녀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야가나는 21살이고 나이지리아에서 왔다. 남편은 전에 상인이자 목축업자였다. 야가나 부부는 소를 많이 기르며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무장 남성들이 야가나 마을에 쳐들어왔다.

물건, 돈, 소들 … 그들은 모든 것을 빼앗고는 야가나 가족을 마을 밖으로 몰아냈다. 야가나 가족이 이곳 킨찬디에 들어온 것도 그런 이유였다. 킨찬디로 올 때 타고 온 차 덕분에 야가나의 남편은 택시 운전사로 일하며 적게나마 소득을 얻었다. 하지만 그의 또 다른 부인 2명과 자녀들까지 모두를 먹여 살리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음식은 늘 부족했다.

야가나는 암울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살해당한 삼촌, 붙잡혀 가서 소식을 알 수 없는 형제, 3개월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곤 했다. 야가나의 아버지는 고향에서 폭력이 일어나 집을 떠나기 전까지 그녀가 살았던 삶을 간직한 소수의 사람 중 하나였다.

나는 야가나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기만 했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한다.

야가나는 킨찬디에 처음 도착했을 때만 해도 평화를 찾았었다고 한다. 그러나 치안 불안이 계속되고 킨찬디에서도 전투가 벌어지면서 두려움이 생겼다. 비닐봉지가 터지는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야가나는 거의 먹지 않는데도 허기를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악몽도 여전하다고 했다. 밤에 눈을 감으면 계속 꿈에 무장 남성들과 그림자들이 쫓아와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했다. 야가나를 가장 지치게 하는 건 분명 이것이었다.

이런 환경 속에 지내면서 야가나는 과연 자신이 왜 사는지 스스로 묻는다고 했다. 언젠가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은 모두 사라졌다. 야가나는 자신의 기분을 정확히 나타낼 단어가 하나 있다고 말했다. 바로 ‘절망’이었다.

첫 만남을 마치면서 나는 야가나에게 다시 한번 만나자고 했다.

세 번째 시간에는 우리 심리학자들이 소위 ‘인지행동치료’라 부르는 것을 했다. 나는 이 시간을 통해 야가나와 함께 긴장을 이완시키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심호흡과 시각화 운동도 해 보았다. 그리고 죄책감을 내려놓는 연습을 통해 야가나의 자신감을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이곳에서 우리가 만나는 환자들 대다수는 죄책감에 짓눌려 있다.

야가나는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또래의 다른 여성들이 함께 모이는 지지 그룹에도 참여했다.

최근 들어 야가나는 밤에 좀더 편안해졌고 식욕도 되찾았다고 했다. 작게나마 장사를 시작해서 향신료 같은 것들을 팔아볼까 한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나는 가만히 미소 지었다.

* 환자의 이름은 가명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차드 호 활동

국경없는의사회는 2009년 나이지리아 분쟁이 시작된 이후 차드 호 지역에서 활동했고, 2014년 들어 분쟁이 확산되자 주변국 여러 지역에서도 지원 활동을 이어 나갔다. 2017년 한 해 동안 국경없는의사회는 차드 호 지역에서 약 25개 프로젝트를 운영했고 이곳에서 의사, 간호사, 심리학자, 상담가 등 국경없는의사회 직원 – 국제 스태프 150여 명, 현지 스태프 2000여 명 – 들이 활동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나이지리아 북동부에서 40만 회, 디파 지역에서 30만 회, 카메룬 북부에서 82,000회의 외래진료를 실시했다. 아직도 수많은 이들이 나이지리아 여러 캠프 등 치안이 불안한 임시 거처에 머물고 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이동하거나 나름의 방법으로 상황에 대처할 수도 없다. 한편, 치안 문제로 국경없는의사회가 진입할 수 없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