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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땀과 피로 얼룩진 15시간, 박선영 구호활동가가 전한 야전병원에서의 하루

2018.07.20

Laurence Geai

2018년 5월 14일, 예루살렘으로 이전한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관의 개관에 반대하며 가자지구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이날 유감스럽게도 팔레스타인인 52명이 숨졌고, 무려 2410명에 가까운 수가 부상을 입었다. 

3월 30일 ‘귀환의 행진’이라는 이름으로 가자에서 시작된 대규모 시위는 6월 5일까지 이어졌다. 이스라엘에서는 6월 5일을 ‘예루살렘의 통일’의 날로, 팔레스타인에서는 ‘예루살렘의 합병’이라는 이름으로 이날을 기념하는데 이는 1967년 일을 토대로 한 것이다. 최근 시위 중 무장을 하지 않은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부상을 입었는데, 다수가 실탄에 맞으면서 이스라엘 군의 과도한 무기 사용에 대한 우려가 생겨났다. 현재 가자 보건당국은 대규모 부상자에 대응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수년간의 봉쇄와 내부 분열, 고질적인 에너지 위기로 기반시설들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보고에 따르면 ‘귀환의 행진’ 이후로 128명이 숨지고 1만3375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부상자 중 3664명은 이스라엘과 가자를 나누는 장벽 근처에서 이스라엘 군이 쏜 총에 맞았다. 아래는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박선영 구호활동가의 5월 15일 일기를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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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 알 아크사 (Al-Aqsa) 병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Gaza Strip)에 가지 않겠느냐는 ‘긴급 미션’을 제안받은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5월 8일, 나는 수술장 간호사로 가자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팀에 합류했다. 남수단, 요르단에 이어 나의 세 번째 현장 활동이다. 그중 잊히지 않는 날이 있다. 그날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5월 14일,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이 예루살렘으로 자리를 옮긴 날이었다. 

그날 나는 알 아크사(Al-Aqsa) 병원에 있었는데 우리는 혈관외과의, 외상외과의, 마취과의 그리고 내가 한 팀을 이루고 있었다. 동료들은 그날 시위가 클 거라고 했다.

아침에 정규 수술을 마치고 나니, 오전 10시쯤 되었다. TV를 보니까 시위가 시작되었다. 병원이 국경 근처에 있는데, 하필 거기서 시위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한두 명 정도 병원으로 오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병원에 오는 환자가 서너 명으로 늘어나더니 계속 몰려들기 시작했다. 환자 11명이 온 것을 확인하고 나니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Aurelie Baumel/MSF

귀환의 행진으로 부상을 입은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수술팀. 가운데 초록색 수술복을 입은 의료진이 박선영 구호활동가 

잠깐 커피 한잔을 하고 나서 오전 11시 반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수술이 이어졌다. 너무 바빠서 오후 5시까지는 수술장 안에 갇혀있었다. 지원 팀이 오고 나서야 수술장을 나와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저녁을 먹고 30분 정도 쉬고 들어와서는 다시 새벽까지 수술이 이어졌다.

감염 관리를 위해 원래 한 수술장 안에서는 한 명만 수술한다. 수술방이 총 4개인데, 그날은 응급 환자들이 몰려와서 수술 공간이 부족했다. 결국 마취과의가 이동 가능한 마취기구를 들고 와서 한 방에 두 명씩 동시에 수술이 진행되었다. 그날은 부상을 입은 환자가 그대로 들어와서 흙 묻은 옷이나 신발도 수술장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수술실에 들어온 응급 환자를 정신없이 닥치는 대로 치료했다.

다들 땀범벅이 되고, 나는 신발 커버 한쪽이 벗겨지는 것도 몰랐다. 내 신발은 피범벅이 되었다. 

외과의들은 침착한 사람들이었는데, 응급 환자가 너무 많이 들어오니까 그날은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고 의견도 분분했다. 

Aurelie Baumel/MSF

수술장 간호사 국경없는의사회 박선영 구호활동가가 팔레스타인 알 아크샤 병원에서 귀환의 행진으로 부상을 입은 환자의 수술을 준비하고 있다.

대부분의 환자는 다리 아래쪽에 부상을 입고 왔다. 총알이 박히면서 파편들이 깨져 조직 손상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총알이 빠져나간 자리가 손상된 데다가 다른 조직 손상까지 덧입혀져 수술 부위를 크게 열어야 했다. 이렇게 수술한 환자들의 경우 다수는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총에 맞은 부위는 다리뿐만이 아니었다. 배나 가슴에도 총을 맞고 실려 왔다. 나는 계속 수술실에 있어서 바깥 상황을 알지 못했다. 밖에서는 심폐소생술이 이루어지고 소리 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렸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우리 팀은 그날 하루에만 17건의 수술을 했다. 나는 지원 팀이 와서 쉴 수 있었지만, 외과의들은 그렇게 이틀을 더 일했다. ‘야전병원이 이런 곳이구나!’ 그날 처음 알았다. 일단 우리는 사람을 살리는 게 우선이니까.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 했다. 우리 팀 그 누구도 업무 강도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것(응급 상황) 때문에 온 거니까’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몸은 힘들지만 정말 보람차게 일했다. 

그날 수술을 모두 마치고 나니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몸에 힘이 빠지고 기운이 없었다. 병실에서 잠깐 쉬고 있었는데, 내가 어시스트 했던 영국인 의사가 다가와 고맙다면서 수고했다고 안아주었다. 그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보람과 진한 전우애가 느껴졌다. 

“I should give you a big hug, well done. We did it.
(꼭 안아줘야 할 것 같아. 정말 잘했어. 우리가 해냈어)”

 

박선영 구호활동가의 일기장

국경없는의사회에서는 팔레스타인 가자지역 시위에 대한 이스라엘의 유혈 진압으로 발생하는 총상 부상자들에 대해 긴급으로 수술팀 위주의 의료진을 구성하였다. 긴급 임무에 자원하여 구성된 국제의료진의 모습.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팔레스타인 긴급 수술팀에서 활동하는 국제의료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