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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북부에서 정신건강 지원 … 낙인에 맞서며 에리트레아 난민에게 치료 제공

2018.07.13

에티오피아 북부의 히트사츠(Hitsats) 난민캠프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건강 센터의 작은 상담실 한 곳에 에프라임이 와 있다. 반사막 지역 특유의 고온건조한 날씨도 시원한 우기에 잠시 자리를 내주었다. 열대성 뇌우가 요란하게 일어나고, 금속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귀를 찌르는 듯하다. 소음 때문에 또렷하게 들리지는 않지만 에프라임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그의 눈빛은 뚜렷하고 단호해 보인다.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상세히 풀어내면서도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치료 과정에서 중요한 단계다.

“9학년 공부를 하던 중이었어요. 곧 군에 가야 한다는 걸 알게 됐죠. 주변을 보면 군 생활이 영영 끝나지 않는 사람도 있고, 군에 있는 동안 아무것도 못 받아요. 저는 그 길에 미래가 없다는 걸 분명히 알았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일, 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선택해서 식구들을 챙길 수 있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많은 에리트레아 사람들처럼 떠나기로 결심했죠.”

올해 에프라임의 나이가 17살인데, 처음 에리트레아를 떠날 당시 그는 고작 14살 된 소년이었다.

매월 약 5000명이 에리트레아를 탈출하는데 그들 중 다수가 에프라임 같은 십대 청소년이다. 압제적인 에리트레아 정권은 모든 국민에게 무기한 군 복무를 부과했다. 기본 인권을 짓밟는 이 같은 조치는 사람들이 에리트레아를 떠나는 주된 이유다. 에리트레아에 남기로 결정한 사람들에게도 ‘선택’의 대가가 한다. 체제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임의적 구금, 폭력, 위협을 가한다고 알려져 있다.[1]

아푸(49)와 아들 에프라임(17). 에리트레아 출신인 두 사람은 티그라이 지역의 난민캠프에서 국경없는의사회가 진행하는 정신건강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 Gabriele François Casini/MSF

에프라임은 혹독한 어려움을 많이 겪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이야기가 독특한 것은 아니다. 다른 수많은 에리트레아 사람들도 비슷한 고난을 겪었다. 이 같은 경험은 신체적 문제로 일으키지만, 이로 인한 정신적 문제는 정확히 규명해 치료하기가 훨씬 어렵고 여기에는 파괴적 영향도 따른다. 에리트레아 난민들에게 포괄적 의료를 지원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2015년 국경없는의사회는 에티오피아 북부 히트사츠 · 시멜바 난민캠프에서 정신건강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매월 약 2300명의 난민들이 새로 들어오는 이곳 캠프들은 에리트레아를 떠난 사람들이 처음 도착하는 장소들 중 하나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상담, 입원 · 외래 정신과 진료, 토론 · 심리교육 등 각종 치료 활동을 진행한다. 치료 활동을 통해 환자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것을 논의하고, 자신들의 상태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전해 들으며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도 배운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소외감을 덜 느낀다.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대다수 상황에서 그렇듯 아동은 가장 취약한 계층에 속한다. 히트사츠 캠프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건강 자문 로벨 아라야(Robel Araya)는 이렇게 말했다.

“캠프에 있는 사람의 약 40%가 18세 미만입니다. 그중 절반은 혼자 이동 중이거나 가족과 떨어져 있습니다. 그들이 처한 상황은 매우 복잡합니다. 분리 불안으로 괴로워하는 청소년들이 많고, 어떤 경우에는 이른 성 경험으로 혼란스러워합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그런 청소년들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포츠, 그림 그리기, 역할극을 하기도 하고, 특수 상담도 실시합니다.”

히트사츠 캠프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건강팀. 지도·감독 담당자, 상담가, 유급 자원봉사자 등으로 구성된 이 팀은 주간 회의를 통해 난민, 지역민과 일하며 겪는 주된 어려움과 이슈를 서로 논의한다. ⓒGabriele François Casini/MSF

캠프에 있는 사람들은 금세 떠난다. 에티오피아 난민캠프에 들어온 에리트레아 난민의 약 80%는 이후 12개월 안에 수단, 리비아를 거쳐 지중해 중부 루트를 따라 이동한다. 캠프의 열악한 생활 환경, 어두운 미래 전망, 타 국가에 있는 가족들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 아직 어린 나이 등 여러 요인들이 또 다른 이동을 하게끔 만든다.

“꾸준히 지역사회에 나가 활동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일부 오래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여비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편, 떠나려고 했는데 수단이나 리비아에서 붙잡혀 끔찍한 일을 겪고 나서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은 충격에 빠진 채 에티오피아로 되돌아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건강 자문 로벨 아라야(Robel Araya)

팀들이 느끼는 주된 어려움 중 하나는 지원을 받도록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이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약하다’ 혹은 ‘제 정신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을까 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로벨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난민들과 정신건강에 대해 얘기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난민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 중에서 ‘지역사회 정신건강 단원’을 뽑기로 했죠. 이를 통해 난민들을 찾아다니면서 그들 눈높이에서 인식을 개선하고, 교육도 진행하고, 정신건강에 대한 낙인도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날마다 단원들은 난민들의 거처를 일일이 방문해 정신건강 문제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치료는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도움을 구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등을 자세히 설명한다. 온 가족이 모여 있을 때 설명을 하기도 하고, 난민들의 모국어로 설명을 진행하기도 한다. 로벨을 이렇게 설명했다.

“현재 매우 의욕적인 단원 26명으로 구성된 팀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들 중 다수가 우리 환자들이었는데요. 자신들이 직접 경험한 것들이 상담과 치료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에리트레아 사람이기 때문에 캠프의 다른 이들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돕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그러한 헌신이 나오는 것입니다.”

히트사츠 캠프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건강팀. 지도·감독 담당자, 상담가, 유급 자원봉사자 등으로 구성된 이 팀은 주간 회의를 통해 난민, 지역민과 일하며 겪는 주된 어려움과 이슈를 서로 논의한다. 좀더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키기 위해 대부분의 정신건강 그룹 활동 시에는 에리트레아의 전통 커피 나눔을 함께한다. ⓒGabriele François Casini/MSF

히트사츠 캠프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정신건강팀. 지도·감독 담당자, 상담가, 유급 자원봉사자 등으로 구성된 이 팀은 주간 회의를 통해 난민, 지역민과 일하며 겪는 주된 어려움과 이슈를 서로 논의한다.  ⓒGabriele François Casini/MSF

 

히트사치 · 쉬멜바 난민캠프는 각각 1만 명, 6천만 명이 머물고 있다. 그곳에서 국경없는의사회는 해마다 2,800회의 개인 상담과 3,600회의 정신과 진료를 제공한다. 정신건강 활동과 더불어 국경없는의사회는 1차 · 2차 의료 서비스도 제공한다. 에티오피아 정부 산하 난민 · 귀환민 담당청(ARRA)과 파트너십을 맺고 히트사츠 난민캠프에서 연중무휴로 입원환자 진료를 제공하고 있으며, 인근에 위치한 쉬레 병원까지 응급 환자를 이송하고, 생식 보건에 관한 인식을 제고하고, 지역사회 수준에서 HIV 예방 활동도 진행한다.

 

[1] 에리트레아 상황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국경없는의사회 보고서 “<죽을 힘을 다해 유럽으로: 안전을 찾아 나서는 에리트레아인들>(Dying to Reach Europe: Eritreans in Search of Safety)”을 참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