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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캠프 18에서의 삶 – 로힝야 난민에게 직접 듣는 이야기

2018.07.06

방글라데시 캠프 지도 (MSF OPD: 국경없는의사회 외래 진료소 / Camp office: 캠프 사무소) ⓒ Brigitte Breuillac / Médecins Sans Frontières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로힝야족 하시나, 파티마, 모하메드는 방글라데시에 살고 있다. 세 사람은 서로를 모르지만 모두 같은 운명에 처해 있다. 지난해 미얀마를 탈출해야만 했던 수십만 명의 로힝야족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세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은 가족들과 함께 캠프 18에서 산다는 것이다. 아래 내용은 하시나, 파티마, 모하메드가 직접 전한 이야기다.

도시들이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있듯이 쿠투팔롱-발루크할리 메가 캠프도 여러 캠프들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도 계속 확장되고 있는 이곳에는 현재 총 22개 캠프가 있다. 2017년 8월 미얀마 폭력사태를 피해 쿠투팔롱-발루크할리 캠프로 피신한 62만 명의 로힝야 난민은 콕스 바자르 언덕 지대에 거처를 마련했다. 캠프 북쪽에서 남쪽까지 뻗어 있는 도로는 사람들의 이동을 돕고,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언덕 곳곳에 구호품을 전달할 때도 매우 유용하다.

이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쿠투팔롱-발루크할리 남서쪽에 위치한 캠프 18을 만난다. 이 캠프는 과밀한 캠프 동쪽의 부담을 해소하고자 로힝야 난민들을 이주시킨 곳이라는 점에서 다른 캠프들과 구별된다. 그 외에 가파른 길 사이로 빽빽하게 들어선 거처의 모습은 다른 캠프들과 비슷하다. 캠프 18에는 로힝야족 6500가구, 약 2만9300여 명이 살고 있다. 가장으로서 식구들을 챙기고 있는 하시나, 파티마, 모하메드도 캠프 18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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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나(35세) 

하시나는 미얀마에서 남편이 살해당한 뒤 자녀 5명(아들 2, 딸 3)을 데리고 미얀마에서 도망쳐 나왔다.

하시나가 콕스 바자르에 온 것은 2017년 10월이었다. 근처에 사는 친척들이 때때로 하시나를 도와주지만, 그럼에도 하루하루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우선, 가장 가까운 급수처에서는 지금 물이 나오지 않아 다른 지역으로 가서 물을 구해 와야 한다. 요리를 하려면 장작도 있어야 하는데,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숲에 가서 나무를 구해 오라고 하기에는 두려움이 앞선다. 인근에는 더 이상 남아 있는 나무가 없기 때문에 3시간은 걸어가야 나무를 발견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다른 캠프에 있는 몇몇 로힝야족은 운 좋게도 작은 가스 난로를 제공받았다.

몬순(장마철)이 시작되면 하시나는 더 많은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폭우와 강풍이 몰아닥치면 하시나 가족이 머무는 집이 과연 버텨낼 수 있을지 우려된다. 다른 가족들의 집처럼 하시나의 거처도 대나무 막대를 흙 속에 세우고 얇은 대나무 줄기를 엮어 벽을 만든 허술한 구조물이다. 전체 구조물 위에는 비닐을 씌웠다.

비닐 지붕이 날아가는 것을 막으려고 무거운 것을 올려둔 집들이 많다. 주로 가방에 흙을 가득 담아서 올려둔다. 모든 거처들은 이 같은 방식으로 대나무를 사용해 지었다. 로힝야족은 구호 활동가들이 제공한 재료를 가지고 직접 거처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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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마 / 자녀 4명의 어머니

남편이 없는 파티마는 혼자 거처를 짓기 어려워 마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마지는 파티마가 있는 구역을 담당하는 로힝야족 대표다. 마지가 보낸 자원봉사자들이 파티마의 집을 함께 지어 주었다.

과밀한 캠프 16에서 지내던 파티마 카툰은 서쪽에 위치한 캠프 18로 이주되었다. 파티마처럼 캠프 18에 온 사람들에게는 건축 재료, 조립 설명서가 들어 있는 키트가 제공되었다.

파티마는 3살, 7살, 9살, 11살인 자녀 4명을 데리고 2017년 10월 방글라데시로 피신했다. 미얀마 탈출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도 파티마는 로힝야족에게 강제 노동을 시키려는 당국을 피해 미얀마를 떠난 적이 있다. 

직접 거처를 지을 수 있도록 로힝야족에게는 건축 재료, 조립 설명서가 들어 있는 키트가 제공된다. ⓒBrigitte Breuillac/MSF

그렇게 방글라데시 캠프에서 2년을 보냈던 파티마는 다시 살던 마을로 돌아갔지만, 파티마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다 무너진 집뿐이었다. 작년에 식구들과 함께 새 집을 지었지만 안타깝게도 또 다시 미얀마를 떠나야 했다. 미얀마에 머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로힝야 난민들에게 또 하나 다행스러운 점은 캠프에 의료 시설이 많다는 것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병원 5곳, 보건지소 10곳, 보건소 3곳을 열어 캠프 곳곳에서 24시간 의료를 제공한다. 파티마는 아들이 아팠을 때 캠프 18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로 아들을 데려가 진찰을 받게 했다. 아들의 병명은 유행성 이하선염(볼거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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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메드(45세) 

난민들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은 대부분 지원되지만 때로는 구호품 배급이 불충분할 때도 있다. 일용직을 구할 수 있는 로힝야족은 조금이나마 자신의 힘으로 삶을 꾸려 나간다. 모하메드 엘레야스도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모하메드는 지난해 아들 1명이 실종된 후 미얀마에서 탈출했다.

주기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 모하메드는 전화기도 하나 마련해서 때때로 친형제와 통화도 한다. 미얀마에 있을 때 모하메드는 식료품 상점을 운영했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군인들이 가게를 다 불태웠고, 살던 집마저 잿더미로 변했다.

캠프18에서 모하메드가 사는 거처는 분명 예전 집만 못하다. 부엌에는 흙바닥에다 진흙으로 화덕을 만들었고, 방 2개를 꾸며주는 장식품은 기도 매트뿐이다. 하지만 근처에 급수처가 있다는 것은 매우 편리한 점이다. 최근 마련된 캠프에 사는 로힝야 가족들은 그렇게 운이 좋지 않다. 캠프 20까지 이어지는 서쪽 지역은 우물이며 화장실이 별로 없는데다가 거리도 매우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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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투팔롱 메가 캠프의 전경 ⓒ Pablo Tosco/Angular

쿠투팔롱-발루크할리 캠프에 찾아온 몬순(장마철) ⓒMSF

캠프 20은 최근 마련한 캠프 중 1곳이다. 과밀한 지역 혹은 산사태, 범람의 위험이 있는 지역에 있던 로힝야족은 새로 마련된 캠프로 이주되었다. ⓒ Brigitte Breuillac/MSF

캠프 18의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캠프 18 진료소에서 하루 평균 150회의 진료를 실시한다. 쿠투팔롱-발루크할리 메가 캠프 어디서나 그렇듯이 이곳에서도 설사, 호흡기 질환, 피부 감염이 가장 흔하게 나타난다. 환자 치료, 식량 및 필수품(모기장 • 들통 등) 배급, 물 공급을 위한 우물 설치 등등 … 현재 전 세계 최대 난민캠프인 쿠투팔롱-발루크할리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인도적 구호 지원이 진행되고 있다. ⓒ Brigitte Breuillac/MS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