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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난민의날: 삶과 죽음 사이… 경계를 탈출하는 지중해 난민들

2018.06.20

2018년 6월 20일

이탈리아 카타니아

 

이탈리아 시칠리아는 한국의 4분의1 정도 되는 지중해 섬이다. 영화 ‘일 포스티노(Il postino, 1994)’의 배경으로 유명한 곳. 가장 큰 도시 팔레르모부터 영화 ‘시네마 천국’의 체팔루, 유적지 시라쿠사 등 여행 코스로 많이 알려져 있다 보니 시칠리아로 출장 간다는 소식에 지인들이 의아해 했다.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일하는 사람이 시칠리아로 갈 일이 뭐가 있을까’ 할 정도로 이 섬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른 일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목적지는 섬 동쪽 해안에 있는 ‘카타니아’라는 도시였다. 에트나 화산으로 유명하기도 하고 오페라의 거장, 벨리니의 고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시내 중심에는 벨리니 광장이 있고 그 옆 벨리니 극장에서 연중 내내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들의 공연이 펼쳐진다. 이 곳을 중심으로 오래된 바로크 성당과 13세기에 지어진 성곽 등이 주변에 즐비하다.

도착 며칠 전, 지중해에서 구조된 난민 69명이 카타니아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국경없는의사회와 SOS메디테라네가 공동으로 운항하는 구조선 ‘아쿠아리우스’가 입항한 곳이 바로 카타니아 항구다. 시내에 있는 벨리니 광장에서 도보로 불과 10분 거리. 몇 걸음을 사이에 두고 관광객과 난민이 공존한다.

카타니아 항구에 정박해 있는 이탈리아 해안경비대 선박. ⓒ이주사랑/MSF

항구는 휑했다. 이탈리아 해안경비대 사무실이 한 켠에 자리잡고 있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커피숍이 두어 군데 정도 있었다. 왼편 저 멀리 부두에 천막이 몇 개 보였다. 지금은 텅 비어 있다. 천천히 걸어 천막으로 가 보니 ‘이탈리아 내무부’라는 표시가 있다. 난민들이 도착하면 가장 먼저 몸을 쉬일 수 있는 ‘안전한’ 육지다.

천막에서 부둣가를 따라 조금 더 바다 쪽으로 가보니 이탈리아 해안경비대 선박이 정박해 있다. 군데군데 앉아 낚시를 즐기는 시민들도 보였다.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구조선이 도착하고, 난민들을 내리고, 사람들을 천막으로 안내하고, 환자들을 가려내고, 구호 물품을 전하는 모습을 눈 앞에 그려봤다. 죽음의 문턱에서 구조된 사람들에게 이 곳은 얼마나 천국처럼 느껴질 지.

국경없는의사회 난민 회복 센터에는 청소년들도 있다. 소말리아에서 온 청소년을 진찰하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의사. ⓒ이주사랑/MSF

항구에 도착한 난민들은 천막에서 대기하다 이탈리아 정부에서 운영하는 환영 센터(Reception Center) 또는 국립 병원으로 향하게 된다. 많이 아픈 사람은 병원으로, 그렇지 않다면 환영 센터로 분류해 보낸다. 문제는 환자들이 몰리게 될 경우 병원에서 모두를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병원은 트리아지(triage)라고 불리는 환자 분류 시스템을 통해 치료 및 입원과 퇴원의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상태의 심각한 정도에 따른 분류다.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한 생명을 살리기 위함이다. 이런 상황에선 아직 치료가 끝나지도 않은 환자들을 부득이하게 우선 퇴원시켜버린다거나, 치료가 필요한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일단 환영 센터로 보내버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국경없는의사회(MSF)가 개입하는 시점은 바로 이 지점, ‘병원과 환영센터 사이’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될 환자들을 MSF 난민 회복 센터로 수용해 돕는다. 센터 입주자들은 주로 전염성이 없는 결핵 환자, 총상 또는 기타 외과 치료가 필요한 환자, 고위험 산모 등이다. 그리고 대부분 폭력과 학대나 고문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아이들도 있고 이산가족도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이들의 몸을 치료하는 일은 물론, 마음의 치료(정신 건강 관련)를 비롯해 입원 및 퇴원 관리 등을 제공한다.

리비아 연안의 수색 · 구조 지대를 출발해 이틀을 이동한 끝에 드디어 사람들은 이탈리아의 시칠리아를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국경없는의사회 구조선 보스 프루던스 호는 2017년 6월 8일과 9일, 이틀 사이에 아동 52명을 포함해 총 726명을 지중해에서 구조했다. ⓒAndrew McConnell/Panos Pictures

병원에서도, 환영센터서도 받아주지 않는 난민들. 사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고향에 남거나 돌아갈 수도 없고 새로운 곳에서도 환영 받지 못해 ‘국경 사이에 끼어버린’ 난민들의 현실이다. 하지만 애초에 그들은 왜 떠나야 했을까? 위협을 느껴서? 돈이 없어서? 돈 벌려고? 힘들어서? 물론 모두 해당됐지만 난민들을 만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살려고”였다.

많은 아프리카 난민의 경우 대륙 최북단에 있는 리비아를 통해 이탈리아로 오게 되는데, 이들의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가나 출신의 A라는 난민은 자리에 앉자마자 “외국인이든 누구든 아무도 리비아에 가면 안 된다”는 경고로 말문을 열었다. A는 다리에 총 두 발을 맞고 폭행 당해 다리가 문드러졌다. 지내던 집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도둑이 들었는데, 줄 게 없다고 하니 총을 쏘고 구타한 뒤 달아났다고 한다.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임신한 아내와 새로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라도 지중해 행을 강행할 수 밖에 없었다. 아내는 여기 카타니아에서 곧 출산을 앞두고 있다.

가나 출신 난민 A씨. 리비아에서 지내던 숙소에 강도가 들어 다리에 총을 맞고 구타 당했다. 수술 후 외고정 장치를 박아놓은 상태. 국경없는의사회 센터에서 수술 후 치료를 받고 있다. ⓒ이주사랑/MSF

또 다른 나이지리아 출신 B는 “(무서워서) 길을 마음 편히 걸을 수 조차 없다”고 말했다. 언제 차가 와서 사람을 납치할 지, 언제 누가 와서 총을 쏠 지, 돈을 빼앗을 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B도 다리에 총을 맞은 환자였는데, 길을 걷다가 도둑을 만나서 그렇게 됐다. B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놀라웠던 건 그가 무덤덤하게 “오히려 다리에 (총을) 맞아서 다행”이라고 했을 때다. 길에 숨어 구걸하면서 하루에도 몇 명씩 총을 맞고 즉사하는 사람들을 봤는데, “가슴이 아니라 다리에 쏴서 고맙기까지 하다”는 그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국경없는의사회 동료 스태프들이 항구에서 만나는 난민들의 상태도 심각한 경우가 많다. 최근 들어온 에리트리아 출신 난민 그룹이 있었는데, 다들 성인 영양실조를 겪고 있었다고 했다. 심각한 경우 성인 남성 몸무게가 40kg밖에 되질 않았다고. 두 발로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는 그 사람들을 보며 동료는 “죽음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16년 10월 24일. 트라파니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의사회 팀이 심리적 응급 처치를 실시하고 있다. 이날 트라파니 항에는 다양한 국적의 이주민 548명이 내렸다. 이들 중 몇몇은 지중해를 건너던 중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서 숨지는 것을 목격했다. ⓒAlessandro Penso/MAPS

튀니지 출신의 C는 “삶에 대한 희망이 있었더라면 왜 다른 곳으로 가겠느냐”고 물었다. 6시간 동안 트럭 바퀴 사이에 매달려 이탈리아로 들어온 C는 사고로 다리를 잃어 의족을 차고 있다. 다치기 전까진 카타니아서 트럭 운전을 하며 작은 수입을 올렸다. 수입 중 매달 50유로(한화 7만원)를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왔다. 73세 노모와 병든 동생이 한 달 동안 집세를 내고 음식을 먹고 기타 필요한 것들을 충족시킬 만한 금액이다. 국경없는의사회 센터에서 재활 치료를 받고 있는 C는 이탈리아어를 배워 소통이 가능하고 여기서 친구들도 사귀었다. “이 나라에서 삶에 대한 희망이 보이는데 왜 위험을 감수하고 다른 나라로 가야 하나?” C가 또 한번 물었다. 어렵게 찾은 안전한 삶. 절대 놓치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이 느껴졌다.

이주사랑 /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커뮤니케이션국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