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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그 날을 기억하며

2018.04.06

24년 전인 1994년 4월 7일, 르완다에서 활동하던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은 도시가 폭력에 휘말리는 현장을 목격했다. ‘르완다 대학살’로 알려진 사건이 이제 막 벌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국경없는의사회 직원을 포함해 1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르완다를 집어삼킨 위기는 국경 너머까지 흘러들어 갔다.

르완다에서 일어난 비극을 목격하고 이를 견뎌낸 사람들 중에는 국경없는의사회 구호 활동가로 현장에 있었던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총장 티에리 코펜스(Thierry Coppens), 훗날 국경없는의사회 구호 활동가가 된 청년 클라우디아 칸예메라(Claudia Kanyemera)가 있었다. 이 두 사람이 당시를 돌아보며 떠오르는 일들을 들려주었다.

 

학살 피해자와 생존자들에게도 이름과 얼굴이 있습니다’

티에리 코펜스(Thierry Coppens) /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총장

24년 전, 아프리카 중부의 한 작은 나라가 유혈사태 속에 휩싸였습니다.

1994년 4월 7일, 극악무도한 대학살이 시작되어 수십만 명을 죽였습니다. 조직적으로 말이죠.

당시 저는 국경없는의사회에 속한 젊은 자원 활동가였는데, 그토록 어두운 인간의 모습을 보리라고는 전혀 기대치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혐오를 도구화할 수 있는지 지금까지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무미건조한 수치들과 기나긴 사망자 명단 뒤로, 제 기억에는 르완다 출신 동료들 몇몇이 남아 있습니다. 그토록 용의주도한 광기 속에 끝내 스러진 친구들입니다.

학살 피해자와 생존자에게도 이름과 얼굴이 있습니다. 그 모든 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 운전기사 중 한 사람으로 부타레에서 살해당한 시몬(Simon)을 저는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대학살의 생존자로서 저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걸 압니다’

클라우디아 카니예메라(Claudia Kanyemera) / 국경없는의사회 재무 매니저

오래 전부터 저는 국경없는의사회에 지원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임무, 활동의 중립성, 국경없는의사회가 위기에 처한 사람들과 전쟁 피해자들을 돕는 방식이 무척 좋았거든요. 대학살의 생존자이자 정치적 위기의 피해자로서 저는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지원이 필요한지 잘 압니다.

1994년 르완다 대학살 당시 저는 중학생이었습니다. 그 모든 위기가 시작된 르완다 남부 주에 살고 있던 우리 가족은 결국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실향민이 되어 타지에 머물렀고 그러는 동안 몇몇 식구들을 잃기도 했습니다. 너무도 힘든 시간이었죠. 우리는 안전할 거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도망쳤는데, 사실 그 당시 르완다에서 완전히 안전한 곳이란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교전이 터지고 몇 달 후에 저는 한 비영리 기관에서 일거리를 찾았습니다. 프랑스어와 르완다어를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통역을 돕는 일이었죠. 그때 국경없는의사회를 처음 보았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지은 병원이 제가 속한 단체와 같은 장소에 있었거든요.

그 후로 얼마간 저는 국경없는의사회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병원에서 통역을 도왔습니다. 제가 보니 국경없는의사회는 그 어떤 차별이나 편견 없이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었습니다. 진정으로 사람들을 신경 쓴다는 게 느껴졌어요. 그때 저는 나중에 대학을 나와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에 참여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전투가 멈추고 드디어 일상을 되찾고 나서 저는 대학에 지원했습니다. 사실 저는 의학을 공부해서 의사로서 인도주의 단체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살 사건 이후로는 장학금을 받기도 쉽지 않았고 의학 전공은 더더군다나 수업료가 너무 비쌌습니다.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전공은 재무 분야였습니다. 그래서 의학을 하겠다는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죠. 결국 의사가 되겠다는 제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재무 분야에서는 경력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회계 감사관으로 일하다가 나중에는 은행에서 재무 매니저로 일했습니다. 재무부를 총괄하면서 경제학 석사 과정을 밟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는 제 마음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국경없는의사회에 지원해 현장 재무 매니저로 활동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비록 의사는 되지 못했지만 저는 여전히 저 나름대로 기여하고 있고, 사람들의 현실을 바꾸는 데 보탬이 되겠다는 제 꿈을 이루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