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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에이즈의 날: 엡워스 클리닉의 10년 후

2016.12.01

지금까지의 이야기

1990년대 후반, 그리고 에이즈 유행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에 짐바브웨는 최악의 피해를 본 나라들 중 하나였다. 피해가 가장 심했던 2000년도에는 짐바브웨 전체 인구의 30% 이상이 HIV 감염인이었는데, 기본적인 치료조차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2006년, 국경없는의사회는 짐바브웨 보건아동복지부와 파트너십을 맺고, 수도 하라레 외곽 엡워스(Epworth) 지역에 엡워스 클리닉(Epworth Clinic)을 설립했다. 아담한 단독 건물로 시작한 엡워스 클리닉은 그간 지역사회 의료 지원의 허브로 성장해 제 몫을 다하고 있다. 진단검사실, 조제실, 진료실, 낮 진료소, 청년 친화적 코너 및 회의 시설 등 다양한 시설도 갖추고 있다. 일반 의료 지원과 더불어, 엡워스 클리닉에서는 3만여 명의 HIV 감염인들에 대한 치료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짐바브웨 인구 중 HIV 감염자 비율은 15%로 줄었지만, 치료에 나타나는 큰 격차들은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의료진 부족, 값비싼 치료 비용, 의료 지원을 받으러 먼 길을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 등 여러 가지 장애물이 남아 있다. 엡워스 클리닉과 같은 여러 지역사회 프로그램들은 이러한 난제들을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엡워스 HIV 프로그램의 첫 번째 환자였던 플로렌스(Florence)를 비롯해 당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첫 환자 그룹을 만나고자, 우리의 한 사진작가가 10년 만에 엡워스를 다시 찾았다.

플로렌스와 타냐의 이야기

Tanya and Florence - Living With HIV

플로렌스는 넷째 아이를 HIV 모자간 수직감염 예방(PMTCT) 프로그램을 통해 출산했다. 티노는 올해 5살인데, HIV 음성 판정을 받았다. ⓒRachel Corner/De Beeldunie/MSF

네 아이의 엄마인 플로렌스(40세)는 엡워스 클리닉에 와서 HIV 프로그램에 등록한 첫 번째 환자였다. 플로렌스는 셋째 아이를 출산한 직후 HIV 양성 판정을 받았다.

“저는 늘 몸이 아팠어요. 그래서 클리닉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겠다고 결심했죠. 클리닉에서 국경없는의사회 분들이 무료로 검사를 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 후로 10년이 지난 지금, 짐바브웨에서 플로렌스처럼 엡워스 클리닉에서 무상 의료 지원을 받고 있는 사람은 3만 명이 넘는다. 클리닉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단순히 환자를 검사하고 약물 치료를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직원들은 결핵·HIV 환자 그룹을 지원하는 한편, 클리닉에서는 자체 조제실을 구비하고, 상담 서비스도 제공한다.

플로렌스는 엡워스 클리닉의 성공을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다. 플로렌스는 건강도 좋아졌고, HIV 수치도 늘 통제 범위를 유지하고 있다. 플로렌스는 더 이상 자신이 HIV 감염인이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더 이상 HIV 양성 판정이 제게 큰 영향을 주지 않아요. 물론 처음에는 기분이 나빴어요. 하지만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니 그 사실이 제 인생을 뒤바꾸지는 않더라고요.” 플로렌스가 이렇게 말하는 동안, 플로렌스의 아들은 이웃들과 놀면서 집 안팎을 뛰어다녔다.

Tanya and Florence - Living With HIV

자신의 아이 넷과 더불어, 플로렌스는 HIV 감염인인 타냐(Tanya)도 돌보고 있다. 플로렌스가 타냐를 씻기기 위해 준비중이다. ⓒRachel Corner/MSF

타냐는 2010년에 숨을 거둔 플로렌스의 친구 엘리자베스(Elizabeth)의 딸로, 장애가 있는 열 살 소녀이다. 타냐와 엘리자베스도 엡워스 HIV 프로그램의 첫 환자 그룹에 속해 있었고, 플로렌스와 같은 날 치료를 시작했다.

타냐의 아버지 라이프(Life)와 타냐 남매는 플로렌스 바로 옆집에 산다. 한 번도 학교에 가 본 적이 없는 타냐는 명랑한 꼬마숙녀이다. 이동이 필요할 때는 휠체어에 타거나 목발을 짚고 다닌다.

“엄마에 대해서는 기억나는 게 별로 없어요. 그렇지만 관에 누인 엄마가 땅에 묻혔던 것은 기억나요. 지금은 아빠랑 오빠, 그리고 플로렌스 아줌마가 저를 돌봐 주세요.” 

타냐의 아버지는 “HIV 치료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타냐가 지금처럼 저렇게 어엿한 꼬마숙녀가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저체중이었고 제대로 자라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치료를 시작하고 나니까 건강이 나아지기 시작했어요.”라고 말했다.

타냐 아버지에 따르면 타냐는 호기심이 많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아이라서 몹시 학교에 가길 원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지금, 타냐는 대부분의 시간을 플로렌스와 함께 집에서 보낸다. 실업률이 90%에 육박하는 터라 일자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타냐 아버지는 타냐의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

타냐는 “다른 애들이 우리 집 앞에서 놀 때면 저도 목발을 짚고 같이 어울리려고 애쓰는데요. 애들이 저한테 맞춰서 속도를 늦춰 주지는 않아요. 제가 빨리 걷지 못하거든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타냐는 지금도 밝은 미래를 꿈꾼다.

 “이 다음에 크면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아직 글자를 읽을 줄은 모르지만, 사람들을 가르치고 읽기를 도와주고 싶어요. 읽기를 꼭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고 싶어요. 지금 저는 숫자 10까지는 셀 줄 알고, ‘내 이름은 타냐입니다.’라는 문장을 쓸 줄 알아요.”라고 말하면서, 타냐는 선반 위에 놓인 낡은 종이를 자랑스럽게 가리켰다. 종이 위에는 글자와 숫자를 끄적거린 흔적이 있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엡워스 활동

국경없는의사회는 짐바브웨 보건아동복지부와 파트너십을 맺고 2006년 11월부터 엡워스 클리닉에서 활동해 왔다. 이후 지난 10년간 짐바브웨에 있는 3만여 명의 HIV 감염인들이 이 클리닉에서 무상 의료 지원을 받았다.

일반 의료 지원과 더불어, 엡워스 클리닉에서는 그 지역 근방에 있는 수천 명의 HIV 감염인들의 치료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들이 양질의 의료 지원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늘 노력하고 있다.

HIV 프로그램 시작 이후로 10년 사이에 짐바브웨의 HIV 감염률은 15%로 떨어졌다. 에이즈 확산이 절정으로 치달았던 2000년에 비하면 30%가까이 떨어진 수치이다. 그리고 현재 천여 명의 HIV 감염인들이 지역사회의 지지 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