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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엔지니어가 생명을 살리는 법 - 로버트 말리어스

2016.04.07

‘만능 선수’ 역할을 해야 하는 로지스티션은 모든 현장 활동에 필요한 기술적, 관리적 지원을 담당합니다. 로지스티션의 업무는 프로젝트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만, 대개 물자 주문, 구입, 수송 및 저장; 차량, 통신 장비, 기계, 전기(발전기 포함) 관리 및 유지보수; 백신, 약품의 냉동 보관 관리; 건축 및 건물 수리 관리; 식수위생 체계 마련 등의 업무 전반을 담당합니다.

로버트 말리어스(Robert Malies)는 엔지니어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국경없는의사회 구호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일반적인 로지스티션의 업무는 아니지만 오히려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어 뿌듯했다는 그의 이야기 입니다.

 

저는 의사도 아니고, 의료 계통에 종사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저는 엔지니어로서, 현장에서 병원을 설계하고 짓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현장 활동은 항상 생명을 구하고,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줄이고, 고통에 빠진 사람들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의료 지원을 하고 있는 건물을 청소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많은 환자들이 오히려 병원에 온 후에 더 많은 병에 걸린다면 국경없는의사회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병동에 사람이 너무 많아 아이들 서너 명이 엄마와 함께 병상 하나를 나눠 써야 한다면 어떨까요? 병실이 낮에는 너무 덥고 밤에는 너무 추워서 고열, 저체온증으로 인한 사망이 가장 많이 일어난다면요? 사람들에게 희망과 치유를 안겨주어야 할 장소가 실은 그 목적에 맞지 않는 어둡고 습한 쓸모없는 곳일 때, 과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저는 바로 그런 곳으로 갑니다. 최근에 저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보상고아(Bossangoa)에서 활동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2014년 국경없는의사회가 이 곳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보니, 기존 병원 건물이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기에 적절한 환경을 갖추고 있지 않았던 것이 금세 드러났습니다.

건물을 새로 지어 병원 역량을 높이고, 필요에 맞는 설계 해법을 제공해야겠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제 역할은 집중치료실과 결핵 병동 건물을 설계하고 이를 짓는 일이었습니다.

병원이 틀을 갖추기 시작할 무렵, 벽돌을 살피는 모습 ©Robert Malies

결핵 환자들을 위한 건물을 지을 때에는 환자들 사이의 교차 감염을 늘 신경 써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자연 통풍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건물, 각종 시설, 창문 등을 설계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하면 열대의 열기를 견뎌야 하는 환자들에게도 위안이 되지만, 공기 중의 박테리아 수를 최소화하여 환자들 사이의 감염 위험을 줄이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한편 병실에 들어오는 자연광을 늘리기 위해 투명한 지붕을 덮었습니다. 이로써 박테리아들을 자외선에 노출시켜 죽일 수 있거든요. 병이 퍼져 나가는 것을 막으려면 의심환자, 확진환자, 약제내성 환자를 각각 분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병동을 나눌 뿐 아니라 조리실, 목욕실, 위생실도 분리하여 설계했습니다. 그리고 건물마다 커다란 그늘 베란다를 만들어 환자들이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격려하는 동시에, 공기를 타고 전염되는 물질들이 바로 흩어져 없어지도록 했습니다.

보상고아 작업 현장에 있는 건설 담당자들 ©Robert Malies

국경없는의사회 일을 할 때마다 저는 현지 건설자들에게 친숙한 건설 방법을 택하고, 최대한 현지 시장을 활용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야 숙련된 인력을 확보할 수 있고, 나중에 건물을 개조하거나 수리할 때에도 확실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다른 모든 활동에서와 같이 건설에는 막대한 재정 지원이 필요합니다. 비교적 노동력이 저렴하다고 해도, 기반 시설과 시장이 부족하다면 현지에서 생산되지 않는 재료들은 대개 훨씬 더 비싼 가격에 구해 와야 하고, 그 재료들을 운송하는 것도 매우 위험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우리는 가장 효율적인 방안을 택하려고 늘 노력하지만,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데에 결코 지름길을 택하지 않습니다. 결국 바라는 것은 우리가 현장을 떠나더라도 그 건물이 환자들을 위해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후원자들의 지원 속에 우리는 앞으로도 수십 년간 환자들을 지켜줄 하나의 유산을 지을 수 있어 무척 뿌듯했습니다.

단장을 마친 집중치료실과 결핵 병동 ©Robert Malies

 

로지스티션 자격 요건 보기 ▶http://msf.or.kr/who-we-need

 


*이 글은 국경없는의사회 2016년 봄호 소식지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