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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분쟁을 넘어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한 피난민들

2014.12.17

파키스탄 내 연방직할부족지역(FATA)에 있는 피난민들은 분쟁은 피할 수 있었지만,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계속된 분쟁으로 의료 체계가 약화되어 무고한 여성과 아동들이 피해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여성들의 의료적 권리를 믿지 않는 군인들의 공격으로 여성 의료 지원을 위한 여성 의료진도 부족합니다. 현지에서 긴급한 도움을 제공하는 국경없는의사회의 지원과 함께, 지역 정부와 국가 차원에서 통합되고 일관된 노력으로 주민들을 지원해야 합니다.

쿠람 부족 지역에서 피신하여 사다 지역에서 3년째 머물고 있는 굴 비비(65세)

올해 65세인 굴 비비(Gul Bibi)가 파키스탄 사다(Sadda)에 위치한 국경없는의사회 병원 입원실에 누워 가만히 몸을 뒤척이며 말했다. “집은 소중한 곳이에요. 우리 집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다는 연방직할부족지역(FATA) 내 쿠람 부족 지역에서도 두 번째로 큰 도시다. 국경없는의사회 병원 안은 여성들로 가득하다. 양팔에 아이를 안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엄마 발치에서 잠든 아동들도 있다. 아동들은 영양 상태가 매우 나빠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고, 대체로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인다. 병원을 찾은 아동들은 대개 6개월~5세이고, 홍역과 탈수로 치료를 받고 있다. 분쟁이 지속되면서 부모들은 멀리서부터 병원을 찾아와 치료를 받는다. 특히 쿠람 지역처럼 심한 공격을 받은 곳은 의료 기반시설 피해가 상당하다.

전쟁의 이면

쿠람 부족 지역에 위치한 알리자이 병원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의료시설 입구

올들어 사다의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서 홍역 치료를 받은 아동은 213명에 이른다. 이 병원은 특히 아동 건강관리를 중점으로 하고 있는데, 아동 환자 대부분은 폐렴, 뇌수막염에 걸려서 응급 치료가 필요했다. 국경없는의사회 선임 의사 중 한 명인 라만 사크히(Rahman Sakhi) 박사는, “아이들이 걸려 오는 병 대부분이 예방 가능한 질환들이라는 점이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이 지역에서 벌어지는 분쟁 때문에 주민들이 겪지 않아도 되는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라만 박사는 매달 수십 명의 아동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의료 인력의 마을 접근이 제한된 상태이기 때문에, 병을 더 키울 수밖에 없는 환자들은 결국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된다. 홍역과 같은 질병은 초기에 발견하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라만 박사는, “아이들이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어요. 우리도 이 지역사회의 일부가 되어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함께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이런 고통을 겪는 것을 보고 싶어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지역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일하는 현지 단체 ‘부족 발전 네트워크(Tribal Development Network)’의 CEO이자 인권 전문가인 니잠 칸 다와르(Nizam Khan Dawar)에 따르면, 9/11 이후로 FATA 전역에서 의료시설 175곳, 학교 500곳이 공격을 받아 파괴되었다고 한다. 니잠은,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병원과 학교는 중립적인 장소여야 합니다. 공격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분쟁이 계속되면서 의료 체계가 약화되어 애꿎은 여성과 아동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니잠은 여성 의료진들이 계속 폭력에 직면해 군인들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군인들은 여성들이 의료 지원을 받을 권리에 의구심을 품고 있으며, 특히 출산 관련 의료 지원에는 더 강하게 반대한다. 니잠은, “여성들에게 의료 지원을 해줄 여성 의료진이 부족합니다. 임산부들이 많은데, 계속되는 교전 때문에 피난 생활을 하면서 몹시 취약해졌습니다. 점점 더 많은 지역에서 군인들이 여성 의료진을 겨냥해 위협을 주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여성 의사, 간호사, 보건 전문가들이 계속 군인들의 공격을 받게 되자, 의료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일을 포기하고 집 안에 머물러 있어야겠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단순한 숫자를 넘어

쿠람 부족 지역은 파키스탄 내에서도 정치적 교전선 위에 자리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카이베르 파크툰크와, 남쪽으로는 발루치스탄이 있는데, 이 지역은 아프가니스탄 북부와 서부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2007년 이래로 파키스탄 ‘부족 벨트’의 넓은 지역이 전투지로 변모했다. 옆나라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분쟁이 파키스탄까지 스며들면서 군 집단들이 이 지역을 점령하고 교전을 벌였다. 이 잔인한 전쟁으로 병원, 학교는 물론 가옥과 마을 전체가 희생되면서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고, 많은 사람들이 살던 곳을 떠나야 했다. 이 지역은 2008년까지 탈레반의 본거지였으나, 파키스탄 군이 군사 작전으로 그들을 몰아냈다.

코-에-사파이드(Koh-e-Safaid) 군사 작전을 끝으로 이곳은 지난 3년간 차분한 상태를 만들어 왔으나 불안한 기운은 여전하다. 그리고 이 군사 작전으로 부족 지역 여러 곳이 정부 소유로 넘어갔다. 그러나 이달 초 평화로웠던 분위기가 깨지게 되었다. 파라치나르 지역 나스티 콧에서 스쿨버스가 길가의 폭탄을 치는 사고가 발생해 아동 1명이 숨지고, 운전수를 포함한 여러 명이 부상을 입은 것이다. 한편 미국은 다음달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는 미군 수를 줄이려고 준비 중이어서, 지역 주민들은 분쟁이 더 커지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쿠람 부족 지역을 포함한 교전 피해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죽음, 질병, 테러의 위협은 벗어났을지 모르지만, 이들의 고통은 파키스탄 밖에 사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TV 방송이나 신문에서도 이들의 소식은 거의 보이지 않고, 이들의 일상생활과 어려운 상황은 그저 사망자 수, 피난민 수 등 숫자로 압축되기 일쑤다.

노년 여성이 살 수 없는 나라

쿠람 부족 지역에서 피신하여 사다 지역에서 3년째 머물고 있는 굴 비비(65세)와 손자

굴 비비(65세)는 쿠람 부족 지역에서도 위쪽 마을에 산다. 이 곳은 약 2만 명의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사는 곳이지만 외부 사람들에게는 그저 수치로만 알려져 있다. 사다의 국경없는의사회 병원 입원실에 앉아 탈수로 고생하는 8개월 된 손녀의 치료를 기다리며, 굴 비비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는 평화롭게 잘 살았어요. 먹을 것도 많고 땅도 있었고 부족한 게 없었죠. 자녀, 손주들과 함께 건강하게 살면서 축복을 누렸답니다.”

여기서 노인은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고르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3년 전에 모든 게 달라졌어요. ‘그들’이 온 거죠. 그 무엇도 전과 같지 않았어요.”

‘그들’이 누구인지 굴 비비는 정확히 말하지 않았지만, 그 지역에 있던 군인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맨 먼저 여성들이 더 이상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러더니 사람들이 인질로 잡혀가기 시작했다.

“사방이 공포에 휩싸였죠.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았는데 갑자기 누굴 믿어야 할지, 우리들 사이에 누가 숨어 있는지 도무지 모르는 상태가 된 거예요. 점점 폭력이 심해지더니 군인들은 집과 학교를 불태우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으면 불타는 우리 마을이 눈앞을 가려요. 그 냄새까지도 나는 것 같아요.”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지만, 노인은 말을 끊지 않으려 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서 자신이 무엇을 겪었는지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자, 저는 남편에게 마을을 떠나자고 말했어요. 당시 제 남편은 몸이 좋지 않았지만 저희에게는 별다른 선택이 없었죠. 몸에 걸친 옷 말고는 아무것도 없이 나왔어요. 5시간을 걸어 갔더니, 당나귀 수레가 지나가는 게 보이더군요. 남편을 싣고 가 달라고 수레꾼에게 사정을 해서 겨우 피난을 갈 수 있었답니다.”

지난 3년간 굴 비비는 국경없는의사회 병원 근처에 있는 난민캠프에 살았다. 굴 비비는, “이곳은 제 나이의 여자가 살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에요. 내 집, 우리 동네, 내 나라가 있는데, 저는 지금 제 딸과 사위, 손주들, 친척들과 이렇게 텐트에서 살고 있네요.”라고 말했다. 피난민들의 생활 조건은 좋지 않다. 작은 텐트에 대가족들이 모여 지내면서 식량, 약품, 옷 등의 생필품을 정부 기관이나 비정부 기관에 의존해 살고 있다. 열악한 생활 환경, 깨끗한 식수 부족, 부족한 의료시설, 영양실조 등으로 지금까지 수십 명의 아동들이 위염, 장티푸스, 호흡기 질환 등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혼란의 한가운데를 살아가는 굴 비비는 손주들이 더 안전하게 살아가길 염원하면서 가능하다면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굴 비비는,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그간 제 눈으로 본 것들이 온통 떠올라 밤을 지새우게 되네요. 아… 우리 마을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는지…”

회복해야 할 인간의 존엄성

쿠람 부족 지역에 위치한 알리자이 병원에 근무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

한편, 피난민들의 생활 조건은 나아질 기미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현지 치안 문제로 피난민들의 건강 문제는 뒷전이 되기 십상이다. 연방직할부족지역(FATA)에서 의료 프로젝트 운영을 담당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의료 코디네이터 자베드 알리(Javed Ali) 박사는, “파키스탄 북서부 지역은 오래 전부터 파벌 분쟁, 군사 행동, 그리고 전쟁, 테러로 인한 대규모 피난 등으로 큰 피해를 입어 왔습니다. 이러한 분쟁들은 지역 보건 정책과 의료 지원에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의료 활동을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하다 보니 의료진과 의료물자가 부족하게 되었고, 이 지역의 보건 활동을 감시하면서 탄탄한 보건 정책을 수립할 체계가 전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자베드 박사는 ‘기본으로 돌아갈 것’을 강조했다. 현재 이곳은 제 기능을 발휘하는 의료시설이 인구 5천 명당 1곳밖에 없으며, 주민들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의료시설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이다. 국경없는의사회와 같은 단체들이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활동해 왔지만, 더 이상 편안하게 고향에서 살 수 없게 된 사람들을 위해 주 정부와 국가 차원에서 보다 통합되고 일관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경없는의사회의 파키스탄 활동

국경없는의사회는 1986년부터 파키스탄에서 활동해 왔다. 현재 국경없는의사회는 발루치스탄 동부에 위치한 데라 무라드 자말리 지역병원에서 입원환자 및 외래환자를 대상으로 치료식 배급 프로그램, 5세 미만 아동을 위한 소아과 진료, 신생아 진료 등을 실시하고 있다. 그 밖에 데라 알라 야르, 우스타 모함마드 지역에서는 외래환자를 대상으로 치료식 배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영양실조 아동 총 7639명이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