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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다시 넘기 시작하는 난민들, 그리고 공포와 희망이 공존하는 남수단

2013.01.14

수단 피난민이 자맘 (Jamam) 캠프 내 위치한 국경없는의사회 외래환자 치료소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매일 가까이에서 총격과 전투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죽어갔고,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를 수가 없었습니다.”

열 명의 아이를 둔 어머니(35세), 그 중 막내는 자맘(Jamam) 난민 캠프 내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 도착한 후 바로 사망했다

수단의 폭력 사태를 피해 도망친 17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남수단의 여러 난민 캠프에서 살아가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2011년 11월 이후부터 이들 난민들을 도와오고 있으며, 현장 병원들을 운영하고 깨끗한 식수와 설사환자용 경구수액을 제공해 오고 있다.

우기로 인한 홍수가 진정된 현재, 사람들이 다시 국경을 넘어오기 시작하고 있다. 2012년 12월에 약 370명의 난민들이 두 무리로 나뉘어 며칠 간격을 두고 국경 마을인 엘 푸지(El Fuj)에 도착했다. 이는 작년 단 3주만에 3만 5천 명의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온 것보다 비교적 낮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숫자가 더 늘어날 것인지는 시간만이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엘 푸지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음식과 도움을 받았고, 이제 우리는 행복합니다.”

아홉 명의 아이를 둔 어머니(36세)

새로 도착한 난민들은 우리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은 고향 마을에서의 그들의 삶, 계속되는 폭력 사태로 인해 자포자기하게 된 것,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떠나야 했던 극도의 괴로움, 국경으로 오기 위해 겪어야 했던 힘들고 위험했던 피난길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은 또한 안전한 곳에 다다라 의료 서비스 및 피난처, 식량을 찾았다는 데서 오는 희망과 안도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러나 난민 캠프들이 비교적 안전함에도 불구하고, 이 곳의 심각한 생활 조건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깨끗한 식수는 여전히 부족해, 때로 진료의 40퍼센트가 설사병과 관련이 있었고 E형 간염도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2012년 여름, 바틸 캠프(Batil Camp, 약 3만 5천명의 난민을 수용하고 있음)의 사망률은 위급상황시 수치(emergency threshold)의 두 배 이상에 달했으며, 5세 미만 아동의 4분의 1 이상이 영양실조에 걸린 상태였다. 2012년 9월 이래 많은 지역에서 상황이 호전되었고 사망률도 떨어졌지만 영양과 식량 안보는 여전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폭력사태와 불안을 피해 피난 오다

새로 도착한 난민들은 잉게사나(Ingessana) 부족원들이다. 그들 또한 폭력사태와 불안함을 피해 피난 올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고향 마을에서는 “낮이든 밤이든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아무 이유 없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고 그들이 말했다.

“우리는 폭격을 당했습니다. 군인들이 우리 집, 작물, 소들을 불태워버렸고, 여자들은 강간과 성적 학대를 당했습니다.”라고 그들이 덧붙여 말했다. 얼마나 많은 강간 사건이 있었는지 묻자, 그들은 “거의 항상”이라고 답했다.

공격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힌 마을 주민들은 작물을 재배할 수도, 쉽게 식량과 식수를 모을 수도 없었다. 그들은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우리가 떠난 것은 전쟁 때문입니다. 지난 일년 반 동안 우리는 매일 공습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산 속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학교에 갈 기회가 없었고, 의료 서비스나 의약품을 제공받지도 못했습니다. 땅에서 먹을 것을 구하기는 했지만 곡식은 아니었습니다. 식수는 이른 아침에 모아서 얻곤 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일년 내내 지속됐습니다.”

아홉 명의 아이를 둔 어머니(36세)

“마을이 불에 탔습니다. 더 이상 안전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불안 속에 살았습니다. 그 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머무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가족들과 함께 피난을 왔지만, 피난을 올 수 없었던 일부 사람들은 남겨놓고 떠나와야 했습니다.”

남편과 네 명의 아이들과 함께 피난 온 여성(22세), 막내는 이제 생후 한 달이 되었음.

여자들과 아이들을 불러오기 전에 안전한 피난로를 찾기 위해서 남자들은 늦은 밤 어둠을 틈타 먼저 출발했다고 그들이 우리에게 말했다.

먼저 출발한 남편에게 가기 위해 아이와 함께 피난을 온 한 18세 여성은 고향에 남기고 떠나온 노부모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노부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혹은 누가 그들을 도와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성은 어떻게 그녀의 15살난 아들이 피난오기 바로 전 총상을 입고 죽었는지 우리에게 말해주었다. 그녀의 막내딸은 피난 중에 병이 들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국경에서 이틀간을 꼼짝하지 못해 제 시간에 치료를 제공할 수 없었고, 그녀의 딸은 자맘의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 도착한지 12시간 내에 사망했다.

먹지 못하고 수일을 걷다

엘 푸지에 오기까지 난민들은 거의 8일 동안 이동해야 했다. 대부분은 밤낮없이 도보로 이동했으며 가끔 트랙터를 탈 수 있었다. 식수는 조금 갖고 있었지만 식량은 없었다. 난민 한 무리는 오는 길에 어떻게 다섯 명을 잃었는지 말해주었는데 대부분은 굶주림에 지쳐 계속 이동할 수 없었던 노인들이었다.

“짐을 지고, 어린 아이들을 업고 이동해야 해서 힘들었습니다. 안전을 위해 우리는 밤에 걸어서 이동했지만, 낮에도 멈출 수 없었습니다.”

35세 여성

피난 중에 일부 난민들은 말라리아에 시달렸다. 전신 통증, 두통, 복통, “공복통(hunger pain)”, 전염병 등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피난 중에 사람들을 잃었습니다. 아무나(Amuna)의 삼촌은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피난 중에 죽었습니다.”

22세 여성

자맘 캠프의 피난처

“국경에 도착하자 당신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먹을 것과 약품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 덕에 아프고 지쳐있었던 우리는 이제 더 강해졌습니다.”

22세 여성

난민들은 남수단의 마반 카운티 (Maban County) 내 네 곳의 난민 캠프 중 하나인 자맘 캠프에서 식량, 식수, 피난처, 의료 서비스를 찾은 것에 대한 안도감을 표했다. 몇몇 여성 난민들은 피난에 대한 불안감과 남수단에 도착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두려움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들은 이제는 안전함을 느끼고 있고, 아이들이 더 건강해져서 기쁘다고 말했다.

미래

“아직도 그 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많고, 그 사람들은 이 곳 마반으로 와야 합니다. 거기 있는 사람 전부 이곳으로 와야 합니다. 다행히도 더 많은 사람들이 오고 있습니다. 전쟁이 없다면 우리가 돌아갈 수 있겠지만,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에는 절대 가지 않고 이 곳에 머무를 것입니다. 하지만 전쟁 없는 시기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36세 여성

이곳 난민들은 더 많은 고향 사람들이 폭력 사태를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을 발견해 남수단으로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이 무엇인지 물었다. 한 여성은, “식량과 식수, 의료 서비스, 의약품, 그리고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여성은, “우리들을 위한 병원, 우리 아이들을 위한 학교, 땅을 일구는 것, 쉬는 것 -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모든 것들입니다.”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