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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람사에서 온 편지] 2화 - 전쟁 속에서 그녀는 홀로 엄마가 되었다

2016.12.15

ⓒ국경없는의사회

“딸이에요, ‘마를린*’이래요!”

아침도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한지라 저녁식사가 기다리는 숙소의 문을 기쁜 마음으로 열고 들어오는데, 그보다 더 기쁜 소식이 반겨주었다. 제 2병동에 입원하고 있던 17세 산모의 출산 소식이다. 아침 회진 때 심한 진통을 호소하여, 병실을 산부인과 진찰을 받기 편한 병실로 옮기며 앞으로 있을 출산을 대비하였다. 예정일이 오늘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오늘 오후 우리 팀이 난민 캠프 진료를 다녀오는 사이에, 자연분만으로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다고 한다.

ⓒ국경없는의사회

“엄마가 보고 싶어요.”

열 일곱 살에 한 아이의 엄마가 된 그녀가 아이를 받아 안으며 슬픈 눈으로 이야기 했다고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의 임신을 축복하며 늘 곁에 있어주었는데, 그녀는 현재 람사 병원에 홀로 와 있다. 벌써 한 달이 지나갔다. 시리아인인 그녀는 국경을 넘을 때 가족이 함께 오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응급차에 실려 정신 없이 국경을 넘겨졌다.

요르단 람사 병원 내 국경없는의사회가 만든 수술실의 입구 ©Joosarang Lee/MSF

람사 병원은 시리아 국경으로부터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요르단의 중소형 국가병원이다. 잘 포장된 고속국도로 달리면 시리아에서 오는데 10분도 걸리지 않는 곳이다. 시리아 국경이 있는 언덕이 보인다. 그리고 시리아 남부 국경지역에 공중 폭격이 있는 날이면 병원 안에 있어도 진동을 느낄 수 있는 거리이다. 시리아 내전으로 다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시리아에서 요르단으로 구급차에 실려 보낸다. 구급차로 오는 외상 환자만이 국경을 넘을 수 있다. 하지만 요르단으로 넘어오긴 했지만 가족도 없고, 연고도 없고, 신원파악도 안 되는 환자가 병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어떤 경우에는, 환자가 무력 분쟁에 얽혀 있어 다른 환자에게 피해를 입힐 수도 있는 인물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람사 병원도 상황은 같았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람사 병원 시설의 일부를 임대하였다. 별관 한 체와 본관의 병동 하나, 중환자실 내의 병상(침대) 하나, 그리고 수술실 2개를 임대하고 있다. 시리아 내전으로 다친 환자들을 위한 병원 내의 또 하나의 병원이다.

“두 다리가 없어졌지만, 저와 저의 아이가 살았어요.”

지난 3월 말, 임신 말기의 몸으로 집 근처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는데 어디에선가 날아온 폭탄이 멀지 않은 곳에 떨어지면서 두 다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시리아의 병원에서 뜯겨진 다리에 기초적인 응급조치로 지혈을 시행 받고, 람사로 왔다. 여기에서 상처에 대해 치료받고, 아이에 대해 산전관리를 받았다.

일주일 전, 내가 이 병원에 도착해서 환자에 대한 인계를 받으며 아침 회진을 돌 때, 담요를 덮고 앉아 있는 모습은 여느 소녀와 다를 바 없었다. 열 일곱 살의 수줍음이 담긴 인사로 의료진과 아침인사를 나누는 모습에, 이 환자는 크게 다친 환자는 아닌가 보다 싶었다. 선임 선생님이 진찰을 하며 담요를 걷었을 때, 앳된 소녀가 거의 만삭인 모습에서 다소 놀랐고, 그 아래로 우측 다리는 무릎 아래에서 그리고 오른쪽 다리는 무릎 위에서 절단된 상처를 보이는 모습에 안타까움의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의 여느 열 일곱 살과는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시리아 남부의 그녀였다.

지난 2월말 대대적 공중 폭격이 그친 이후로, 큰 폭격과 대량 사상자가 발생하는 일은 이전에 비해 다행히 많이 잦아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산발적으로 폭탄 손상과 지뢰 손상, 그리고 총탄에 의한 손상으로 환자들이 오고 있다. 국경에서 검문을 받은 뒤 응급실에 도착하면 낮에 다친 환자도 저녁이나 밤에 도착한다. 병원에 도착한 날부터 연달아 밤마다 응급수술을 하러 나가고 있다.

조만간 출산 소식은 또 있을 것이다. 람사 병원에서의 첫날 밤 집도한 환자도 산모이다. 스물 세 살의 그녀는 총알이 우측 다리를 관통하여 뼈를 터트리고 나갔다. 난데없이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에 무릎 아래가 절단되는 충격과 가족 친척 한 명 없는 외지에서 놓인 상황에 고통과 불안이 가득한 그녀의 모습이었는데, 상처가 차차 안정화되면서 그리고 배 속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밝은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 아이들이 절망 쪽을 바라보며 태어나지 않고, 희망 쪽을 바라보며 태어나길. 그러길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이곳에 병원이 꾸려지고 나도 이곳까지 온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의 국경없는의사회의 첫 미션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환자의 이름은 가명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웹툰 [보통남자, 국경 너머 생명을 살리다]

ⓒ국경없는의사회


이재헌 | 국경없는의사회 의사

정형외과 전문의로, 2016년 요르단과 아이티에서 국경없는의사회의 의료 구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전부터 국제 구호활동에 관심이 많아 탄자니아를 비롯해 네팔, 필리핀 등지에서 의료 지원 활동을 해왔다. 올해 요르단에서 시리아 전쟁으로 인해 외상을 입은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겪고, 느낀 이야기들을 일기로 적었고, 그 일기는 김보통 작가의 웹툰으로 재구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