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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방글라데시: 폭력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

2017.10.24

2017년 10월 22일

8월 25일 이후로 로힝야족 60만여 명이 미얀마에서 벌어진 표적 공격을 피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피신했습니다. 이로써 방글라데시에 들어온 로힝야 난민은 근 100만 명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에게 마을이 급습을 당해 불타버린 이야기, 민간인들을 겨냥해 벌어진 광범위한 폭력 사건 등 끔찍한 경험담을 들려주었습니다. 활동 시작 후 3주 만에 국경없는의사회는 폭력으로 부상을 입고 찾아 온 250여 명의 환자들을 치료했습니다. 이 환자들은 총상, 중증 화상, 폭발 부상, 찔린 상처, 성폭행으로 인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AP Photo/Bernat Armangue

"수요일(8/30)에 군이 우리를 공격했어요. 건장한 남자들이었고 150명도 넘었어요. 그 일이 있기 전에 모그 우카타(Mogh Ukhatta, 라카인 마을 대표)는 우리더러 마을에 있는 모랫둑 앞으로 모이라고 했어요. 다 그리로 모였죠. 그들에겐 무기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행동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들은 우리들이 보는 앞에서 남자들을 죽이기 시작했어요. 죽은 시체를 둑에 올려놓고 태우기까지 했죠. 그러더니 군인들이 여자들을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마체테(날이 넓은 벌채용 칼)로 찔렀어요. 한 남자가 저를 찔렀는데, 질에 아주 가까운 쪽이었어요. 또 다른 남자는 제 목을 찔렀어요. 그때 저는 이제 태어난 지 28일 된 제 아기를 안고 있었어요. 그 사람들은 뭔가 무거운 걸로 제 아기도 내려쳤어요. 머리를 맞은 아기는 죽고 말았어요. 제 눈으로 다 봤어요. 두개골이 쪼개져 뇌가 흘러나오는 것까지요.

여기까지 오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퇴원하고 나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 등에 지고 온 옷가지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요.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고, 제 아기는 죽었어요. 생각을 안 하려 해도 제겐 너무 힘든 상황이에요.”

_ 목과 허리를 찔려 국경없는의사회 의료 시설에 입원한 여성(25세)

©AP Photo/Bernat Armangue

"우리 가족은 총 22명이었어요. 그중 19명이 살해 당했어요. 아주 어린 아이들까지요. 두 형제와 누이 1명, 이렇게 우리 셋만 살아남았어요. 군인들이 집들에 불을 지를 때, 우리 식구들도 다 죽었구나 싶었어요. 끝없이 울었어요. 군인들을 상대로 싸워 볼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상대는 수가 너무 많았고 우리는 무기가 전혀 없어서 그럴 수 없었어요. 그래 봤자 군인들 앞에서 죽기밖에 더하겠어요. 저는 방글라데시로 오는 내내 울었어요. 그렇게 닷새가 지나서 제 누이가 살았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가까스로 방글라데시까지 와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었어요."

-화상과 찔린 상처를 입고 국경없는의사회 쿠투팔롱 캠프 병원에 입원한 환자(18세) 가족

콕스 바자르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와 병원에서는 치료를 원하는 사람 수가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8월 25일~10월 7일, 국경없는의사회 팀들은 3만여 명의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미얀마에서 의료 지원을 받기가 극히 어려웠고, 방글라데시까지 걸어오는 여정도 무척 힘들었기 때문에 새로 온 난민들 중에는 대대적인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상처 부위가 심하게 감염된 사람들, 급성 수성 설사에 걸린 사람들, 폐렴·영양실조 환자, 홍역 의심 환자, 그 외에 심각한 산과 합병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Antonio Faccilongo

“사람들은 끔찍한 상태로 들어옵니다. 불타고 있는 집에 갇혀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가족을 다 잃어버린 미동반 아동들을 치료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막 태어난 조그마한 아기는 국경지대 풀숲에서 한 여성 분에게 발견돼 우리 시설로 오기도 했습니다. 그 여성 분은 자신의 아이들에 더해 그 아기까지 돌보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머리에 부상을 입은 어린 소녀를 치료한 적도 있는데요. 아이를 치료하고 한 시간쯤 지나 그 아이의 어머니가 중증 화상을 입은 채로 입원했습니다. 가족들 중 두 사람만 살아남았다고 했습니다.”

- 콘스탄틴 행크 | 국경없는의사회 의사

©Antonio Faccilongo

“군인들이 왔어요. 몇백 명은 됐죠. 먼저 남자들만 골라 내더니, 수로 옆으로 가서 바닥을 향해 엎드리라고 했어요. 그래서 남자들은 물속에 그렇게 엎드려 누웠어요. 그러자 군인들은 뒤에서 그들을 마구 찔러댔어요. 그 사람들이 제 남편을 어떻게 죽였는지 제 두 눈으로 다 봤어요. 제 남편은 그저 농부일 뿐이었는데… 군인들은 시체를 다 불태웠어요. 이렇게 사람들을 죽이는 장면을 보던 사람들 중에 몇몇 젊은이들은 도망쳤어요. 겨우겨우 마을 공동묘지까지 올라갔지만, 군인들이 그들을 뒤에서 쐈어요. 열두 살 난 제 아들 그리고 동갑내기 제 조카도 거기 있었는데 둘 다 죽었어요. 제 아버지도 총에 맞아 돌아가셨어요.”

_ 라카인 주 마웅다우 출신 여성(35세)

“몇몇 여성 분들에게서 정말 끔찍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분들은 남편을 잃고 무작정 이곳까지 왔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이쪽저쪽으로 차가 지나가는 혼잡한 길을 따라 며칠을 꼬박 걸어온 겁니다. 차에 치여 숨진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분들이 식구들과 함께 꾸미려 했던 안락한 미래는 일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한 개인에게 있어 비극이 아닐 수 없죠. 그러한 이야기들을 50만 가까이 모아놓고 생각해 보면,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끔찍한지 이해가 될 겁니다.”

_ 케이트 화이트 | 응급 의료 코디네이터

©Antonio Faccilongo

“8월 21일, 30명쯤 되는 군인들이 와서 우리 집과 다른 아홉 집을 완전히 불태웠어요. 당시 제 아들은 집 안에서 자고 있었고, 저는 전날부터 보이지 않던 소 두 마리와 염소들을 찾으러 밖에 나가 있었어요. 아침이었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다른 집들이 불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집을 바라보니 지붕에 불이 나고 있었어요. 아들이 안에서 소리지르고 있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래서 저는 미친 듯이 뛰어가 담요로 아들을 구해냈어요. 제가 끌어내려고 할 당시 아들은 거의 불에 닿을 뻔했어요. 다른 두 집 아이들은 집에서 불에 타고 말았어요.”

_ 전신 50% 화상을 입고 치료 중인 25세 남성의 어머니

최근에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에도 방글라데시에 있던 로힝야족 사람들은 매우 열악한 여건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제 거대한 임시 정착촌은 수많은 사람들도 발 디딜 틈 없는 상황이 되었고, 사람들은 혹독한 환경으로부터 거의 보호받지 못한 채 위험하고 과밀하며 비위생적인 곳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화장실도 없고 깨끗한 식수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식량 확보는 여전히 큰 문제입니다. 많은 로힝야 난민들은 하루에 쌀 한 끼만을 먹고 있습니다. 정착촌으로 들어오는 길이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구호 지원이 닿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최대한 빨리 활동 규모를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보다 적극적인 대응 활동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Antonio Faccilongo

“8월 28일 아침에 군인들이 왔어요. 우리 모두 (나프 강으로 이어지는) 수로 푸르마 칼 둑에서 가로막혔어요. 군인들은 먼저 남자들을 죽이기 시작했어요. 때리고 총을 쏘고 칼로 찔렀어요. 그러더니 여자들과 아이들을 마을 안에 여러 집에 데리고 들어갔어요. 저도 7명의 다른 여자들과 한 집에 들어갔어요. 군인들은 거기서 제 머리를 두 번 찌르고는 저를 마구 때렸어요. 날이 저물 때쯤 군인들은 그 집에 불을 질렀어요. 저는 바닥에 누워 꼼짝도 못했어요. 하지만 불타고 있던 지붕 일부가 떨어져 제 몸에 닿자 저는 안간힘을 써서 기어서 집 밖으로 나가 숲 속으로 들어갔어요. 거기서 마을에서 온 다른 여성 3명을 봤어요. 그렇게 우리는 방글라데시까지 온 거예요. 방글라데시 사람들 몇몇 분이 저를 이곳 진료소로 데려다 줬어요.”

_ 찔린 상처와 광범위한 화상을 입고 입원한 마웅다우 출신 여성 환자(18세)

국경없는의사회는 지난 25년간 미얀마 라카인 주에서 활동해 왔지만, 지금은 시급한 의료 지원이 필요한 로힝야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9월, 국경없는의사회는 대대적인 인도적 필요를 채울 수 있도록 독립적인 국제 인도주의 단체들이 즉시 라카인 북부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미얀마 정부에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라카인 주에 있는 로힝야 사람들을 위한 지원은 더 줄어들 뿐이었고, 이에 따라 난민들은 계속해서 방글라데시로 넘어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