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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구호 활동가가 되어 간다 - 이효민 마취과 의사 활동기

2016.04.15

내게는 6번째 활동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2013년 내전 발발 이후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난민들이 주변 국가에 퍼져 있고, 국내 실향민들의 수도 그만큼 되는 상황에서 여전히 산발적인 폭력 사태가 수도인 방기를 중심으로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전역에서 의료를 지원하고 있다. 내가 다녀온 곳, 보상고아(Bossangoa)는 중부 내륙지방에 위치한 곳인데, 국경없는의사회는 응급 수술과 모자보건, 영양실조 관리, 정신건강 관리 등을 포함한 1•2차 진료 등 현지 수련 병원을 지원하고, 병원에 올 수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동 진료소도 운영하고 있다.

프로젝트는 2013년 내전이 격화되기 직전에 시작되었는데, 당시에는 보상고아에 수많은 실향민들이 머물렀다고 한다. 내가 근무하던 시기에는 상당히 안정이 되어 사람들은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고,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내 눈에는 정말 허름했지만 이곳 병원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전체에서 세 번째로 크다고 한다.

수술장 모습. 별 장비가 없다… 

마취과 의사로서 현장에서 하는 일은 주로 수술환자 마취와 수술 전후의 환자 관리이다. 수술을 위한 장비가 많이 갖춰져 있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주로 응급 수술을 하게 되었다. 위급한 산모들을 위한 제왕절개는 기본이고, 장티푸스와 같은 흔한 감염성 질환을 제대로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해 장 천공 등의 합병증이 발생하여 생긴 복막염 치료를 위한 개복수술, 화상과 총상 환자 관리, 광범위하고 깊게 감염이 되어서 죽은 조직을 최대한 제거하고 꾸준히 항생제 투여와 상처 관리를 해주어야 하는 괴사근막염 환자 수술 등을 주로 시행하였다.

이곳에서는 의료 지원이 워낙 열악하기 때문에 치료 시기를 놓쳤거나 방치된 환자들인 경우가 많았다. 정맥 주사가 필요한 영유아들 같은 경우 팔다리에서 혈관 찾기가 힘들어 두피에 얕게 있는 혈관에 주사를 놓기도 하는데, 두피에 생긴 상처로 내원한 10개월 아기도 그런 경우였다. 감염이 심해져서 피부와 근육층까지 괴사되었고, 머리에 어른 손바닥만한 상처가 생겨 아래에 있는 뼈까지 드러나 있었다. 죽은 조직을 제거하고 상처를 깨끗하게 해준 뒤 이틀에 한 번씩 상처치료를 하면서 조금씩 새살이 돋아나 뼈를 점점 덮어가는 것을 보는 게 내 기쁨 중 하나였다.

활동을 거의 마칠 때쯤 이동진료소 팀을 따라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마취과 의사는 현장에서도 주로 수술장과 병원 안에서만 활동하기 때문에 지역사회를 볼 일이 없어서 이동진료 참관 기회는 무척 소중했다. 이동진료소도 어떤 곳은 주로 백신 접종, 어떤 곳은 주로 모자보건 관리 같은 식으로 진료 내용이 조금씩 다른데 내가 따라간 곳은 심한 영양실조 아동 관리 프로그램이었다.

이동진료소 가던 길. 엄청나게 덜컹거렸다. 이런 길을 세시간도 넘게 달려야 한다.

제대로 닦여 있지도 않은 울퉁불퉁한 길을 사륜구동차로 세시간 반을 달려가 도착한 곳에는 이미 한두 시간 전부터 환자와 보호자들이 와서 줄을 서서 기다리며 아이의 나이와 체중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미 등록되어 관리받고 있던 아이들의 현재 상태를 점검하고 새로 온 아이를 등록하고 영양 상태를 평가해서 필요한 치료식들을 제공하고 필수 예방접종도 시행하는 진료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동 진료팀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 

한국에서는 장비와 약품이 부족할 것 없이 갖춰진 병원들에서 주로 근무했기 때문에, 처음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로 현장에 갔을 때는 무력감에 빠지기도 했다. “내게 이런 장비가 있다면, 이런 약품이 있다면 저 사람들이 더 나은 결과를 맞게 해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혹은 “나는 장비와 약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구나” 그런 생각들이 교차했다. 점차 현장 경험이 조금씩 쌓이면서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일을 하는 데 익숙해져 갔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정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느끼지만 그 정도도 현지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이 활동을 지속하게 만드는 주요 원동력이 아닐까 한다.

*이 글은 국경없는의사회 2016년 봄호 소식지에도 개제되었습니다.